정민 교수님 교실/[다산초당의 사계]-정민 교수님

다산초당의 사계----- 1. 봄 깊은 뜨락 <한양대학교 정민 교수님의 다산시 감상>

백촌거사 2016. 9. 28. 18:37

[다산초당의 사계]글을 시작하며

             정민 교수님의 첫 말씀 ----------------

 

*새로 시작하는 글은 다산초에서의 생활과 그곳의 풍광에 관한 시 모음입니다. 예전 <한밤중에 잠깨어>가 유배지의 내면 독백이었다면, 여기서는 초당 정착 이후의 일상에 관한 소묘들을 다루려 합니다. 문집에 실린 것보다 새롭게 찾아낸 실리지 않은 시가 훨씬 더 많습니다. 다산시문집에는 사실 초당 정착 이후 근 8년간의 시가 통째로 빠져버렸습니다. 이것을 되살려내서 복원해야 합니다. 이제까지 이 문제를 그대로 방치해둔 것은 어찌 보면 창피한 노릇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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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산 초당--- 정민 교수님의 <다산의 재 발견>에서  인용  ----------

茶山草堂

사적 제107호 丁茶山遺蹟       소재지: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

1958년 초당 복건. 지금은 도리단층기와집

1808년- 1818년 머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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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민 교수님께서는 지금 남부 프랑스

엑상프로방스 <Aix-en-Provence >에 머무시고 계시다. 그 곳 정원을 거니시다가 강진의 다산초당이 생각나서 다산의 주옥같은 유배시를 옮기신다고 하신다.

새로운 정감으로 가슴에 와 닿는다. 혼자 공부해야 할 점도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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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봄 깊은 뜨락

쓰신 날: 2016-09-18 16:03:05

               2016-09-23 17:52:28

 

✻시의 서언 <序言>-------------------------

3월 16일, 문거(文擧) 윤규로(尹奎魯)의 다산서옥에 놀러갔다. 공윤(公潤)이 병 치료 차 이곳에 있었으므로 이틀간 묵게 되었는데, 마침내 열흘을 넘기고 말았다. 점차 이곳에서 삶을 마쳤으면 하는 뜻이 생겨 두 편의 시를 지어 공윤에게 보여주었다.

(三月十六日游尹文擧 魯奎 茶山書屋 公潤調息在此 因仍信宿遂踰旬日 漸有終焉之志 聊述二篇示公潤)」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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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촌 이해노트】

◄ 1808년 3월 16일

◄ 윤규로(尹奎魯(1769-1837). 윤종하(尹鍾河)=字가 공윤(公潤) 다산의 외증조부가 윤종하의 고조부

尹鍾河 <橘亭公派> 字 公潤

尹斗緖의 3 자 德熏-尹持明-鍾河< 2자 出>

1772년(영조48임진)-1810년(순조10경오) 6.6 향년 39세

                                                                         <부천족보도서관 자료 해남윤씨 대동보에서>

◄ 다산서옥(茶山書屋)= 다산 초당

사적 제107호). 귤림처사(橘林處士) 윤단(尹慱1744-1821))의 초가건립 서당.산정(山亭)

1808-1818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년)이 강학하던 곳.〈다산팔경사(茶山八景詞)〉․〈다산사경첩(茶山四景帖)〉․〈다산십이승첩(茶山十二勝帖)〉등의 작품 창작

因仍 답습하다. 그대로 좇다. 연습(沿襲)하다. 인하여.

因袭;沿袭:转相因仍,莫正其本

信宿 이틀 밤(을 계속 머무르다= 1.连宿两夜。 2.谓两三日

◄ 초당에 머물기 전에 동문 밖 주막집, 고성사의 보은 산방. 제자 이 청의 집에 머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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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定逐煙 況乃茶山滿谷

유서불정축연하 황내차산만곡

天遠汀洲時有帆春深院落自多

천원정주시유범춘심원낙자다

鮮鮮鰕菜堪調病 草草池臺好作

선선하채감조병 초초지대호작가

適意更愁微分濫 玆游莫向北人

적의갱수미분람 자유막향북인과

정민 교수님의 국역 ------------------------------

거처도 들쭉날쭉 연하(煙霞) 따라 사는데

하물며 다산이라 골짝 가득 차로구나.

저 멀리 물가에는 이따금 배가 뜨고

봄 깊은 뜨락에는 꽃이 절로 많이 폈네.

신선한 새우무침 병 조리에 마침 맞고

못과 누대 거칠어도 글쓰기엔 딱 좋다네.

마음에 꼭 맞아서 분수 넘침 염려되니

이번 유람 북인 향해 자랑하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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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 이해〕----------------------------------------------

윤규로(尹奎魯): 다산초당의 주인 윤 단(尹慱)의 큰 아들. / 공윤(公潤): 윤종하(尹鍾河). 서울 죽란 시절부터 왕래가 있던 외가 쪽 사람이다. 공윤(公潤)은 그의 자다. 아암(兒巖) 혜장(惠藏)과도 가까워 『아암유집(兒菴遺集)』에 그에게 보낸 편지가 여러 통 실려 있다. / 조식(調息): 병조리를 하다. / 신숙(信宿): 이틀간 묵다.

유서(幽棲): 숨어사는 이의 거처. / 부정(不定): 일정치가 않다. /

연하(煙霞): 안개와 노을. / 황내(況乃): 하물며. / 정주(汀洲): 물가. / 시유범(時有帆): 때때로 돛단배가 있다. / 원락(院落): 뜨락. /

선선(鮮鮮): 신선한 모양. / 하채(鰕菜): 새우를 넣고 무친 나물. / 감(堪): 견디다. 알맞다. / 조병(調病): 병을 조리하다. / 초초(草草): 거칠어 잘 갖추지 못한 모양. / 적의(適意): 뜻에 꼭 맞다. /

미분람(微分濫): 미천한 분수에 넘치다./ 자유(玆游): 이참의 유람. / 북인(北人): 북쪽 사람. 서울 사람을 가리킴. / 과(誇): 뽐내다. 자랑하다.

※<다산의 재발견>에서는 윤규로尹奎魯라 하셨다. 幽棲 유소로 잘못 표기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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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 교수님의 茶山草堂 시 감상 평설〗

다산의 병문안

1808년 3월 16일에 다산은 공윤(公潤) 윤종하(尹鍾河))의 병문안 차로 다산초당을 처음 찾았다. 그는 아암 혜장과 가까워, 지난 해 다산이 임시로 묵고 있던 이 학래의 집으로 찾아와 여러 날 자고 가기도 했다. 말이 통하는 상대가 그리웠던 다산은 공윤 윤종하가 병 조섭 차 다산초당에 묵고 있단 말을 듣고 그에게 와서, 지난 해 그가 그랬던 것처럼 한 이틀 함께 묵으며 같이 지낼 작정이었다.

 

마음에 꼭 든 자연 정경

막상 와 보니 너무 좋았다. 마음에 꼭 들었다. 둘레에는 골짝마다 온통 차나무인데다, 고개를 들어 내려다보면

강진만을 들락거리는 돛단배의 유유한 움직임이 눈에 들어왔다. 집 둘레엔 온갖 꽃들이 가득 피어 있다. 매끼 올라오는 싱싱한 새우무침이며 구미를 돋우는 반찬은 겨우내 군내 나는 음식에 질린 입맛을 돋워준다.

다산의 마음 결심

눈이 즐겁고 입이 기쁘다. 이곳에 머물며 지내면 글이 저절로 써질 것만 같다. 그렇게 한 이틀 묵어가려던 계획은 자꾸 붙드는 윤종하와 좀체 가기 싫은 내 마음이 만나 무작정 열흘로 길어지고 말았다. 욕심이 났다. 나도 여기서 내처 지낼 수 있다면 좀 좋을까? 아예 여기서 내 삶을 마무리해도 원이 없을 것 같다. 그래도 내 분수에는 너무 넘치는 곳은 아닐까? 다산은 그 와중에도 이 좋은 곳에 대해서는 서울 쪽 사람들에게는 함구해야겠다고 다짐한다. 행여 유배 죄인이 한가롭게 유람이나 하고, 별천지에 깃들어 호사를 누린다는 소문이 날까 싶어서다. “여보게, 공윤! 나 자네와 함께 이곳에서 살고 싶네. 주선 좀 해 주게나. 말 좀 넣어주게나. 이곳에서라면 내 삶을 마쳐도 좋을 것만 같네.” 다산은 이 말을 아까부터 참고 있는 중이다.

공윤과 혜장스님의 우정

공윤을 통해 다산이 마음을 결심한다.

『아암유집(兒菴遺集)』에 혜장이 윤 종하에게 보낸 편지가 여러 통 실려 있다. 짧은 편지 한통을 같이 읽어본다.

 

김 의원이 들러 가는 통에 황달병이 있는 줄을 알게 되니 놀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집사께서 평소에 망령되이 부처님을 배척하더니, 이제 스스로 장육금신이 되어 스스로를 살펴보니 어떠하신지요. 껄껄. 인진쑥을 이번에 여러 승려들에게 캐오게 해서 올려드립니다. 저도 며칠 내로 가서 뵙지요.

 

金醫見過, 審有黃病, 不勝驚慮. 執事平日, 妄闢世尊, 今日自作丈六金身, 自視何如. 呵呵! 茵蔯蒿茲令諸沙門採獻之. 貧道亦當於數日後往拜也.

 

당시 그는 황달병 증세가 있었던 듯하다. 늘 부처님 욕을 하더니 이제 온 몸이 누렇게 변해 꼭 부처님 모습이 되었으니 소감이 어떠냐고 묻는 농담 속에 두 사람의 허물없는 우정이 전해진다. 혜장은 그를 위해 황달에 좋다는 인진쑥을 캐어 오게 해서 그를 위해 보냈다. 어쨌거나 공윤 윤종하는 다산이 다산초당에 머물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해 준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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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촌의 이해 노트

✤ 이 시는 7 언 율시 평기식으로 하평성 6麻운

      <茶家誇> 의 구성이다. 多는 평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