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음의 여음/ 南遷錄

南遷錄의 시 목록

백촌거사 2009. 7. 9. 17:09

南遷錄

 

 

南遷錄

壬寅獄事로 1721년(경종 1) 12월에 巨濟로 유배가는 도중과 이듬해 4월에 賜死되기 전의 感懷 등을 읊은 詩 30題를 모은 것이다. 이 중 〈述懷〉 詩는 오언고시로 자신의 생애를 서술한 장편이다. 詩 외에 1721년 8월 建儲를 청하여 王世弟로 결정되기까지의 일을 기록한 〈記建儲時事〉, 아들 金濟謙, 손자들, 외손 閔百順에게 賜死되기에 앞서 보낸 편지가 附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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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遷錄에 실린 시 목록

   시제 (詩題)

       내용

   비고

1

臨行謹用鄭文翼公。韻贈別三淵。 辛丑

유배지로 떠나면서의 심정

2

過終南次白沙韻

남산을 지나며의 감회 北風吹雪欲沾衣

이항복의 차운

3

渡漢江次韓文公貶潮州韻

한강을 건너면서의 심회漢水沈沈落日前

한문공의 차운

4

龍仁途中

深憂宗國只心熏

5

星山與承旨 子濟謙 分路。口占書贈

臨分無語但依依

6

安磵驛村玩竹林。口占一絶

無限風霜任歲寒

7

晉州路中

荊棘誰開此路荒。

8

矗石樓有感

自是騷人感國殤。

9

松田

無負朝家養百年

10

渡海

敢言忠信感蛟鼉

11

投宿浦村除夜。次唐人韻

竹屋孤燈耿不眠。

12

冒雨作行 壬寅

此來未必皆凶黨

13

入圍籬

男兒隨處卽爲安

위리 안치

14

詠懷

採採芳蘭無可贈

15

放烏

嗟爾止誰屋。北望但長喟

16

家兒元朝次放翁韻

颶風吹送瘴雲黃

17

家兒夜坐韻

他時父子相携去

낭주(朗州, 영암)

18

春懷八首。謹用先集朗州秋懷韻

문곡의秋懷시의 운을 따라. 연작시

낭주(朗州, 영암)

19

趙相公幼亮謫中用白江韻

懷石投波是底情。

20

偶閱尤菴先生集

今年又見魁奸黨

21

士修寄一律。走次却寄

絶島如丸簇萬山

22

偶吟1

啄自如身更健

23

偶吟2

含杯恨獨醒。長安何處望。

24

述懷 凡七百十餘句

장편의 산문적인 시 살아온 일생 기록

고시의 형식 장편 710여구

25

寄濟謙 以下皆在星州作。○四月二十七日

死生但任天。公議分賢邪。

26

星山路上偶吟短律。適聞有賜死之命。 四月二十七日

帝鄕還可樂。灑落舊君臣。

27

次閔尙書 鎭遠 四言韻

一死殉國。先王鑑臨。實無愧怍。

28

次三淵除夜寄島中韻

應勝人間獨苟生

29

謹次先考臨終韻

聖世曾無塵露椑

30

臨命書贈李命龍

吾兒出圓扉。若爲傳此事

31

絶筆 二十九日○時金吾郞普。以靜菴後裔。臨門督迫甚急。公曰。何不念乃祖。仍口號爲此

愛君如愛父

靜菴後裔

32

記建儲時事 在巨濟作。以下文附

壬寅獄事에 얽힌 사건 서술

건저에 대한 산문

33

寄濟謙書 1 四月二十三日

使余嘉悅於冥冥之中。未知汝意果以爲如何也

서간문형식

34

寄濟謙書 2 二十七日

俯仰無怍。含笑入地

서간문형식

35

寄諸孫書 二十八日

益勤學業。俾無讀書種子仍絶之患

서간문형식

36

寄外孫閔百順書 二十八日

則余目可瞑矣。

서간문형식

 

 

白村 여담-------------------

 

<굽어보고 우러러보아도 부끄러움이 없다>라는 제목을 달아 한양대 정민 교수님께서 <호걸이 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 김영사 167 쪽) 라는 책에 번역을 해 주셨다.

후손의 한 사람으로 진정 우러러 감사를 드린다,

위의 목록중 30. 31. 34 35.36 등은 정민 교수님의 책에 그 풀이가 실려 있다.

손수 발간된 책까지를 보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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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번 글은 국문학을 전공한 필자가 한 번 처음으로 풀이를 한 것에 대해서 현직에 한문 선생님으로 계신 <포상 선생님>과 정암 조광조 선생님의 후손이 되시는< 미유당 선생님>께서 자문을 베풀어 주신 것에도 그저 감루스러울 뿐이다. 이제 고희를 넘긴 나이라

그 언제까지 내 조상님들에 대한 유음들을 풀이를 해 갈지는 모르겠으나, 그저 늘 배우고

깨우쳐 가는 마음으로 오늘도 컴퓨터 앞에 앉아 하루해를 넘기고 있다. 우선 여기에 그 목록이라도 실어 여러 대방가님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풀이를 해 보려고 한다. 언제나 궁금한 질문들에 대해서 전화까지 걸어 그 해답을 주시는 고전 번역원의 선생님들께도 아울러 그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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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창집 金昌集 1648(인조 26)∼1722(경종 2)족보 기록

판관공 (判官公) 계권파 (係權派)-

문정공 (文正公)상헌파 (尙憲派) 18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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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자(字): 여성(汝成) 호(號): 몽와(夢窩) 문집: 몽와집

仁祖戊子(1648년)10월 29일 生 癸丑(1673년) 進士

甲子文科領相入耆社 景宗有疾無嗣 四大臣請建儲 上奉慈殿書下 延礽君三字親傳于大臣 諭以先王遺托之意 策立延礽君爲王世弟 國本己定 而凶黨籍奧媚謀 易樹欲除其衡翼 忌公尤甚 初配巨濟拿至星州 壬寅四月二十九日受後命 英祖乙巳復官 諡忠獻 危身奉上曰忠 嚮忠內德曰獻 享英祖世室廟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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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역------현직 한문 교사이신 포상 김 형록 선생님의 국역

甲子年(1684년) 문과 영의정 김창집이 耆老社(기로사)에 들어갔다. 景宗이 질병이 있어 後嗣가 없자, 老論四大臣이 建儲를 청하였는데 임금(景宗)께서 奉慈殿 書下를 올림에 延礽君(연잉군=영조) 3자를 親히 대신에게 傳하여, 선왕께서 부탁하여 남기신 뜻임을 밝히었다. 임금의 명령으로 延礽君이 王世弟로 세워져 나라의 근본 이미 정해 졌으나, 凶黨들이 교묘하고 아첨하는 꾀를 빌려 王世弟(연잉군=樹)바꾸고 그의 衡翼들을 제거하고자 하였는데, 公(김창집)을 꺼림이 더욱 심하였다. 처음 巨濟島에 유배되어 星州까지 끌려갔는데 壬寅年(1722년) 4월 29일 사약을 받고, 英祖乙巳년(1725년)에 관직이 회복되었다. 시호가 忠獻이니 자신을 위태롭게 하면서도 임금을 받들었기에 말하기를 忠이라하고, 밖으로는 충성하고 안으로는 덕이 있어 말하기를 獻이라 하니, 영조세실묘정에 배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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老論四大臣(영의정 김창집, 좌의정 이건명, 영중추부사 이이명, 판중추부사 조태채)

 

耆社(조선 시대에, 70세가 넘는 정이품 이상의 문관들을 예우하기 위하여 설치한 기구)

建儲(왕의 자리를 계승할 왕세자나 황태자를 정하던 일)

奉慈殿(광해군 2년(1610)에 개수하여 공빈김씨(恭嬪金氏)(광해군 생모)의 사당으로 하고 이름)

書下( 임금이 스스로 임관(任官)하는 자(者)의 이름을 써서 내려 주는 것)

衡翼(재상들과 보필하는 자)

後命(유배당한 죄인에게 다시 사약(賜藥)을 내리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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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配 貞敬夫人 潘南 朴氏 丙戌生(1646년) 丙申(1716년)十一月六日 卒 父 世楠 祖 大司憲 潢 曾祖 寺正東彦 外祖 參判李行進 本全義

3.墓 驪州嶝神面草峴乙坐合窆 誌 左相閔鎭遠撰 表前面男濟謙書 夫人誌弟昌翕撰

竪一碑於四世墓庭 追記 表石中未鐫之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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壬寅獄事(壬寅獄事)----------

조선 후기 1721년(경종 1)과 1722년에 세자 책봉을 둘러싸고 일어난 옥사.

신축(辛丑)·임인(壬寅) 두 해에 걸쳐 일어났으므로 신임사화라 하며, 일명 임인옥 사이라고도 한다.

 

 몽와 김창집의 묘비

  올 여름 산소 앞에서 배례를 드리며

  산소 오른쪽 늘어진 소나무 바람에 당신의 그윽한 유음이 들리는 듯. 여주군 대신면 초현리 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