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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현궁의 다음 주련을 쓰신 분께----------

백촌거사 2013. 9. 17. 21:17

 

운현궁의 주련을 쓰신 분께 ----------------

<경해> 라는 글자를 어떻게 쓰셨는지요.

1. 노안당에서-------------------

 귀하게 얻은 자료에는 崔白圭라는 분이  제출한 싯구라고 하는데, 다음처럼 풀이가 되어  있었다. 깨우치는 말을 듣고자하나 끝내 얻어듣기 어려운데 ---- 警咳라고 기록.

세번째와 네 번째는 어떤 글자를 쓰신 것인지요.

 

 

 

 

 

2. 이로당에서 -------------------

 이 글은 高 炳 德 이라는 분이 제출하여 선택된 시어이다. 종로문화원에서 발간한 < 운현궁> 책자에 기록이 되어 있다.

 대원군의 호령소리 뒷전에 들리는 듯으로 해석이 되어 있었다.

경해를 警해欬라고 한자를 썼다. 돼지 해 글자가 들어간 기침해를 쓴 것이 확실하다면 앞의 글자는 謦기침 경 자를 써야 옳을 것 같은데 잘못 쓰신 것 같다.警해欬 라는 표제어는 없다.

셋째와 넷째의 글자는 어떤 글자를 쓰셨는지요.

 

 

 

 

 

01

02

03

04

 

警 謦-어느자인가요.

 

咳/ 欬 어느 자인가요.

  첫번째글자와 같은 자인가요.

 둘째 글자와 같은 자인가요. 


 

 

필자는 고대국문학과를 나와 강단에서 30 년을  근무한 사람으로 한자 초서는 까막눈이나 다름 없는 사람입니다. 초서를 진정 아는 분의 도움을 받으며 공부를 하는 사람입니다.

 

謦欬 警咳 謦咳

謦欬 警咳 謦咳

 

글자를 표기한 단어가 국어사전에 실려 있습니다. 경을 길게 발음합니다.

警咳 라는 단어는 표제어가 없지만 <경계하는 말씀>의 뜻으로 해를 該로 쓰기도 한다고 합니다.

  중국어 사전인 在线新华字典에는 다음처럼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謦咳 .=謦欬。 謦欬:咳嗽声,引申爲言笑。指長久没有听到對方的談笑声。即很久不通消息

利喉曰謦欬——《通俗文》

行路过過者,稍顧視謦欬皆呵止也。——陸游《老學庵笔記》

 동양학을 전공으로 하신 <운고당님>께서 바르게 지적을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다시 여러 가지 자료를 조사해 보면은

謦:欬 謦咳 警咳 등이 다 쓰이고 있음에 주목을 해야 하겠다. 각 주련을 쓰신 분도 그 점을 따라 가신 것 같다. 오류로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警咳쓴 글의 예

1.외람되이 가르침을 입어 / 叨承警咳

2 다시는 선생의 가르침을 받을 수 없구나 / 無復先生警咳親

3 기쁘게 말씀 들을 당시 / 喜聞警咳

4 일찍이 가르침을 받들어서 / 夙承警咳

5 여러 번 가르침을 받았네 / 累承警咳

6  한마디 기침 소리가 골짜기에 메아리치네 / 警咳一聲虛谷答

7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여관(旅舘)의 쓸쓸한 것도 지나보았으며, 기운을 토하여 문장을 지음에 우연히 진인(眞人)의 경해(警咳)를 발(發)하게 하였습니다

8 매양 한 번씩 꿈 속에서 뵐 적에도 의형(儀形)과 경해(警咳)를 열에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여, 아직껏 그 참모습을 알지 못하고 있으니, 아, 천지는 다함이 있어도 이 한(恨)은 다함이 없을 것이다

9. 음성인들 들으오리까만 / 警咳焉憑

10. 애통해라 이제 그 음성 들을 길이 없으니 / 慟警咳之逾邈

11. 다시는 옷깃 여미고 가르치심 받을 길 없지마는 / 不復摳衣承警咳

 

12 .마치 가르침을 직접 듣는 듯 / 警咳怳若

 

[주D-003]오경(鼯徑)의 경해(警咳) : 다람쥐나 다니는 깊은 산길에서 사람의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기쁘다는 뜻임. 《장자(莊子)》서무귀(徐無鬼)에 “夫逃虛空者 藜藿柱乎鼪鼯之逕 跟位其空 聞人足音跫然而喜矣 又況乎昆弟親戚之謦欬”라고 하였음.

13.문득 낭함(琅函 진귀한 편지)을 멀리 나에게 보내주니, 이웃 사람도 찾아와 안부 묻는 일이 없는데, 이와 같은 용맹정진(勇猛精進)이 있음을 볼 때 불 속에서 솟아난 연꽃도 미치지 못할 뿐만 아니며, 오경(鼯徑)의 경해(謦咳)쯤이야 어찌 말할 나위나 있겠소

。忽此琅函遠辱。其隣之夫無過而問焉。而有此勇猛精進。火中之湧現蓮花。不啻過也。鼯徑警咳又何足道哉信後經時。塞雪一丈。

阮堂先生全集卷四 月城金正喜元春著與沈桐庵[十二]

14.선생님의 모습 더욱 멀어져갔네 / 警咳愈邈

15.웃음소리 기침소리 아직 남았네 / 警咳尙依俙

16.낭랑한 그 목소리 영원한 작별 되었고 / 琅然警咳俄成訣

 

번역이 되지 않은 문집에는529개의 글에 씌어 있었다.

1. 警咳如聞。靚潛無譁

2.念昔門屛登。諄諄警咳承

3.耳似聞警咳。身似侍列於左隅

4.風彩凜烈。如聞警咳

5.而猶眷眷於無狀。乃假夢寐而賜警咳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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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에서>

병암(屛巖)은 옛 선몽대 동주(洞主) 우암선생의 경해(警咳)가 깃든 곳이요

 

우리는 讀書를 通하여 制限을 超克할 수 있으니, 古人과 面對하여 그 警咳에 接할 수도

경해(警咳)만 듣고서, 그 사람의 말씨의 아름다움을 지레 짐작할 수 있다는 것과 같다.” 했는데,성광(醒狂) 백연(伯淵)만이〈그것을〉믿지 않고, 여경이 무(無) 자를 지녔다는 것은 겉으로 하는 말이다.” 하였다....

 

경해(警咳)를 듯 밥는듯 심신(心神)이 숙연(肅然)하여 비린(鄙吝)이 절로 없다

 

그는그러한要職(요직)의 렛델로보다도 國語國文學者(국어국문학자)로서 오랫동안의 敎壇(교단)을통한진실된警咳(경해)의反映(반영)과 文章道(문장도)에있어서 字字句句精金美玉(자자구구정금미옥)같음과

 

茶山(다산)의英氣卓(영기탁)□하야 警咳(경해)로서 人心(인심)을 感發(감발)함이 만핫스니 이것이 近世(근세)

 

太平洋(태평양)을 건너는 2週日(주일)동안 우리는 每日(매일)같이 博土(박토)의 警咳(경해)에 接(접)했는데 博士(박사

 

<조선왕조실록에서>

1.臣每讀此疏, 感其忠誠, 甚恨今日, 無以此警咳於殿下也。 伏乞少留澄省也。 臣每念此事, 憂歎竟夕。 竊怪殿下何故, 自輕如此 신이 이 소를 읽을 때마다 그 충성심에 감동하면서 오늘날 이같이 전하를 깨우쳐 말씀드리는 자가 없는 데 대해 매우 한스러워하였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잠깐 유의하여 조용히 성찰해 보소서.

효종 8년(1657 정유) 8월 16일(병술)

玆敢姑停薦望, 昧死警咳。영조 47권, 14년(1738 무오 ) 2월 26일(무신) 2

이에 감히 우선 천망한 것을 정지할 것을 죽음을 무릅쓰고 경해(警咳)8953) 합니다.”

  [註 8953]경해(警咳) : 윗사람에게 뵙기를 청할 때 자기가 있음을 알리기 위한 기침. ☞

조선왕조실록의 설명-------------------------------------

2.왕세손이 또 옆에서 어수(御手)를 주무르며 한참 동안 경해(警咳)하고서 승지가 들어왔다고 아뢰니, 임금이 말하기를,

“승지가 무엇 때문에 왔는가?”。” 王世孫又從傍按摩御手, 警咳良久, 奏承旨入來, 上曰: “承旨何爲而來 英祖 52年(1776 丙申) 3月 3日(甲戌)

3. 또한 일찍이 이석(离席)의 자리에서 경해(警咳)했던 것이었기 때문에, 아울러 일에 앞서서 경계를 곁들었던 것인데, 비지(批旨)를 받들고 보니 ‘묘당(廟堂)에서 품처(稟處)하도록 하였다.’는 하교였습니다而亦嘗警咳於离席者, 故竝附先事之戒, 及承批旨, 有廟堂稟處之敎。正祖 卽位年(1776 丙申 ) 6月 15日(甲寅)

4. “臣等久蒙慈育之恩, 每於登筵之時, 簾帷在上, 邇承誨諭, 躬奉警咳, 若孺子之依慈母矣。

“신(臣)들이 오래 자육(慈育)하신 은혜를 입어 번번이 등연(登筵)하였을 때에 염유(簾帷)가 위에 있어 가까이 가르침을 받고 몸소 경계를 받은 것이 마치 어린 아이가 자모(慈母)를 의지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憲宗 6年(1840 庚子 ) 12月 25日(辛巳)

5.夫以我殿下虛己察邇之盛德, 而又使千古諍臣, 日警咳于左右, 盈庭多士, 競披露其心腹, 則太平萬世, 自此其基矣, 豈不休哉? 대저 우리 전하의 겸허한 자세와 가까운 데를 잘 살피는 성대한 덕을 지니시고 또 천고의 쟁신(諍臣)들로 하여금 날마다 좌우에서 경계하는 말을 하게 하고 조정에 가득한 다사(多士)들이 다투어 가슴에 품고 있는 말을 드러내어 피력하게 된다면, 만세(萬世)토록 태평을 누릴 기반이 이로부터 시작될 것이니, 어찌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正祖 6年(1782 壬寅 ) 3月 24日(辛酉)

 <구글에서>

 碑於警咳杖

得睹其儀形 得聞其警咳

折旋府仰과 歆伸警咳(몸의 온갖 동작)은 남의 힘을 빌림이 아니로다

장봉한이 세상을 떠난 직후에 아들인 以兪가 부친이 쓴 詩‚ 文‚ 序‚ 記‚ 箴‚ 銘과 鄭逑·張顯光 두 선생과 주고 받은 편지 등을 모아 ≪警咳篇≫ 3권을 엮었다

일시경해(一時警咳) : 일시에 기침소리를 내는 것이다. 기침소리를 낸다는 것은 가르침을 편다는 것이다

<다음에서>

噫!淑人警咳11)永秘12)一書僅存而,凡我孫輩,零替13)無狀,使此書終未免世遠,湮沒之歎,故不... (326 페이지) 사물을 지시하는 말 경계하는 말씀咳=該

독실하지 못하였으며 旣不得操几杖承(기부득조궤장승)/그러는 동안에 안석과 지팡이를 받들어 잡지 못하였습니다. 警咳於燕申之日(경해어연신지일)/스승님(겸산을 지칭한 듯하다)께 한가하고 편안히 쉬는 날에 뵙기를 청하면서...

 

謦咳 쓴 글

謦咳[註 1173]경해(謦咳) : 면알(面謁)하는 사람의 언성. ☞

전후에 근밀(近密)한 자리에서나 경연(經筵)의 반열에서 경해(謦咳)1173) 의 의무(義務)를 다하게 될 때마다 매양 화평하게 받아 주시는 성덕(盛德)을 우러르게 되었고, 지난달에 연석(筵席) 안에 있을 적에는 특별히 온순(溫諄)하게 천어

臣用是憂懼, 不遑寧處。 前後近密之地, 經筵之列, 時效謦咳之義, 每仰翕受之盛, 及至前月筵中, 天語特地溫諄, 至擧春坊舊事, 許令有懷無隱。 臣於是, 欽歎榮耀, 感極而涕。 噫! 士爲知己者死。 雖敵以下尙然, 況於君父乎? 夫以我殿下不自滿假之盛德

正祖 5卷, 2年(1778 戊戌 / 청 건륭(乾隆) 43年) 4月 20日(己酉) 4번째기사

음성은 들리지 않았습니다 / 謦咳無聞

기척이 어제만 같은데 / 謦咳如昨

남긴 말씀 되새기고 / 謦咳酬酢

그 말씀을 많은 이가 몰려와서 들었다네 / 謦咳羣聽

평소 담소하시던 모습 회상하니 / 追惟謦咳

인기척이 있는 듯하여 내 아이인가 했더니 / 如聞謦咳是吾兒

왜놈들이 우리들을 공경할 거네 / 蠻夷欽謦咳

가르침이 십분 부족했으니 / 十分少謦咳

그 말씀을 많은 이가 몰려와서 들었다네 / 謦咳羣聽

 

謦:欬 쓴 글

    < 다음>에서

笑談謦欬生風雷 담소하다 기침하면 바람이 불고천둥이 치며東坡 蘇軾

몸의 털구멍에서 빛을 내심(通身放光),큰기침하심(경해(謦 欬)),

<번역원의 글에서>

남쪽으로 오신 뒤 가르침 듣지 못했는데 / 南來未承謦欬

[주D-004]공곡공음(空谷跫音) : 빈 골짜기에 들리는 사람의 발소리, 즉 지극히 반갑고 기쁜 것을 말한다. 《장자(莊子)》 서무귀(徐無鬼)에 “혼자 빈 골짜기에 도망쳐 살 적에 인기척만 들려도 반가울텐데, 더구나 형제와 친척의 기침 소리가 옆에서 들려 온다면 어떻겠는가.[夫逃虛空者 聞人足音跫然而喜 又況乎昆弟親戚之謦欬其側者乎]”라고 하였다.

이곳에서 자네 만난 그 기쁨 말한다면 / 此地逢君喜有餘

공곡공음의 비유 어찌 다 가당하랴 / 空谷跫音那可

선생의 목소리 까마득하니 / 邈矣謦欬

삼가 가르침 받들어 / 承奉謦欬

그 기침소리 못듣겠고 / 竟不聞兮謦欬

옛 성현의말씀 들을 곳 없구나 / 謦欬無聞

친히 생시의 음성을 듣는 듯하네 / 如親謦欬

< 조선왕조실록에서>

1.顧瞻樑柜, 肅然如接乎容色也, 澟然如承乎謦欬也,

태묘(太廟)에 제향하실 적에 양려(樑梠) 를 돌보심에 숙연(肅然)히 안색을 접한 듯하고 늠연(澟然)히 성음을 듣는 듯하여, 중종 , 8년(1513 계유 / ) 2월 24일(계해)

2.○敎曰: “今當誕辰, 祗謁眞殿, 如承謦欬, 追慕益新。하교하기를,

“이제 탄신일을 당하여 공손히 진전(眞殿)을 배알하니, 마치 살아 계실 때의

기침소리를 듣는 것 같아서 추모하는 마음이 더욱 새로웠다

         純祖 33年(1833 癸巳 ) 9月 13日(庚辰)

3.而夏鎭等以奸細之徒, 久處經幄之地, 未嘗以道義之說, 謦欬於前, 而遇文義少近於刑殺人, 則跳踉抵掌, 如得奇貨, 增衍巧开, 竝進交和, 罔恤其悖逆經旨, 邪慝之狀, 有不忍正視 그래서 이하진 등 간사한 무리들이 오랫동안 경연(經筵)의 자리에 있으면서 일찍이 도의(道義)의 말로써 임금의 앞에서 이야기하지 못하고, 그래서 강하는 글 뜻이 조금이라도 사람을 형벌로 죽이는 데 가까운 것을 보면 날뛰며 손바닥을 치면서 마치 기이한 보배를 얻은 듯하여 말을 더 보태고 교묘하게 꾸며서 함께 나란히 나아가 번갈아 화답하여 경의 뜻에 패역(悖逆)된 것을 근심하지도 않으니, 이들의 간특(奸慝)한 모양은 차마 바로 볼 수가 없었다. 肅宗 1年(1675 乙卯 ) 4月 21日(己酉)

 

 

 

 

 필자의 여담-----------------------------------------------------------------------

운현궁의 守直舍 주련을 쓰신 분들은 다음과 같다.

광산인 靑雲 金宅春(1922-)/ 광산인 曉山 金重錫(1923-)

밀양인 鳳窩 朴奭遠(1916-2002)/ 안동인 小軒 金佑振(1916-)

창령인 如泉 曺校煥( 1943-)/ 연일인 農山 鄭充洛 ( 1944-)

제일 궁금한 것이 많았던 彯形似畵尙明鮮_ <경쾌한 형태그림 같아 밝고도 고움 넘치네.>--金重錫선생님의 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