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풍류/선조님들의 옛길

김 원행(金元行)의 平丘道中(평구도중)

백촌거사 2012. 12. 26. 20:52

      ☎ 필자 조상님들이  지나셨던 그 길을 따라 조상님들의 숨결을 찾아가련다.    

              平丘道中(평구도중) ---------

 

                                                                       김 원행(金元行)

                                                                     1702년(숙종 28) - 1772년(영조 48)

                                                                                  자 伯春 호 渼湖, 雲樓 시호 文敬公

                                                                            李縡의 門人으로서 老論 洛論을 대표하는 山林學者

                                                                               석실서원에서 講會.

   

雨過靑郊不起비 뿌린 푸른 교외 티끌 일지 않았고,

草平官路馬徘 풀숲의 平丘驛엔 말들이 배회하네.

眼前忽有五臺信。 눈앞에는 갑자기 오대산 쪽 환한데.

已遣滄波滿地 푸른 물결 보내어 땅 가득 젖었구나.

灰자 운율: 埃 徊 來

우과청교불기초평관로마배

안전홀유오대신 이견창파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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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 이해>

雨過: 이 시의 분위기를 만드는 핵심 요소. 봄비를 뿌린 뒤의 청명한 배경.不起埃: 더욱 산뜻해진 모습. 마음의 기분도 더 상쾌해질 것이다.< 불기애의 표현이 아주 공식적이다.

野路無時不起埃 江岸風纖不起埃 庭內寥閑不起埃 晴晝陰濃不起埃

挾道長松不起埃 滅沒長楸不起埃 雪後江山不起埃

 

官路: 관리의 길. 국도, 대로. 말이 머물러 있는 곳으로 보아[驛路]를 말함. 평구역 근처에는 역말이라는 마을 이 있었다. [驛路]: 예전에, 벼슬아치가 역마(驛馬)를 갈아타고 숙박을 하는 곳으로 통하던 길. 五臺 信:1747년 오대산 유람에 앞서 먼저 여주를 향해 가는 도중에 평구역 근처의 상황을 그린 시이라. 비가 내린 후에 오대산이 있는 쪽이 더욱 환해지는 정경을 담고 있다. 석실서원- 평구역- 두미- 월계- 대탄- 양평- 여주- 원주로 가는 노정을 따라 가신 것 같다.

滄波滿地來: 滄波는 푸른 물결로 강물을 말함이다. 비가 내린 뒤에 강물도 늘어났을 것이고, 내린 비로 땅도 흡족히 젖어 있음을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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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의 시제들도 모두가 석실서원에 머물러 계시면서 양평 여주 원주로 가는 과정의 모습이 그려진 시 들이다.

廻舟

水國移舟晩。澄光淼太淸。楊江落日滿。巴岸遠潮生。雲皛開篷色。

風微倚棹 聲。停杯問蠶嶺。因見古人情。

自渼湖發船。向驪州。丁卯

朝發石室祠。登舟自玆始。江山旣淸曠。雲日况晴美。桃花依絶岸。老屋多臨水。中流散雲帆。風濤浩未已。三峰出天畔。秀色每相値。持杯屢相屬。歌詠亦互起。樂哉滄洲趣。吾道信在此。

< 어느 분의 해석인지는 몰라도 석실서원을 소개하는 글에는 자주 등장하고 있다. 해석을 해 주신 분에게 큰 고마움을 전해드린다.>

驪岸

滄波渺不極。靑山忽若無。中流縱所如。四眺覺船孤。點點島嶼遠。歷歷沙岸紆。蒼然二陵樹。佳氣一何殊。渚禽戱蘭橈。汀花映金壺。朱樓已縹緲。相望若可呼。吾家亦易知。垂柳蔭兩衢。嗟余滯浪跡。久負名勝區。明朝買扁舟。散髮老江湖。

楊江

楊江四月綠如油。柳暗長堤草滿洲。枕上貪看龍嶽色。輕舟已下大灘流。

安昌江

安昌江上麥風淸。馬得長堤四足輕。翠壁澄流經過盡。又看雉岳面前生。

앞으로 필자의 블로그에 올리려고 계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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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촌 노트>------------------------------------

1745년 공의 나이 44세에 청주에서 渼湖로 옮기신 후 석실서원에서 講會를 열며 석실서원의 중흥을 일으키셨다. 이 시는 석실서원에 머무실 때 여주를 거쳐 오대산과 강릉을 유람할 즈음에 쓰신 시이다. 지금의 養正驛 근처인 平丘驛을 지나며 봄비 내린 후의 산뜻해진 자연의 정경이 그려져 있다.

 

봄비가 뿌려진 후에 흙먼지 하나도 일지 않는 역마 길의 환한 모습,

평구역에 도달하여 잠시 쉬고 있을 때에 말들의 서성거리는 동적인 모습

멀리 강원도 오대산 저쪽이 뵈는 듯 환해진 앞 산천의 정경, 그리고 비에 젖은 축축해진 땅, 길옆으로 흘러가는 강물의 환한 모습들에 마음도 상쾌해진 여정 속의 서정이 넘쳐온다. 저 앞쪽에 흘러가는 渼湖江 푸른 물결엔 사대부의 수치를 벗어나려고 수많은 제자들에게 열정의 講會를 펼쳤던 선조의 뜨거운 정신이 흘러가는 듯하다.

 

산소는 지금은 영원히 볼 수가 없어도 석실서원 , 평구, 미호 ,용호. 여주,를 지나시며 남긴 작품들은 우리 후손들에게 남겨주신 훌륭한 유음들이다.

평구(平丘) 또는 평구(平邱)라는 지명을 노래한 다른 작품의 예시

평구역(平丘驛 ; 지금의 남양주 삼패동)일대

평구역에 해가 져서 까마귀도 나무에 없고 / 平邱驛樹落昏鴉

길은 막다른 평구역이오 / 路盡平邱

강물은 깊어라 판사정 앞에 / 江深判事亭

게가 바로 평구역 이라네 / 指點平丘

가고 가 깊숙한 산발로 들어가니 / 行行入深麓

 

1.白湖,윤휴(尹鑴) (1617년(광해군 9)- 1680년(숙종 6))

아침에 성 동쪽 문을 나서 / 朝出城東門

평구역에서 말에 꼴을 먹였네 / 秣馬平丘驛

역관은 거의가 허물어졌는데 / 驛館旣頹落

안장 내려놓고 높은 언덕에 앉아 / 解鞍高阜息

서로 흐르는 한강수 보니 / 西臨漢水流

새하얀 봄빛이 호호탕탕하고 / 浩蕩春光白

북으로 고개 돌려 종남산을 보니 / 北顧終南山

아득히 아지랑이 속에 묻혀 있네 / 蒼茫擁煙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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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택당(澤堂) 이식(李植 1584년(선조 17)~1647년(인조 25))

조금 휴식 취하는 역정(驛亭)의 대낮 / 小憩郵亭午

앞으로 가야 할 길 아직도 한참인데 / 前塗尙覺賖

낮게 드리운 먹장구름 금방 비 올듯 / 玄雲低欲雨

멀리 이어진 맑은 강물 물결도 일지 않네 / 白水迥無波

< 고전 번역원 작품인용>

 

3.平丘驛 遇雨 < 평구역우우>-평구에서 비 만남.

이 이 (李珥)1536(중종 31)~ 1584(선조 17).

덕수(德水). 자는 숙헌(叔獻), 호는 율곡(栗谷)

疾雷洩驟雨。 번개 치며 소나기 내리 퍼붓고

挾風驅祝融。 바람 숨겨 여름을 휘몰아 와서.

萬里炎威霽。 만리에 심한 더위 풀리게 하니

千山水墨濃。 모든 산 수묵으로 물들여지네.

<栗谷先生全書卷之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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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구(平丘)-- 평평한 언덕/ 平丘驛

1.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온 관동별곡에서 접했던 평구 마을이다.

고려시대 이후부터 이 지명을 사용해 왔으며 마을 모양이 쇠고리를 닮았다 하여 쇠고리 마을 이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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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江湖)에 병(病)이 깊어 죽림(竹林)에 누웠더니, 관동(關東) 팔백리(八百里)에 방면(方面)을 맡기시니, 어와 성은(聖恩)이야 가디록 망극(罔極)하다.

연추문(延秋門) 드리다라 경회(慶會) 남문(南門) 바라보며, 하직(下直)고 물러나니 옥절(玉節)이 앞에 섰다. 평구역(平丘驛) 말을 갈아 흑수(黑水)로 돌아드니, 셤강(蟾江)은 어디메오, 치악(稚岳)이 여기로다. <송강 정철(松江 鄭澈. 1536~1593의 관동별곡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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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조선시대 한양에서 망우리를 지나 왕숙천을 건너 춘천과 양평으로 가는 갈림길에 해당하는 교통의 요지였다

3.평구역(平丘驛) 주 동쪽 70리 지점에 있어, 본도의 속역 열 한곳을 찰방하 는데, 녹양(綠揚)ㆍ안기(安奇)ㆍ양문(梁文)ㆍ봉안(奉安)ㆍ오빈(娛賓)ㆍ쌍수(雙樹)ㆍ전곡(田谷)ㆍ백동(白冬)ㆍ구곡(仇谷)ㆍ감천(甘泉)ㆍ연동(連洞) 등이다.

<경기(京畿).양주목(楊州牧)신증동국여지승람 제11권에서>

 

4. 平丘驛 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에 속했던 남양주시 삼패동 평구 마을에 있 던 교통·통신 기관.

18세기 중반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따르면 말이 9필, 이속이 24명, 남자 종이 44명, 여자 종이 9명이 속해 있었다고 한다.

<여지도서(輿地圖書)>

1757년(영조 33)에 각 읍에서 편찬한 읍지를 모아 만든 전국 읍지로

295개의 읍지와 17개의 영지(營誌) 및 1개의 진지(鎭誌) 등 총 313개의 지지가 수록.

삼패동의 역말은 조선시대 평구역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며, 평구역터로 추정되는 곳은 도로변에 접한 삼패동 365-5번지 집 부근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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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문의 다음 문집 속에서 平丘 라는 지명을 찾을 수 있었다. 특히 청음. 몽와, 삼연, 미호 선조님의 글속에는 자주 平丘의 지명이 등장하고 있다.

청음집(淸陰集) 김상헌(金尙憲) 1570(선조 3)~ 1652(효종 3).

퇴우당집(退憂堂集) 김수흥(金壽興) 1626(인조 4)~ 1690(숙종 16).

몽와집(夢窩集) 김창집(金昌集) 1648(인조 26)∼1722(경종 2).

삼연집(三淵集) 김창흡(金昌翕) 1653(효종 4)~ 1722(경종 2).

노가재집(老稼齋集) 김창업(金昌業) 1658년 (효종 9)- 1721년 (경종 1)

관복암시고(觀復菴詩稿) 김숭겸(金崇謙) 1682(숙종 8)~ 1700(숙종 26).

미호집(渼湖集) 김원행(金元行) 1702(숙종 28)~ 1772(영조 48).

풍고집(楓皐集) 김조순(金祖淳) 1765(영조 41)~ 1832(순조 32).

모주집(茅洲集) 김시보(金時保) 1658(효종 9)∼1734(영조 10).

동포집(東圃集) 김시민(金時敏) 1681(숙종 7) ∼ 1747(영조 23)

증소집(橧巢集) 김신겸(金信謙) 1693(숙종19)~1738(영조14)

용재집(庸齋集) 김근행(金謹行) 1713(숙종39)~1784(정조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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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상을 겪었어도  너만은 저 앞쪽의 미호강을 기억하리.

   석실 서원은 지금 없어도 저 앞쪽의 미호강은 알고 있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