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쓴이 : 이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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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흔세 번째 이야기 2014년 8월 21일 (목) 꽃이 핀들 봄이런가 지난겨울은 눈도 꽃이려니
이번 봄날엔 꽃도 눈이런가
눈이야 꽃이야 모두 참이 아니건만
어찌하여 이 마음 찢어지려 하는가昨冬雪如花
今春花如雪
雪花共非眞
如何心欲裂- 한용운(韓龍雲, 1879~1944)
「견앵화유감(見櫻花有感)」
『한용운전집(韓龍雲全集)』
“吾等은 玆에 我朝鮮의 獨立國임과 朝鮮人의 自主民임을 宣言하노라.……” 1919년 3월 1일 민족 대표 33인은 인사동의 태화관에 모였고, 33인의 한 사람으로 그 자리에 참석한 한용운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일본 경찰에 잡혀갔다. 만해(萬海) 한용운은 이때에 투옥되어 3년의 옥고를 치른다.
승려인 한용운은 「님의 침묵」의 시인으로 현대시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시인이기도 하다. “님은 갔습니다. 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를 한번쯤 읊조려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의 시는 서정적이면서도 강한 저항 의식이 담겨있다. 이런 시인 한용운은 현대시 뿐 아니라 많은 한시 작품도 남겼다. 위에 소개한 한시는 그가 옥중에서 지은 시편 중 하나이다.
‘지난겨울’은 그가 자유의 몸이었을 때이고, ‘이번 봄’은 구속되어 자유를 박탈당한 때를 말한다. 그리고 ‘눈’은 추운 겨울과 억압을 상징하고 ‘꽃’은 따뜻한 봄과 자유를 상징하고 있다. 자유의 몸일 때에는 겨울의 눈도 꽃처럼 포근하게 느껴지더니, 구속의 몸이 되어서는 봄의 꽃도 겨울 눈처럼 차갑게만 느껴진다. 이러한 감정이 어찌 개인의 옥중 감정에 그치겠는가. 같은 시대 온 민족이 함께 느끼던 암울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마음을, 같은 시대를 살았던 시인 이상화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고 반문하며 표현하기도 하였다. 승려로서 구도자의 삶을 택했던 만해는 일반인보다 고뇌가 더욱 심하였던 듯하다. 눈이건 꽃이건 진리에 견주어 보면 모두 허상에 불과한 것이라 마음 쓸 것이 없겠지만 조국의 현실을 외면할 수 없어 마음이 찢어지도록 아파하였다.
시대를 아파하며 외면하지 못했던 만해는 자신이 갈 길을 시조의 형식을 빌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사나이 되었으니 무슨 일을 하여 볼까
밭을 팔아 책을 살까 책을 팔아 칼을 갈까
아마도 칼 차고 글 읽는 것이 대장부인가 하노라
- 「남아(男兒)」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변절하여 시대의 아픔에 눈감았을 때에, 만해는 끝까지 절의를 지키며 활동하였다. 그러나 끝내 해방된 조국을 보지 못한 채 해방 한 해 전인 1944년 생을 마감한다.
만해가 그토록 바라던 해방일, 광복절이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와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기념을 하였다.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아픔과 희생과 노력으로 얻어진 해방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허나 이보다 더 잊지 말아야 할 날은 8월 29일이 아닐까. 1910년 8월 29일, 우리는 이날 일본에 국권을 빼앗겼다. 환희의 역사에 가려 정작 되새겨야 할 아픔의 기억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아물래야 아물지 않는 상처를 안고 아직도 봄을 맞지 못한 분들이 저렇게 많은데...글쓴이 : 이정원(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
선학원 전시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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