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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부훤당 소고(小考)

백촌거사 2013. 8. 3. 11:10

 

부훤당 소고(小考)

 

 

 

 

  부훤당(負暄堂)은 조선중기(1633~1716) 우리 지역의 선비로서 문장과 학식이 뛰어났던 김해(金楷) 선생의 호(號)를 말한다. 그는 당대의 문사들과 교우하며, 많은 글들을 남겨 지역 유림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부훤당이라는 이름은 그가 살았던 산북면 보가리(保家里) 즉, 지금의 근암서원이 있는 서중리(書中里)에 있던 당호(堂號)를 말한다. 집의 이름을 자신의 호(號)로 삼은 것이다. 자(字)는 정칙(正則)이며 안동이 관향(貫鄕)이다.

 

 부훤(負暄) 이라는 의미는 ‘겨울날 등에 햇볕이 따사롭게 내리 쬐는 것’을 일컫는다고 한다. 이는 송나라의 가난한 농부 고사(古事)에서 빌려왔다고 전해진다. 그는 이곳에서 살며, ‘부훤당에 부쳐’라는 시를 읊었는데, 이 시에 이름의 의미가 담겨 있다. 그 전문(全文)은 다음과 같다.

 

 

늦은 아침 창문 열고 햇살 쬐니,

춥던 몸이 점점 따뜻해지네

이 몸이 한가함은 참으로 분에 넘치니,

이것을 가져다 임금께 드릴 수 있으면.

 

   어떤 이는 이 시에 대하여, 따스한 햇볕 외엔 아무런 계책조차 갖지 못하는 작가의 처지를 안타깝게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

사실 부훤당은 젊은 시절 생원시에 1등 5인(人)으로 합격하는 등 자신은 물론 가문과 그 주변으로부터 학문적 재능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대과에 급제하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평생 학문에 힘쓰며 활발한 활동을 통해 지역 유림에 관계된 문자 대부분을 짓는 등 명망이 높았다.

 

 

 

  그는 무엇보다 시를 즐겼다. 그가 지은 부훤당 문집 의 상당 부분이 한시(漢詩)가 차지한다. 잠시 시 한편을 감상해 보자.

그가 집 뜰에 계단을 만들어 봉선화와 해바라기, 매화와 국화 등을 심었는데, 한여름 어느 날, 기다리던 해바라기가 피었다. 그 꽂을 보고 한 편의 시를 지었다. ‘해바라기꽃’이라는 제목이다.

 

마루 위 햇볕 등 진 노인네.

섬돌 앞 해바라기,

우연히도 만났구나.

그윽이 서로 벗이 되었네.

 

   간결하고 산뜻하다. 군더더기가 없는 매끈한 결구(結句)이다. 읽는 이들에게 어느 새 미소 짓게 하는 시이다. 이 시는 부훤당의 벗 전오륜의 문집에도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고 하는데, 앞의 두 구가 부훤당의 것이고 뒤의 두 구는 자신이 지은 것이라고 적었다. 그래서 자주 읽다보면 서로 주고받듯 노래하는 느낌이 든다.

 

 

 

 문집에 있는 시의 제목들을 살펴보면, 옛 사람들은 시를 일상화했던 것 같다. 지금의 우리들이 관념적인 주제에 관심을 가진 것과는 다르다. 사람사이의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봄날 산에 놀러가는 일상의 모임, 섬돌을 쌓아 꽃을 심고 지은 시 등 그 때 흥이 일면 시를 지었다. 더하여, 운(韻)을 내어 서로 주고받으며 시재(詩才)를 뽐내곤 했다.

 

  그는 산북 큰마을 등 주변 향촌의 풍광도 즐겨 읊었다. 한두리의 정경을 ‘도촌 팔경’에 담았고, 노년에 살았던 근암서원이 있는 마을, 즉 보가리의 풍경 열두 곳을 ‘원촌 십이경’이라는 시에 그렸다.

도촌 팔경’ 중의 시 한편, ‘관악창송(鸛岳蒼松)’을 엿보면 다음과 같다.

 

‘드높은 산에 우뚝 서 남과 섞이지 않았나니,

맑은 그늘 세상 사람들과 나누기 어려워라.

아느냐, 저 늙은 것으로 이 마을 아름다우니,

기다려 보라. 솜씨 있는 목수가 한 번 돌아볼 날을.

 

   관악은 황새바위라고 한다. 산 위에 있는 바위에 우뚝한 푸른 노송의 덕(德)을 노래하였는데, 마지막 결구(結句)는 의외다. 소나무의 아름다움을 만연히 찬(讚)할 줄 알았는데, 느닷없이 우뚝한 소나무를 좋은 목재(木材)로 쓸 욕심을 보이는 것이다. 독자의 허(虛)를 찌르는 반전이다.

 

 그는 영순 큰마을, 이목마을 백포에 있는 백석정(白石亭)의 풍광도 더불어 읊었다. 이른 바 ‘백석정 십경’이다. 하얀 백사장과 푸른 물결이 계절에 따라 눈에 그려지는 서경들이다. 그 중의 시 한편이다.

 

느린 걸음 강을 따라 걷기를 수 리 남짓,

맑은 물결 굽어보니 허공이 잠겨있네.

사람들은 물가에 놀고, 물고기들은 물에서 노니는데,

어디에 있는가, 느긋이 노니는 나의 물고기는.

   백포 물속을 들여다보며, 그곳에 비친 푸른 하늘만 본 게 아니다. 하늘같은 그 속에서 익숙하게 노니는 물고기들을 보고 자신을 성찰하는 것이다.

시에서 엿보이는 그의 성품을 살펴보면, 무척 감성적이면서도 의지나 뜻이 굳세고 명백했을 듯하다.

 

 

    당대의 성리학자였던 정종로는 부훤당에 대한 행장(行狀)을 적은 글에서, “크고 작은 유림 문자 대부분을 공에게 부탁하여 지었으니, 그 어휘가 굳세고 바르며 담긴 뜻이 명백하였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부훤당의 전기를 들여다보면, 이 말은 그를 적절히 표현한 듯하다. 그래서, 그의 성품의 일단은 시에서 보다 상소문이나 제문, 축문 등에서 보다 더 확연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는 한시 외에도 다른 글들을 많이 지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근암서원 추향 때 목백에게 올린 글’이다. 이것이 매년 서원에서 제사를 지낼 때 상례로 바치는 축문이 되었다고 한다. 또한, 당시 영남유림을 대표하여 조정에 상소를 하기도 하였는데, ‘태사묘작헌리정소’가 그것이라고 한다.

 

당시 중앙에 김상헌과 같은 쟁쟁한 안동김씨 후손들이 있었음에도 영남의 명망있고 글 잘하는 이름났던 그의 글로 상소를 한 것은 주목할 만 하다는 것이다.

그에 대한 문집은 시(詩) 뿐만 아니라, 소(疎)와 서(書), 기(記), 상량문, 축문, 제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래는 4권2책이었으며, 이를 국역(國譯)한 부훤당의 13세손인 의묵(義默)은 건,곤(乾,坤) 2권으로 나누어 출간하였다.

역자(譯者)는 고전(古典)을 공부하지 않은 이공학 전공자라고 한다. 그럼에도, 늦은 나이에 선조(先祖)에 대한 흠모의 마음으로 어려운 문집을 국역하였다.

 

 

 

    지난 해 연말, 우연히 그가 엮은 ‘국역(國譯) 선조(先祖) 부훤당선생 문집’을 읽게 되었다. 그리고 안동대학교 안동문화연구소에서 발간한 ‘문경 산북의 마을들’에 대한 책을 접하였다. 이 책들에서 만난 이가 부훤당이었다. 그는 우리 지역의 선비로서, 일찍이 학재(學才)가 뛰어났던 명망있는 유학자였으나, 중앙에 진출하여 문필을 드높이는 등 사초(史草)에 이름을 크게 남기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그의 문집과 자료들을 접하고 우리 지역에 앞서 살았던 선비의 삶과 이 지역 사람들, 그리고 풍광들을 엿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은 사실이다.

 

  살펴보면, 그의 시에서 우리가 감상하는 것은 고양(高揚)된 문학의 세계가 아니다. 그보다도, 척박한 우리 지역 문학의 토양에서 그가 이 지역을 무대로 살면서 읊었던 귀한 옥고(玉稿)의 가치이다. 더하여 그 시대에, 일생을 향촌에 묻혀 지내던 선비의 고절(孤節)한 생각과 그가 느꼈던 우리 지역 풍광에 대한 서정을 엿볼 수 있음이다.

 

   이것은 오늘의 우리에게 각별한 즐거움일 수 있다. 그 즐거움으로 옛 것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이렇듯, 옛 것을 살피는 것은 지금 이 자리에 우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기 긍정에 다름 아니다. 하여, 부훤당 김해를 알고, 이를 ‘문경문화’ 지면에 글을 올릴 수 있음은 더 없는 기쁨이다.

 

하지만, 부족한 글로 부훤당의 명성에 누가 되는 잘못은 모두 내 탓일 수밖에 없다. 행여 그렇다면, 달게 질책을 받아야 한다.

 

 

출처 : 아름다운선물101
글쓴이 : 일기일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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