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우용씨가 허락해주신 농암 김창협 선조님의 초서 간찰
http://blog.daum.net/lwy1220/15959652 이우용씨의 블로그 주소
처음에는 도움을 받아 아래처럼 탈초 하였다. 잘못 읽은 곳이 많았다.
李秀才 聯榻
近日 棲息安否 懸懸生
昨夕到此 今日過行就宗成病固自目極
肅謝之行 姑未斷定
僉君行止 亦不可卛爾
更待後報前 却似宜矣 餘不具
甲戌五望 昌協
----------------------------------------
李秀才 聯榻
近日
栖息安否戀戀 生昨
夕到此 今日過行 然
小子歲病同極 肅謝
之行 姑未斷寒
會君行止 亦不可卛爾
更待後報前
却似宜矣 餘不具
甲戌五望 昌協
충주가 고향이신 <不二堂> 님의 정확한 초서 탈초를 해 주셨습니다.
고향을 지켜가시는 향토적인 학자로 초서에 항상 심혈을 기울이고 계신 분이시다. 깊은 고마움을
전해 드린다.
다음은 그 분의 블로그 주소입니다.
http://blog.daum.net/taopia1/1576
줄 | 글자 | 글자이견 | 글자수 |
1 | 李秀才 聯榻 | 5자 | |
2 | 近日 | 2자 | |
3 | 栖息安否戀戀生昨 | 棲 懸 | 8자 |
4 | 夕到此 今日過行然 | 然 就致 | 8자 |
5 | 小子歲病同極 肅謝 | 宗祟累祭/ 歲成 自目 罔 | 7자. 8자 |
6 | 之行姑未斷寒 | 寒 定 | 6자 |
7 | 會君行止 亦不可卛 | 會 僉 | 8자 |
8 | 爾更待後報前 | 6자 | |
9 | 却似宜矣 餘不具 | 7자 |
10 | 甲戌五望 昌協 | 6자 | |
| 64자 |
✲ 초서글자가 이리도 힘이 듭니다. 지식을 이렇게 배워가는 것이고, 그 배움이 자꾸 쌓여가면
대가에 이르는 길이 되나 봅니다.
이제 완전한 탈초가 된 글로 해석을 하려고 한다. 한양대학교 정민 교수 님을 방문해서 좋은
지식을 얻어 가지고 왔다.
------------탈초끝 ---------------------------------------------
李秀才 聯榻 近日 栖息安否 懸懸 生昨夕到此 今日過行 致祭成病 罔極
肅謝之行 姑未斷定 僉君行止 亦不可率爾 更待後報前 却似宜矣 餘不具
甲戌五望 昌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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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 |
李 秀才 聯榻 近日 栖息安否 懸懸 生 |
【한자읽기】 이 수재 연탑 근일 서식 안부 현현 생 14자 【국역】 책상을 마주한 이 서생에게 요즈음 지내는 것은 편안한지. 걱정하는 마음이 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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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昨夕到此 今日過行 致祭成病 罔極 肅謝之行 姑未斷定 僉君行止 亦不可率爾 更待後報 前却似宜矣 【한자읽기】 작석도차 금일과행 치제성병 망극 숙사지행 고미단정 첨군행지 역불가솔이 갱대후보 전각사의의 4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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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역】
엊저녁에 여기 도착하여 오늘을 지나며 제사를 지내다가 병을 얻었다네. 망극할 뿐이라네. 사은숙배를 하는 것은 아직 결정하지 못 하였네. 여러 분들도 行止(出處行藏)를 역시 경솔히 해서는 안 되니 다시 나중 전갈을 기다렸다가 나아가거나 물러가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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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 | 餘不具 甲戌五望 昌協 |
【한자읽기】 여불구 갑술 오망 창협 9자 【국역】 나머지는 갖추지 못하네. 1694년 숙종20 년 5월 15 일. 창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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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촌 이해노트】
✲ 秀才: 머리가 좋고 재주가 뛰어난 사람.
영재와도 의미가 통하나 연재는 선천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이고,
수재는 후천적인 노력이 뛰어난 사람이다.
수재라는 어휘가 참 많아 혼란스러웠다.
<중국어 사전에서>----------------------------
① 優異之才。특히 우수한 인재.
•《管子•小匡》:「農之子常爲農,朴野不慝,
其秀才之能爲士者,則足賴也。」
“농민의 자제는 항상 농사를 지으며 들에 처하면서 간사하지 아니하고 그 농사꾼 중에 뛰어나 능히 선비가 될 만한 사람은 반드시 의지할 만하다.”
• 尹知章注:「農人之子,有秀異之材可爲士者,即所謂生而知之
,不習而成者也。」“농민의 자제는 뛰어난 인재로 선비가 될만하다. 이른바 태어나면서 알고, 배우지 않아도 이루는 사람이다.”
② ㈀隋 朝시대 과거 시험 개시 이전에도 <수재> 명칭이 있었다.
-----------------뛰어난 재능을 지닌 사람.
•《史記·屈原賈生列傳》说:“贾生,年十八,能诵诗属书,闻于郡中,吴廷尉为河南守,闻其秀才。“가생은 나이 18세에 시를 외고 글을 짓는 데 능숙하다고 하여 온 고을 안에 알려졌다. 오정위는 하남태수가 되어 그의 뛰어난 재능을 들었다.”
먼 지방에서 천거한 효렴(孝廉)과 수재(秀才)는 다시 책시(策試)하지 않고, 오는 대로 곧 벼슬을 제수하였다. 그후 천하가 조금 안정되자, 이에 조서하여 경서를 시험하고
㈁ 후한시대 과거시험이 시작된 후 孝廉과 舉士라는 과거 명칭
孝廉 품행이 효성스럽고 청렴하여 주군(州郡)에서 관리 선발 응시자로 추천한 사람.
동한(東漢)시대에는 광무제(光武帝)의 휘(諱)와 같다고 하여「茂才」라고 고쳐 부르기도 하였다. 茂才관리 등용 시험 과목의 후한(後漢) 때 ‘秀才’의 다른 이름
㈂ 당나라 초기에는 명경(明經)과 진사(進士)라는
과거 과목이 설치되었다가 중지되고 없어졌다.
㈃ 당송(唐宋)시대에는 과거 시험에 응시한 사람은
모두 秀才라 하였고, 명청(明清)시대에는 부주현(府州縣)의 學生들을 다 秀才라 하였다.
③ 원명(元明)시대 이래 書生이나 讀書人을 秀才 라고 한다. 書生=儒生유학을 공부하는 선비 학자(學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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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재주가 매우 뛰어난 사람 .미혼남자
<고제> 관리를 채용할 대 시험하던 과목. 무재 (茂才)
秀才 과거(科擧) 과목의 이름. 과거 응시자. 秀才家 수재의 집안
• 수재가 되면 비로소 배인(拜人)을 하지 않는 것으로 생원은 곧 수재인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 수재를 부를 적에는 모 수재가(某秀才家)라고 부른다고 한다 <연행일기에서>
秀才公 수재인 사람의 존칭. 秀才科 과거 시험의 과목.
秀才試 세시라고도 함. 歲試는 그 거주지의 고을 현관(縣官)이 주관함.
秀才某郡某公神主 성인이 되기 전에 죽은 이의 지방
秀才學宮 學宮 조선 시대, 인재 양성을 위하여
한양에 설치한 최고 유학 교육 기관
성균관과 각 고을 향교의 별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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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특히 우수한 인재. 英才와도 의미가 통한다.
2.後漢 시대 관리 등용 시험 과목의 하나. 科擧에 及第한 사람
당대(唐代)에는 수재과(秀才科)가 있었고,
송대(宋代)에는 과거에 응시하는 선비를 모두 수재(秀才)라고 했고, 그 후로는 대학에 입학하는 생원(生員)도 수재라고 불렀다.
광무제(光武帝)의 휘(諱)가 ‘秀’였으므로 이를 피(避)하여 ‘茂才’라 했음.
3. 書生. 유학을 공부하는 사람. 독서인. 지식인의 뜻.
과거에 응시한 사람이면 모두 秀才라고 하였고, 生員과도 의 미가 통한다.
✲ 한양대학교 정 민교수님은 이글에서는 수험생 이라고 풀이 하셨다.
✤ 필자도 처음에는 다음 문구를 통해 李喜朝。<<1655년(효종 6)
1724년(경종 4) > 문인의 字 일 것이라고 판단하였고,
근거:山中述懷。錄呈退憂相公,翠屛詞丈。兼示李秀才喜朝。喜朝。卽幼能胤子。壺谷集남용익(南龍翼)<1628년(인조 6) -1692년(숙종 18) >
이 편지를 제공해주신 이 우용님 <덕수이씨 택당 후손>의 의견을 받아 睡谷 이여(李畬, 1645~1718) 어르신으로 생각을 했으나, 秀才라는 단어는 글쓴 이보다는 연하의 사람에게 쓰는
단어임을 알게 되었고, 서간문에 나오는< 栖息安否>가 아래 사람에게 쓰인 농암 어르신의 다른 서한을 보고 이것도 잘못된 판단이라고 생각하였다.
근거: 昨今棲息安否。李生兄弟。已還來否<農巖集卷之十一與崇謙>
요즈음 지내는 것은 편안하냐? 이생(李生) 형제는 돌아왔느냐?
<고전 번역원 송기채 선생님 번역 인용 棲는 栖로 표기하기도 함.
栖息安否 <해남 연동 해남윤씨 녹우당의 서간문에서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인용>
栖息安否 此處 粗安 但 相離日 久 懸念不弛
<尹定鉉1793 ~ 1874 자 계우(季愚), 호 침계(梣溪), 본관 남원(南原)>
요즈음 지내는 것이 편안하냐?, 이곳은 편안하다. 다만 서로 이별한 지가 오래되어 걱정하는 마음에 긴장을 못 푸는구나.
결국 이 글에서는 <한양대학교 정민 교수님>의 말씀대로
수험생 이라는 의미로 쓰였다. 書生의 의미와도 통한다. 이 씨라는 성만 알 뿐 그 이름은 미상이다.
네이버 사이트 <한국고문서 자료관>에 들어가
李秀才를 넣고 보면 해설을 하신 분이
<秀才>는 자기보다 나이 어린 사람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근거: 1573년 손광호(孫光暠) 서간(書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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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수재(李秀才) <한국 고전 번역원 자료에서>
이 수재(李秀才) 爚, 絿, 遂良, 卣挽 , 景佐, 懲 行進 ,光立, 叔獻 珥 ,玭,澤翁,文龍,相衡,漢元,善鳴,德海-- 이름을 알 수 있는 분들로 모두가 秀才로 유생이나, 서생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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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聯榻 (연탑) : 나란히 앉다. 책상을 마주하다.
나란히 눕다. 한자리서 나누다. 나란히 잠자다. 함께 자리하다 나란히 공부하다 등으로 해석.
聯枕-베개를 나란히 하고 聯 翩 연달아 聯含 연명하여 쓴 편지
✱ 사전에 표제어가 없는 단어 동사+ 명사로 구성.
聯(=联) 聯綿不絶也 나란히 하다 잇닿다 합치다
聯襟 옷깃을 나란히 함. 聯綴 연결하다. 聯珠 여러 개의 구슬을 뀀
聯銜 (관리가) 연서(連署)하다 聯拳 나란히 섬.
聯事 일을 연관시킴 聯鑣 나란히 말을 몸.
聯步 발걸음 나란히 함. 대극과에 속한 풀
聯鞭 나란히 채찍 잡음. 聯接 연결함.
聯聯. 줄곧 끊임없이 聯續 연속함 聯綿 그치지 않음.
聯肩 어깨를 나란히 함. 聯手 서로 손잡음
榻: 길고 좁게 만든 평상. 의자. 책상.
榻登 큰 침대 앞에 놓고 침대에 올라갈 때 딛는 것
榻布 굵고 두툼하다 < 粗厚的布>
竹榻 대나무 침대 藤榻 등나무 침대= 藤床
卧榻。침대=床榻
下榻 걸상을 내린다는 뜻으로, 손님을 맞아 공손하고 극 진하게 대접함을 이르는 말( 숙소 客人住宿)
白榻 칠을 하지 않은 좁으면서 길고 비교적 작은 상. 僧榻 중이 쓰는 걸상 睡榻 잠을 자는 침대 (睡眠的床榻)徐榻 서치(徐穉)의 걸상
서치:후한 때 남주의 高士
御榻 임금의 상탑(牀榻)=평상(平牀), 침상(寢牀)의 총칭
草榻 간단한 침대 病榻 病床병든 사람이 누워 있는 침상 등의 자리
几榻 몸을 기대거나 눕는 상. 机榻 几案과 床榻
几案 의자, 사방침, 안석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
烟榻아편 피울 때 쓰는 침대
계속
01 | 02 | 03 | 04 | 05 | ||||
棲 栖 | 懸 戀 | 致 然 就 | 崇 宗 累 小子 | 成 歲 |
01 | 02 | 03 | ||
目 同 自 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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定 寒 |
會 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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