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望雲(망운) --------------
白雲如是身。 떠 가는 저 구름 내 몸과 같구나
백운여시신
徘徊靑山裏。 청산 속을 이리 저리 다니네
배회청산리
萬物皆營營。이 세상 모든 만물은 다 분주히 왕래하는데
만물개영영
自在吾與爾。 너와 나만이 이 자리에 머물러 있구나
자재오여이
相看朝復暮。 아침과 저녁으로 늘 서로 바라보니
상간조부모
怡悅無時已。 일어나는 즐거움은 아무런 때가 없구나.
이열무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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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상 > 장자에서는 구름이 일어나는 것은 생이요. 사라지는 것은 죽음이라고 하였다.
벼슬살이 보다는 깊은 청산에 묻혀 구름을 바라보며 가득한 즐거움을 맛보고 있다.
지은이는 조정에 나가지 않고 자연 속에서 자기 수양을 하며 보냈다.
시끄러운 세속에 얽매이지 않고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면서 인생의 여유를 찾아가는 지은이의 심성이 깃들어 있다.
가람 이병기 시인은< 그 구름 나도 되어 허공에 뜨고 싶다/ 바람 타고 동으로 가다 서으로 가다/ 아무런 자취가 없이 스러져도 좋으리> 이렇게 읊었는데......
지은이
김창집(金昌緝) 1662년(현종 3) 임인 -- 1713년(숙종 39) 계사
자 : 敬明 호 : 圃陰
문곡 김수항의 다섯 째 아들. <청음 김상헌- 김광찬 - 문곡 김수항>
( 몽와 창집. 농암 창협. 삼연 창흡. 노가재 창업. 택재 창립 )
趙逢源에게 수학.
1682년(숙종 8) 20세로 《징회록 澄懷錄》을 편집하였다.
1684년 생원시에 합격하여 교관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아니하였다. .
1689년 기사환국으로 아버지 수항이 사사되자 벼슬을 그만두고 학문에 전념하였으며, 1700년 아버지의 유문인 《문곡집 文谷集》을 간행했다.
1702 년 自號를 杞圃에서 圃陰으로 고치고, 漢陽 俊秀坊 司圃署 뒤에 圃陰第를 짓다.
1708년 , 世子翊衛司 副率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다.
1710년 왕자사부(王子師傅)를 거쳐 예빈시주부(禮賓寺主簿)를 지냈다.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다.
달리 조정에 나가지도 않고 학문으로 두각을 보이지도 않았으며, 다만 수양에 힘써 젊어서는 〈西銘〉과 「大學」 공부에 치력하고, 만년에는 「周易」에 취미를 붙였다고 한다.
셋째 형인 三淵 金昌翕이 저자의 사후에 곧 바로 遺文을 수집하고 정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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