咏鶴巢 영학소 ---------------------
학의 둥지를 읊다.
새끼들과 나란히
검은 학 날아와
솔나무 사이
바위 벼랑에
고즈너기 앉았네.
만리 먼 곳
동쪽 지나
푸른 바다로 가겠구나.
진정 모를레라
어느 날 다시
서쪽으로 돌아갈지
飛來玄鶴九雛並。
비래현학구추병
端坐石崖松樹間。
단좌석애송수간
萬里東過滄海去。
만리동과창해거
不知何日更西還。
부지하일갱서환
( 圃陰集卷之一 安東金昌緝敬明著에서)
⌛ 한자⌛
雛 병아리 추 並 나란히 할 병 崖 벼랑 애 滄 푸를 창 還 돌아올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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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어 이해와 내용 분석◛
◂ 현학 (玄鶴) : 검은 학을 말함.
진(晉) 최표(崔豹)의 《고금주(古今注)》 조수(鳥獸)에 “학이 1천 년 지나면 푸른 색이 되고 2천 년 지나면 검은 색으로 바뀐다고 함.
왕산악(王山岳)이 1백여의 음곡(音曲)을 탄주할 때, 검은 학이 와서 춤을 추었으므로 현학금(玄鶴琴)이라 이름하고 또는 거문고[玄琴]라고도 한다.
소식의 후적벽부(後赤壁賦)에 학을 검정 치마에 흰 저고리를 입고 있는 모습에 빗대어 현상호의(玄裳縞衣 ) 라고 표현하였다.
◂ 구추 (九雛) : 봉의 새끼가 아홉 마리라는 뜻이며, 봉은 하늘 높이 천 길을 난다고 하는 새. 여기서는 학의 새끼들을 말함.
◂ 단좌 (端坐): 단정히 앉음.
일반적으로 학은 고아하고 깨끗하고 청정한 모습으로 표현.
惟讀書 有利而無害 惟愛溪山有利而無害 惟翫風日花竹有利而無害 惟端坐靜黙 有利而無害 是謂至樂 <오직 독서(讀書)만이 유리(有利)하고 무해(無害)하며, 오직 산수(山水)만이 유리하고 무해하며, 오직 풍월(風月)과 화죽(花竹)만이 유리하고 무해하며, 오직 단정히 앉아 고요히 말없이 있는 것[端坐靜黙]이 유리하고 무해한데, 이러한 것들을 지극한 즐거움[至樂]이라 한다.> ( 허균<1569-1618>의 미공비급 <眉公秘笈>에서 )
◂ 석애 (石崖) : 바위 벼랑. ◂ 창해(滄海) : 푸른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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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용 분석 >> ---------------------------------------------
< 1 행 기연 起聯>: 학들이 날아오는 모습.
< 2 행 승연 承聯 >: 학들이 앉은 모습..................... < 서경 >
< 3 행 전연 轉聯 > : 학들이 날아가는 모습 ( 상상 )-- 부러움의 대상
< 4 행 결연 結聯 > : 지은이의 걱정하는 모습 -----------< 서정 >
◚ 이해와 감상 ◛ -------------------------------------------------------------------
지은이의 문집 기록을 보면 이 시는 20 세 전후에 쓰여진 시다.
( 1677 정사년 숙종 3년 16 세 --1682 임술년 숙종 8 년 21 세 사이 )
아직은 부모님들과 여러 형들의 지극한 사랑 속에서 지낼 때이다. 둥우리로 날아드는
학들을 보면서 그 학들처럼 멀리 날아가고 싶은 희망과 꿈과 이상을 추구해 보려는 염원이 담긴 시이다. 여기서의 학은 선망의 대상이면서 지은이의 내면적 심정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지금 현재로는 둥지처럼의 생활이지만 그 언젠가는 자기도 둥우리를 떠나 꿈이 담긴 푸른 바다로 웅비하고 싶다는 것이 착상의 동기가 아닐까.
단정히 앉아 있는 고아한 학의 모습이 부럽고 하늘로 비상하는 그 자유로운 몸이 동경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저 넓고 푸른 바다를 향해 마음껏 날아가는 학의 비상에서 필자의 웅지하려는 꿈이 담겨 있는 시다. 학들이 희망과 꿈이 있는 동쪽으로 날아가기를 바라고 기대하고 있다. 마지막 연에서 서쪽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은 희망이 없는 절망의 비극적인 상황도 있음을 암시하고 있음이랴. 서쪽은 해가 지는 곳으로 어둠, 절망, 불운, 불행 등의 상황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를 지을 쯤에 지은이는 부친이
영암과 철원에서 유배의 비극적인 상황에 처해 있을 때라고 보면 , 세상살이가 반드시 희망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둥지로 날아드는 학을 통해서 인생의 행, 불행을 조명하고 있는 것이다.
지은이의 내력 ----------------------
1677 년 유배지 영암으로 부친 문곡<文谷> 김수항< 金 壽恒>(1629년(인조 7)-1689년(숙 종 15)을 찾아뵙다.
1678 년 부친이 鐵原으로 量移되자 다시 鐵原 謫所로 찾아가다
1680 년 부친이 석방되자 모시고 서울로 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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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소개 -----------------------------------------------------
김 창집 ( 金昌緝 ) <1662년(현종 3) --1713년(숙종 39)>
자: 경명 ( 敬明 ) 아호: 포음( 圃陰 ). 청음(淸陰) 김 상헌(金 尙憲)의 손자요,
문곡(文谷 )김 수항( 金壽恒)의 다섯째 아들. 6 창( 六昌 )으로 불리는 몽와(夢窩) 창집(昌
集 ),농암(農巖) 창협(昌協), 삼연(三淵) 창흡(昌翕), 노가재(老稼齋) 창업 (昌業)의 동생. 그
의 동생은 택재(澤齋) 창립(昌立)이었다. 모두가 안동 가문의 문운을 빛나게 한 분들이다.조
봉원(趙逢源) 의 문인이다.
그는 관직에 머물기 보다는 유람과 독서로 정진하면서 보냈다.
1701년 ( 숙종 27 년 40 세 ) 내시교관(內侍敎官)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다.1708년에도
내시교관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았고,1711 년에 왕자사부(王子師傅)에 제수되고, 이어서 예빈사 주부(禮賓寺 主簿)에 올랐으나 모두 나아가지 않았다.
조선 왕조 실록에 다음과 같이 기록이 되어 있다.
1. 1694 년 <숙종 20 년> :김창협은 선친이 화를 당한 것으로 인해서 스스로 벼슬을 포기하고 드디어
다시 나오지 않았다. 그 아우 김창흡(金昌翕)·김창업(金昌業)·김창즙(金昌緝)은 본래 과거(科擧)와 사환
(仕宦)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기사년의 일을 겪고 나서는 모두 벼슬하지 않고 선비로 세상을 마치니 사람
들이 다 칭찬하였다.
2.1706 년 <숙종 32 년>: 이조 판서(吏曹判書) 이인엽(李寅燁)은 학술로 김창즙(金昌緝)을 천거하 였
다.
3. 1710 년<숙종 36 년>:김창즙(金昌緝)을 왕자 사부(王子師傅)로 삼았다. 김창집은 고(故) 상신(相
臣) 김수항(金壽恒)의 아들이고, 김창협(金昌協)·김창흡(金昌翕)의 아우인데, 어려서부터 오로지 학업
(學業)에만 뜻을 두었으므로, 견식(見識)이 많고 정예(精詣)한 곳이 있었다. 기사년(1689숙종15년) 에 집
안의 재난(災難)이 있은 후, 김창흡과 벼슬살이하지 않기로 결의(決意)하고 더욱 경학(經學)에만 뜻을 쏟
으니, 사류(士類)로서 이를 칭송하여 사모하는 이들이 많았다.
4.1713년<숙종39 년>: 처사(處士) 김창즙(金昌緝)이 졸(卒)하니, 나이는 52세였다. 창즙은 고(故) 정
승 김수항(金壽恒)의 다섯째 아들로서, 사람됨이 담정(澹靜) 하여 욕심이 적었고, 문장 능력은 조금 있었
으나 학문에 방해되고 공부를 끝마치지 않았다 하여 상사(上舍) 에 이름을 올려놓고 곧바로 다시는 과거
에 응시(應試)하지 않은 채 성리서(性理書)에 전심(專心)하며 밤낮으로 게을리하지 않으니, 그 형 김창협
(金昌協)이 감탄하기를, ‘각고(刻苦)의 공부는 내가 미치지 못할 바라.’ 하였다. 추천으로 교관(敎官)·사
부(師傅)·주부(主簿) 등의 관직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나가지 않았다. 이때에 이르러 졸하니, 사림(士林)
이 몹시 애석하게 여겼다. << 이상 조선 왕조 실록 인용 >>
그의 문집으로 <포음집( 圃陰集 )>이 있는데 사후에 셋째 형인 三淵 金昌翕이 유문을 수집 정리해 주었
다. 그의 정신적인 내면의 고통은 아버님의 유배생활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1677 년에 영암에 유배되어 있는 아버님을 찾아뵈었고, 1678 년에는 철원 적소를 찾아갔으며, 부친이 석
방되었을 때는 부친을 모시고 양주에 머물었으며, 1689 년 부친이 진도로 귀양가자 모친을 모시고 적소
에 찾아갔으며 부친이 진도에서 졸하자 운구를 모시고 장사를 지냈다. 1689 년 부친의 죽음은 큰 충격이
었다. 어머님을 모시고 금화, 영평으로 옮겨 다녔으며,1694 년 이후는 부친의 관직이 회복되자 어머님을
모시면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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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습 노트 >> 학 ( 鶴 )-------------------------------------
학은 십장생(十長生)( 해, 산, 물, 돌, 구름, 소나무, 불로초, 거북, 학, 사슴 )의 하나로 신령스럽고 고귀한 존재의 동물이다. 고고(孤高)하며 고아(高雅)하고 청정한 존재로서 세속에 물들지 않은 신선과 같은 동물이다. 학은 학덕이 높은 선비, 불로 장수, 귀인. 행복, 풍요로움 등을 상징하며, 높고 청아한 경지를 동경하는 이상형의 존재로 여유로운 품위를 지니기도 하였다. 문학 작품에서는 고운 영혼 즉 근면한 영혼을 상징하며, 정의, 장수, 선량, 근면함을 상징하기도 한다 두루미, 선학(仙鶴) 선금(仙禽) 단정학( 丹頂鶴) 태선(胎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학이라는 낱말이 들어간 단어 들>---------------------------------
현학(玄鶴): 검은 학(鶴)을 말함. 검정 치마에 흰 저고리를 입고 끼룩끼룩 길게 소리 내어 울었다고 함< 소식의 후적벽부(後赤壁賦) 출전 >
현학금(玄鶴琴):왕산악(王山岳)이 1 백여의 음곡(音曲)을 고쳐서 탄주할 때, 검은 학이 와서 춤을 추어 붙였다는 곡 이름
학창(鶴氅) : 흰옷에 단을 검은 헝겊으로 넓게 꾸민 벼슬아치의 평상복을 말한다.
공학군(控鶴軍) : 왕실 숙위(宿衛)를 담당한 군사
쌍학(雙鶴)의 묘 : 부부가 합장함.
학가 (鶴駕) : 신선이나 태자가 타는 수레
학궁(鶴宮) : 황태자의 궁전. 황태자의 존칭, 동궁.
학려 (鶴唳): 학이 우는 소리. 풍성학려風聲鶴唳 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부견(苻堅)이 군사 백 만을 거느리고 진을 벌여 비수(肥水)에 육박하자 사현은 군사 8천 명으로 하여금 물을 건너 들이치니 부견의 군사가 무너져서 갑옷을 벗어던지고 밤에 달아나는데 바람 소리나 학의 울음 소리만 들어도 모두 왕사(王師)가 몰려온다고 여겼다.” 하였다고 함. 의구심이 많은 데 쓰는 말이다.《진서(晉書)》 〈사현전(謝玄傳)〉에
학렬 (鶴列): 학이 좌우의 날개를 편 것처럼 좌우로 벌인 진형
학무(鶴舞) : 학의 춤
학발 (鶴髮) : 노인의 백발
학서 (鶴書) : 조정에서 부르는 문서. 글씨가 학의 머리와 비슷한 것에서 이름
“한(漢) 나라 때 선비를 초빙하는 편지를 마치 학의 머리처럼 쓰는 전자체(篆字體)를 이용한 까닭에 그 편지 명칭을 학두서(鶴頭書)라 했다.” 하였다고 함.
학수(鶴首) : 학처럼 목을 길게 빼고 기다림. 흰머리
학수 (鶴壽) : 학은 천년을 산다고 하여 사람의 장수를 이름
학슬(鶴膝) : 한시 작시상의 한 방법. 오언시의 경우 1 구의 다섯째 자와 3 구의 다섯 째자가 동성의 운율을 씀
학어 (鶴馭) : 신선의 수레
학익(鶴翼) : 학이 날개를 펴듯 좌우로 벌이는 진형
학경(鶴脛) 피리의 종류로 길이가 짧으나 소리가 맑고 가락이 높았다고 함
학금(鶴禁) : 태자의 궁전을 말하기도 하고 임금의 자제들이 거처하는 곳을 일 반적으로 말함..용루(龍樓)와 같은 말
매처학자(梅妻鶴子):매화를 아내로 삼고 학을 자식으로 삼았다고 함. 일명 고산처사(孤山處士)라고도 하는 송(宋) 나라의 은자(隱者) 임포(林逋)를 지칭함
학봉(鶴峯) : 안동(安東) 서쪽 20 리 지점에 있는 학가산(鶴駕山)을 가리킨다.
학야(鶴野) : 요동(遼東)을 말한다. 요동 사람 정령위(丁令威)가 학(鶴)으로 변해 고향 땅을 찾아왔던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원학(猿鶴) : 전사한 일반 장사(將士)들을 말한다. “주 목왕(周穆王)이 남정(南征)했을 때 군대가 전멸하였는데 장사들은 원숭이와 학이 되고 일반 백성들은 벌레와 모래가 되었다.” 하였다《예문유취(藝文類聚)출전》
양주학(揚州鶴) : 현실에선 이루기 힘든 지극한 소망을 성취한 것을 말한다. 어떤 이는 재물을 많이 갖고 싶다고 하고, 어떤 이는 양주 자사(揚州刺使)가 되고 싶다고 하고, 어떤 이는 학을 타고서 노닐고 싶다고 하였는데, 이때 한 사람이 나서서 말하기를 “나는 허리에 십만 금을 차고 학을 타고서 양주로 날아가고 싶다.”고 한 고사가 있음
화표학(華表鶴) : 요동(遼東) 사람 정령위(丁令威)가 신선술을 배워 학(鶴)으로 몸을 바꾼 뒤 고향의 성문 화표주(華表柱)에 내려와 앉았다는 고사 <도잠(陶潛)의 《수신후기(搜神後記)》
학야(鶴野) : 광녕(廣寧)의 동쪽, 해주위(海州衛)의 서쪽, 요동(遼東)의 북쪽에 펼쳐진 광막한 들판 이름이다. 《燕行錄選集 錦南先生漂海錄 》
학정대(鶴頂帶) : 학정홍(鶴頂紅)이라고도 한다. 심해의 물고기인 학어(鶴魚)의 진한 붉은색의 두골로 만든 진홍색 띠를 말한다.
헌학 (軒鶴 )
춘추시대 위 의공(衛懿公)이 학을 매우 좋아하여 학에게 벼슬을 내리고 수레에 태워 함께 나녔다는 데서 나온 말로, 특별한 능력도 없이 임금의 총애를 받아 국록을 먹는 자를 비유한다. 《左傳 閔公 二年條》
학교 (鶴翹): 소나무의 일종. 한악(韓偓)의 시에, “학교송을 등나무가 휘휘 감아 죽이누나.[野藤纏殺鶴翹松]”하였음
학저(鶴邸): 황태자 궁전을 학궁(鶴宮)이라고 한 데서 세자궁을 비유한 말임.
백학관(白鶴觀): "나는 본디 바둑을 둘 줄 모르는데, 일찍이 여산(廬山)의 백학관에서 혼자 노닐적에 고송(古松) 밑의 흐르는 물에서 바둑 두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매우 기뻐하였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蘇東坡集〈관기(觀棋)〉 시 서문》
야학(野鶴) : 유곡(幽谷)에 피는 난초꽃 향기는 감추어지지 않는 것이요, 군자의 덕도 자연히 풍기게 마련니, 덕이 높은 은군자를 비유한 것.
녹학(祿鶴): 학(鶴)에게 녹위(祿位)를 준다는 뜻이다. 춘추시대 위 의공(衛懿公)이 학을 매우 좋아하여 대부(大夫)가 타는 수레에 태우기까지 하였는데, 그가 전쟁을 하려 할 적에 나라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학을 시켜 전쟁하게 하라. 학은 실지로 녹위(祿位)가 있지만 내야 어떻게 싸우겠는가.” 하였다. 《春秋左傳 》
학개(鶴盖): 수레를 같이 탄다는 말. 학개는 수레 뚜껑이 학 날개와 같다는 뜻이다. 유정(劉楨)의 노도부(魯都賦)에 “수레 뚜껑은 학과 같고 말은 뛰어노는 물고기 같다.” 하였다.
위학(衛鶴) : 춘추시대 위(魏)나라의 임금 의공(懿公)은 학(鶴)을 좋아하여 3백 마리를 기르면서 그 학을 모두 장군의 대우로 하다가 나라까지 망하게 하였다.하는 고사에서 나옴
학림(鶴林): 석가여래가 입적할 때 신사 쌍수(雙樹)의 숲이 학 모양으로 변했다는 고사애서 나왔고 사원(寺院)을 이칭하기도 한다.
학관(鶴關) : 학금(鶴禁)과 같은 말인데, 동궁(東宮)을 지칭한 것이다. 열선전(列仙傳)에, “주령왕(周靈王)의 태자(太子) 진(晋)이 7월 7일에 흰 학을 타고 산 꼭대기에 앉아서 사람들을 작별하고 몇날 후에 떠났다.” 하였으므로 학금(鶴禁)이란 말이 나오게 되었다.
학산(鶴算) : 육기(陸璣)의 모시소(毛詩疏)에, “학은 천 년을 산다.” 하였음. 세상에 학을 선금(仙禽)이라 하여 축수(祝壽)하는데 많이 사용한다.
요학(遼鶴) : 상식으로 생각할 수 없는 역경을 뚫고 돌아왔다는 말. 정영위(丁令威)가 영허산(靈虛山)에서 도(道)를 배운 뒤에 학으로 화해 요동(遼東)에 돌아와서 공중에서 배회하며 말하기를, “새가 되었다. 새가 되었다. 정영위는 집을 떠난 지 천년 만에 지금 돌아왔네.”라고 하였다. 《搜神後記》
생학(笙鶴) : 주(周)의 왕자 진(晉)이 신선이 되어 학을 타고 피리를 불었다는 전설이 있음
<< 주로 한국 고전 번역원의 내용에서 발췌한 것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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