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病起병기 (병이 나다)------------
萬事爭如酒一杯 만사는 술 한 잔 마시는 일로 다투는 것 같이
만사쟁여주일배
光陰何故苦相催 세월이 어찌 괴로운 모습을 재촉하지 않았으랴
광음하고고상최
白頭己遣詩人老 머리는 이미 하얗게 되었고 늙어 버렸구나.
백두기견시인로
靑眼寧爲俗士開 반가운 얼굴로 어찌 세속의 선비들과 교류를 하겠나.
청안영위속사개
雨雪不圖今景物 눈비로 오늘의 경치를 그리는 일은 생각조차 못했고
우설부도금경물
衣冠欲拂舊塵煤 의관에 묻어 있는 옛날 먼지들을 떨치려고 몸부림 칠뿐
의관욕불구진매
森然柏樹應含翠 잣나무 무성함 속엔 응당 푸르름 깃들어 있는데
삼연백수응함취
矯首家鄕夢幾回 머리 들며 고향 집은 꿈속에서 몇 번이나 그렸는고.
교수가향몽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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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상 >>
스스로의 운명을 재촉하셨을까. 4 년간을 중풍 병으로 고생을 하셨다. 병이 몸에 처음
찾아왔을 때의 고뇌에 찬 삶의 진솔함이 그대로 묻어 있다.
<1.2 행 > 병든 자신의 자탄감. <술> 고뇌를 이겨 보려는 자신의 매개물. 술과의 다툼이
아니라 병고와의 다툼이었을 것이다.
< 3. 4 행 > 늙음의 한탄감. <백두>와 <청안>은 색채적인 대조미로 인생 변화의 상반된 모습이다. <청안>은 병들기 전의 건강했던 모습이리라.
< 5. 6 행 > 현실적인 비애의 모습. 5 행에서는 화가로서의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된 슬픔이 담겨 있고 6 행에서는 지난 날의 건강하고 화려했던 자아의 모습을 떨쳐 내려는 몸부림이 담겨 있다.
<7. 8 행 > 지난 시절의 그리움 7 연에서는 풍성한 자연의 푸르름이 더욱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
시제인 < 병기>는 병이 찾아왔음을 말하며. 병이 몸에 찾아와 이제는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되는 시인의 아픔이 그려져 있으며 서정적인 자아의 내면적인 통곡이 아프게 점철이 된 것 같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다 잃게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 번 터득하게 된다.
4 년 동안을 병고에 시달리며 보내시던 시들이 의외로 많으시다.
김유근에 대한 조선 왕조 실록 기록
헌종 6년( 1840 경자 ) 12월 17일 계유년의 기록
1. 癸酉/輔國崇祿大夫判敦寧府事 金?根卒。
헌종 6 년 ( 1840 년 )보국 숭록 대부(輔國崇祿大夫) 판돈녕부사(判敦寧府事) 김유근(金?根)이 졸서(卒逝)하였다.
<숭록대부>: 조선 시대, 정일품의 종친(宗親)·의빈(儀賓)·문무관의 품계
< 판돈녕부사>: 조선(朝鮮) 시대(時代) 돈녕부(敦寧府)의 종1품(從一品) 벼슬
< 돈녕부>. :조선시대 종친부(宗親府)에 속하지 않는 종친과 왕의 외척 및 왕실의 외손들을 위한 예우기관.
2. 敎曰: “此 重臣 貞亮之姿, 淹雅之識, 明達之材, 更於何處得來 重以義同休戚, 克趾先武, 斷斷向國, 勤勞久著, 朝家所以倚重何如
임금이 하교하기를,“이 중신(重臣)의 바르고 성실한 모습과 넓고 높은 식견과 밝고 통달한 재주를 다시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의리로 고락을 같이하고 능히 선대(先代)의 무공(武功)을 뒤이어 변함 없이 나라를 위하여 부지런히 일한 것이 오랜동안 드러났으니 국가에서 의중(倚重)한 것이 어떠하였겠는가
정량<貞亮> : 바르고 성실함이 있음
3. 而不幸病淹于家, 自我不見, 今幾年所, 忽見逝單, 予心之?傷如此, 況我東朝至切之?乎? 卒判敦寧金?根家, 東園副器一部輸送, 元致賻外別致賻, 令該曹優數輸送, 成服日, 遣承旨致祭。”
불행히 집에서 병으로 오래 앓아 내가 보지 못한 지 이제 몇 해 만에 문득 서단(逝單)을 보니 내 마음이 이처럼 몹시 슬픈데, 더구나 우리 동조(東朝)의 매우 절박한 슬픔이겠는가? 졸한 판돈녕 김 유근의 집에 동원 부기(東園副器) 1부(部)를 실어 보내고 원치부(元致賻) 외에 별치부(別致賻)를 해조(該曹)로 하여금 넉넉히 실어 보내게 하고, 성복(成服)하는 날에 승지(承旨)를 보내어 치제(致祭)하게 하라.”하였다.
<동원 부기(東園副器)> : 동원 비기(東園秘器)의 여분. 왕실에서 쓰기 위하여 장생전(長生殿)에서 관(棺)을 만들고 남은 널빤지 또는 관.
4. ?根字景先, 永安府院君金祖淳子也。 性白直貞亮, 見不可意者, 輒??之。 以故, 蚤有亢貴, 名及晩年, 折節爲恭謹, 而以其嫉惡太甚, 故於容物之量, 終有可論者。 自壬辰後, 軍國之務, 萃于身, 奉公截私人, 不敢干以非理, 中外翕然稱之。 雖事務經綸, 非其所長, 而尊主庇民一念, 蓋炳如也。 嗜翰墨工詩, 詩有元人風。 得疾不能語, 凡四年而卒, 上下咸嗟悼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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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유근의 자(字)는 경선(景先)인데, 영안 부원군(永安府院君) 김조순(金祖淳)의 아들이다. 성품이 결백하고 솔직하며 곧고 성실하여 뜻에 옳지 않은 것을 보면 문득 용납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일찍부터 굽히지 않고 귀한 체한다는 이름이 있었는데, 만년에는 절조를 굽혀 공근(恭謹)하였으나, 그 미워하는 것이 너무 심하므로 남을 용납하는 도량에 있어서는 끝내 논할 만한 것이 있었다. 임진년(1832 순조 32년) 이후로 군국(軍國)의 사무가 그 몸에 모였는데, 공사(公事)에 진력하여 사정(私情)을 끊었으므로 사람들이 감히 도리에 어긋나는 것을 요구하지 못하니, 중외(中外)에서 모두 칭찬하였다. 사무의 경륜(經綸)은 그의 잘하는 바가 아니나, 임금을 높이고 백성을 감싸는 일념은 대개 명확하였다. 문학을 좋아하고 시(詩)에 능하였는데 시에는 원대(元代) 사람의 기풍이 있었다. 병을 얻어 말을 못한 지 4년 만에 졸하니, 상하가 모두 탄식하며 슬퍼하였다.
< 출전: 민족문화 추진회 조선 왕조 실록자료에서 인용 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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