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동 가문 시 모음/노가재 김창업의 시 모음

石竹花 <석죽화 > 패랭이꽃

백촌거사 2008. 1. 14.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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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dankoon2001.blog.me/60107018088 에 소개된 노가재님의 시는 본인의 작품입니다.

 누구의 작품이라고 표시를 해 주셨으면 합니다.

 

石竹花 석죽화 ---------------------

 

                                                                                김창업(金昌業)

 

                                                                       1658년(효종 9) --1721년(경종 1)

 

 

 

                 패랭이꽃

 

 

            들풀 하나 뜨락 앞에 활짝 피었네

            석죽이란 꽃이름 또한 아름답구나

            울긋불긋 여러 색깔 많기도 하여라

            그러나 가련하구나 화려함 띠지 않아.

 

                                      庭前野草有開花정전야초유개화

                                      石竹爲名亦自嘉석죽위명역자가

                                      五色變成千百種오색변성천백종

                                      可憐終不帶紛華가련종부대분화

                                         有紅白紫淺深之別。數十種 <유홍백저천심지별 수십종>

 

                                      ( 붉은 색, 흰색, 자줏빛 등이 얕고 깊은 색들로 구별되는 수십여 종이 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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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이해 >

정원에 소박하게 핀 석죽화 ( 패랭이 꽃 )를 보고 지은이의 서정을 담은 시다. 5 개의 여린 꽃잎을 가지고 있으며, 서민적인 운치를 더해주는 꽃, 수줍은 분홍빛은 얼굴이 빨개진 해맑은 산골 아가씨의 아름다운 모습이며, 꽃줄기는 가냘프면서도 키도 작고, 꽃도 작으며 고운 빛깔의 생명력이 매우 질긴 꽃이다. 이런 소박하고 겸허한 꽃에 대한 지은이의 감탄이다. 장미나 모란과 같이 호화롭지 않은 그 아름다움에 대한 지은이의 은은한 서정이다. 이런 시를 영물시라고 한다.

? 분석?-------------------------------------------

1 행 : 뜰에 핀 야초의 모습

2 행 : 석죽이란 이름의 감탄

3 행: 꽃의 색깔

4 행 : 꽃에 대한 지은이의 주관적인 서정 --- 소박한 꽃. ( 주제 )

不帶紛華(부대분화): 주제를 암시하고 있다. 분화란 대단히 번화하고, 화려하다 라는 의미이다. 어떤 상징적인 요소가 담기지 않은 평이한 서정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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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학습 >>-----------------------------------

박제가<(朴齊家1750년(영조 26) 1805년(순조 5)>의 문집인 정유각 문집(貞?閣文集)에 다음과 같은 석죽에 대한 기록이 있다.

石竹花之多變。 莫如石竹。泛觀不過紅白二種。 細察則紅之中有白暈金暈漆暈 훈 운

白之中有紅暈紫暈墨暈。千百而不窮。可不謂之才乎

풀이 : 꽃이 변화가 많기로는 패랭이꽃만한 것이 없다. 심상히 보면 붉은 꽃과 흰 꽃 두 종류뿐이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붉은 것 가운데 흰빛이 무리진 것도 있고, 황금빛이나 검은 빛이 무리진 것도 있다. 흰것 중에도 붉은 빛. 자줏빛 먹빛이 무리진 것이 있다. 천 가지 백가지가 끝이 없어서 재주꾼이라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훈은 무리진다는 것이니 흰 꽃이나 붉은 꽃 바탕 위에 무슨 얼룩처럼 점점이 박힌 무늬입니다. 칠훈은 검은 점이 흩어져 박혀 있는 것을 말합니다. 석죽화는 줄기에 대나무처럼 마디가 있어서 석죽화라 합니다. 오래 살라는 장수를 상징하는 꽃이지요. ( 한양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정민 교수님 해석 )

▶다른 명칭 : 석죽화(石竹花). 지여죽(枝如竹), 대란 (大蘭), 산구맥 (山瞿麥), 천국화(천국화), 참대풀, 산죽화(산죽화) 패리 꽃, 패랭이꽃, 구맥이라고 한 것은 열매가 보리 이삭과 같아서이고, 패랭이란 이름은 옛날 서민인 상인들이 쓰는 패랭이란 모자를 뒤집어 놓은 것 같아서라고 한다. 석죽화란 바위에서 자란 대나무 꽃이란 것에서 유래 되었다고 한다.

▶ 길가,풀밭, 냇가, 모래땅, 묏자리 근처에서도 자란다. 갯패랭이, 구름패랭이, 섬패랭이, 각시패랭이, 수염패랭이, 난장이패랭이, 술패랭이 등처럼 다양한 종류의 이름이 재미있는 종류의 꽃이다. 꽃말은 깨끗한 사랑, 사모, 장수, 순애, 조심, 대담이다.

▶들에 나는 여러해살풀로써 봄에 피는 꽃은 빨강색, 분홍색, 흰색이며 심은 자리가 완전히 꽃으로 덮여 멀리서 보면 화려한 융단처럼 보인다. 전체가 분백색을 띤 녹색이며. 잎은 마주 나고, 길쭉한 모양이다. 꽃은 진분홍색이며, 여름과 초가을 까지 뜨문뜨문 꽃이 핀다. 바닥에 깔리는 모습이 잔디밭 같아 꽃잔디 혹은 지면패랭이라고도 한다.

꽃은 6~8월경 가지 끝에 1송이씩 연한 붉은색으로 피고 꽃잎과 꽃받침 잎은 모두 5 장이며, 꽃잎 아래쪽에는 짙은 색의 물결무늬가 있다.

패랭이 꽃을 소재로 하여 쓴 <정습명>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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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습명(鄭襲明) 의 석죽화(石竹花)

世愛牧丹紅 ( 세애모란홍 ) 사람들이 붉은 모란 사랑하여

栽培滿院中 ( 재배만원중 ) 뜰에 가득 심는구나

誰知荒草野 ( 수지황초야 ) 누가 알랴 거친 들판에도

亦有好花叢 ( 역유호화총 ) 또한 아름다운 꽃포기 있음을

色透村塘月 ( 색투촌당월 ) 빛은 시골 연못 달에 스며들고

香傳?樹風 ( 향전농수풍 ) 꽃향기 언덕 나무 바람에 풍겨 오네

地偏公子少 ( 지편공자소 ) 궁벽한 시골에 귀공자가 적으니

嬌態屬田翁 ( 교태속전옹 ) 그 고운 교태 늙은 농부만 즐기도다.

                                                                                       <동문선 오언율시(五言律詩)에서>

 

정습명(鄭襲明): 출생 연도는 정확하지 않으며, 1151년(의종 5)까지 살았던

고려 중기의 문신이다. 예부 시랑 좌승선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시에 능했다고 함.

연일현(延日縣)사람인데 뜻이 크고 기개가 있으며 체격이 크고 기이하였으며, 학문에 힘써

글을 잘 지었다고 한다. 일찍이 초에다가 금을 긋고 그곳까지 탈 동안에 이 석죽화시(石

竹花詩)를 지었는데, 고려 예종이 극찬을 했고, 한림원(翰林院)에 보직(補職)시키니, 사람들이 40자(字)의 매개(媒介)라고 일렀다.

 

정민교수님의 풀이 -------------------------------------

세상 사람들 모란을 사랑하여

동산에 가득히 심어 기르네.

뉘라 알리 황량한 들판 위에도

또한 좋은 꽃 떨기 있음을

시골 방죽 달빛이 스민 듯 고운 빛깔

언덕나무 바람결에 풍기는 향기

땅이 후져 공자님네 있지를 않아

아리따운 자태를 농부에게 맡기누나.< 한시미학 산책237쪽에서 인용 >

 

 

◈ 지은이 소개

김창업(金昌業) --------------------------------------------

1658년(효종 9) --1721년(경종 1)

 자 : 대유(大有). 아호 : 가재 (稼齋), 노가재(老稼齋). 조선시대 후기 문인이면서 화가. 조

정만(趙正萬), 이성좌(李聖佐 )등과 교유함. 노론계 문신 김수항(金壽恒)의 넷째 아들이

며, 증조부 계열인 부윤공파(府尹公派) 상복(尙宓) 댁으로 입적.16 세인 광식(光?)< 부인

숙부인 고령신씨 >의 양자로 입적하여 대를 이음.

1681년 진사가 되었으나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으며,(신유 24세),1712년 11 월(숙종 38년

55세)에 사은겸동지사(謝恩兼冬至使)로 가는 큰형인 김창집(金昌集)을 따라 중국 연경에

다녀왔다. 1713 년에 돌아왔으며 1715 년에 산천, 고적. 풍속 문물제도 등의 견문 기록인

연행훈지록<燕行塤?錄>을 스스로 편찬하였다. 그는1689년 생부가 진도(珍島)에 유배되어

사사 (賜死)되자, 모친 나씨 부인 (羅氏夫人)을 모시고 영평(永平)에서 여묘살이를 하였고,

1712년 큰형 김창집 (金昌集)이 거제 (巨濟)에 유배되는 정신적인 고난을 겪었다. 울분으

로 병이 심해져 세상을 떠났다.

겸재 정선의 그림 스승이기도 했다.

저서에《노가재집(老稼齋集)》, 〈우암송시열칠칠세상(尤庵宋時烈七七歲像)〉(국립박물관소

장), 〈추강만박도(秋江晩泊圖)〉( 전형필 박물관 소장 ) 등이 있다.

그의 문집인 <노가재집>에 의하면1678년< 생부 문곡 김수항의 유배 >부터1710년까지의

작품에는, 부친 김수항(金壽恒)이 영암(靈巖)에서 철원(鐵原)으로 이배 (移配)되었을 때에

배소(配所)에서 부친과 함께 지내면서 지은 시를 비롯하여 기행시, 만시, 백락천, 육방옹

등의 운율 차운시 등이 있으며 松, 銀杏, 芭蕉, 蓮, 芍藥, 梅花, 석죽화 등 나무와 꽃에 대

해 읊은 많은 영물시 (詠物詩) 등이 실려 있고, 동교 잡영<東郊雜詠> 문집에도 많은 시가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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