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책 속에서 죽은 모기
옛 선비들을 가장 괴롭혔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시카고 대학에서 도서관간 대출로 빌려온 이조원의 『속함해(續函海)』의 책갈피에서 공무 수행 중 순직한 모기의 유해를 보았다. 몇 쪽 건너 한 마리 꼴로 책갈피에 눌려진 채 붙어있었다. 한 페이지에 두 마리가 동시에 발견되기도 하고, 심지어 세 마리가 한 면에 발견되기도 했다. 이건 뭐 쥬라기 공원도 아니고, 적어도 1백년은 더 되었음직한 청나라 때 모기를 이곳 미국 도서관의 열람실에서 관찰하게 된 일이 미상불 흥미로웠다.
가만히 그 정경을 떠올려 보았다. 여름날 낮에 끈적끈적 녹아 내릴듯 후끈 달아오른 대지가 내뿜는 열기로 깊은 밤까지 무더위는 요지부동이다. 그 와중에 등불을 켜고 책상 앞에 앉아 보지만 땀은 비오듯 흐르지 바람은 잠잠하지, 책장이 좀체 넘어갈 줄 모른다. 풀풀 나는 땀냄새를 향기로 알고 불 밝힌 방안으로 오만 벌레들이 다 날아든다. 나방처럼 덩치가 큰 녀석도 있고, 벼룩처럼 작은 놈도 있다. 무엇보다 위협적인 것은 모기다. 귓가에 앵앵 하는 소리가 들리면 가물가물하던 정신이 화들짝 돌아온다.
그런데 이 놈의 모기가 어디 한 두 마리라야 잡든지 말든지 하지 방안 가득 웽웽거려대면 정신이 하나도 없다. 이 놈들은 겁도 없어 책갈피로 올라 앉아 내 손가락을 노리고 접근한다. 그는 책을 편 채 가만히 있다가 느닷없이 책장을 탁 덮어버린다. 한 마리 잡았다. 잠시 후 한 장을 넘기니 또 한 마리가 내려앉는다. 다시 탁 쳐서 한 마리를 잡는다. 이제는 독서는 뒷전이고 모기에만 신경이 다 가있다. 그의 신기록은 한번에 모기 세 마리를 잡은 것이다. 아예 책을 펴들고 모기가 접근하기를 기다려 책장을 탁탁 덮어 책을 모기채 대용으로 쓰며 잡았다.
이렇게 해서 『속함해』의 『청비록』 과 『우촌시화』 속에 십 여 마리의 모기가 형해로 남았다. 피는 묻지 않은 것으로 보아, 요녀석들은 피맛을 채 보지도 못한 채 비명횡사한 것이 분명하다. 책에 끼어 죽은 모기의 시신조차 수습하지 않은 것을 보면, 책주인은 책을 그다지 소중하게 간수하지 않는 신실치 못한 선비였던 것 같다. 아니면 그날 밤 모기와의 처절했던 전쟁을 기념하기 위한 의식 같은 것이었을까?
예전 문집을 보면 벌레를 향한 한없는 증오를 노래한 시들이 문집 마다 한 두 수 씩은 들어 있다. 모기장을 집집마다 갖춘 것도 아닐테고, 모기약이 있지도 않았을 때라 여름철이면 속수무책으로 모기에게 제 살과 피를 내줄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어쩔 수 없어 뜯기긴 해도 가증스럽다.
다산 선생도 「모기를 증오함(憎蚊)」이란 제목의 시를 한 수 남겼다. 강진 유배 초기 쉴 새 없이 물어대는 모기를 못 견뎌 못 참고 미물을 향해 증오를 퍼부으셨다. 모기 앞에서는 장사가 없다. 학문적 수양도 무소용이다.
사나운 범 울 밑에서 으르렁대도 猛虎咆籬根
내 능히 코골며 잠잘 수 있고, 我能齁齁眠
구렁이가 집 모퉁이 걸려 있어도 脩蛇掛屋角
그저 누워 꿈틀댐을 구경한다네. 且臥看蜿蜒
모기 한 놈 앵앵대는 소리 귀에 들리면 一蚊譻然聲到耳
기겁해서 담 떨어져 오장이 졸아붙네. 氣怯膽落腸內煎
주둥이를 박아서 피나 빨면 그만이나 揷觜吮血斯足矣
독을 쏘아 뼈속까지 스며드니 어찌 하리. 吹毒次骨又胡然
삼베 이불 꼭 덮고서 이마 겨우 내놓아도 布衾密包但露頂
잠깐만에 울퉁불퉁 부처머리 같아진다. 須臾瘣癗萬顆如佛巓
제 손으로 제 뺨 쳐도 허탕 치기 일쑤요 頰雖自批亦虛發
허벅지 급히 쳐도 먼저 알고 달아나네. 髀將急拊先已遷
싸워봐야 소용 없어 잠을 아예 못 이루니 力戰無功不成寐
지루한 여름밤이 1년과 맞잡일세. 漫漫夏夜長如年
네 자질 잗달고 종족도 미천커늘 汝質至眇族至賤
어이 해 사람 보면 침부터 흘리느뇨. 何爲逢人輒流涎
밤에 다님 참으로 도둑 심보니 夜行眞學盜
피를 먹음 어진 이가 어이 하리요. 血食豈由賢
예전에 규장각서 교서(校書)할 때 떠올리면 憶曾校書大酉舍
건물 앞에 푸른 솔과 흰 학이 서 있어서, 蒼松白鶴羅堂前
6월에도 파리조차 꼼짝하지 못하였고 六月飛蠅凍不起
대자리서 편히 쉬며 매미 소리 들었었네. 偃息綠簟聞寒蟬
지금은 흙바닥에 거적 깔고 지내느니 如今土床薦藁鞂
내가 너를 부른 게지 네 잘못 아니로다. 蚊由我召非汝愆
모기와 전쟁하던 그날 밤 유배지 처소의 풍경이 눈에 그릴 듯 선하다. 견디다 견디다 못해 시로 모기를 탄핵할 생각을 다 했다. 하지만 기세 좋게 시작한 성토는 끝에 가서 자기 탓을 하며 꼬리를 내리는 것으로 끝이 난다. 안쓰럽다.
이덕무는 『한죽당섭필(寒竹堂涉筆)』에서 모기 주둥이의 모양새에 대해 쓴 글이 있다. 제목이 「꽃 주둥이 모기(花喙蚊)」다.
범성대(范成大)가 모기를 읊은 시에서 ‘화훼(花喙)’ 즉 꽃주둥이라는 표현을 썼다. 내가 사근역(沙斤驛)에 온 것이 6월과 7월 어름이었다. 밤이면 모기떼가 발[簾] 틈새로 파고들어와 야금야금 벽 모서리로 들어오는데 동그란 배가 탱탱했다. 숫자가 얼마인지도 몰랐다. 아이를 시켜 등불을 가져와 박멸하게 해도 잠시 뒤에는 또 와서 살을 물어 견딜 재간이 없었다. 그 모양새는 날개와 다리는 가늘고 약한데 주둥이는 코끼리 코와 같다. 서 있을 때는 반드시 주둥이로 버팅겨 날개는 들고 다리는 뒤로 물렸다. 그래서 범성대가 말한 꽃 주둥이란 것을 살필 수가 없었다. 마문(麻蚊)이라 부르는 베모기가 가장 독하고, 죽문(竹蚊)이란 이름의 대모기는 조금 덜하다. 내가 규장각의 이문원(摛文院)에 숙직할 때, 이문원의 벽에도 모기가 많았다. 8,9월이 되면 다시는 살을 쏘지 않았다. 벽에 앉은 것을 자세히 살펴보니 모기마다 주둥이 끝이 더부룩해 마치 연꽃 같았다. 그제서야 꽃주둥이란 표현이 썩 잘된 비유인 줄을 알았다. 뒤에 양신(楊愼)의 『단연록(丹鉛錄)』을 읽는데, “안개가 피어날 때 게와 자라 살 빠지고, 이슬 지면 모기의 주둥이가 갈라진다”는 표현이 있었다. 옛사람이 사물의 모양을 점검하여 살핌은 사소한 것도 빠뜨리지 않고 이처럼 정밀하고 미세하였다.
우리말에도 처서에는 모기 턱이 빠진다는 말이 있다. 요즘은 초겨울까지 모기가 극성을 떤다. 그밖에 증오할 대상에 파리와 빈대 벼룩 이 등 온갖 물것들이 더 있었다. 시인들은 자신들의 붓끝으로 퍼부을 수 있는 최상의 저주를 미물들에게 퍼부었다. 옛 책 속의 모기를 보다가 한참 생각이 딴 데 가서 놀았다.
jungmin.hanyang.ac.kr <정 민교수 홈페이지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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