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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락도봉산유기(水落道峰山遊記)

백촌거사 2022. 2. 13.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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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용(鄭元容)

1783년(정조 7)-1873년(고종 10)

국역: 안동가문 청음후예 김 백촌 옮김

도움: 고전번역원 노 성두 선생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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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王京三十里。環而山曰水落道峰也。以巖石泉瀑洞壑寺刹之勝最有名。每春秋芳麗之辰。都人士委巷子弟。錦囊歌板之遊。相簇簇也。

근왕경삼십리。환이산왈수락야도봉야。이암석천폭동학사찰지승최유명。매춘추방려지진。도인사위항자제。금낭가판지유。상족족야。

서울 가까이 삼십 리를 빙 두른 산은 수락산과 도봉산이다. 바위와 돌 샘물과 폭포 골짜기 사찰의 경치로 가장 유명하다. 매년 봄가을 향기롭고 고운 날이면 서울 사람들과 시골 자제들이 시 짓고 노래하면서 유람하느라 서로 모여 들었다.

2.

余少壯時。意一躡而竟未焉。壬子九月十三日。家弟約李尙書玄甫,趙侍郞伯泳,尹承宣綏甫,韓同福周卿,皮主簿宗舜。具遊晨發。過余告之。

여소장시。의일섭이경미언。임자구월십삼일。가제약리상서현보,조시랑백영,윤승선수보,한동복주경,피주부종순。구유신발。과여고지。

나는 젊은 시절 한 번 올라 볼 생각이었으나 끝내 이 루지 못했다.

임자년(1852철종3) 구월 십삼일 집안의 동생 (정헌용<鄭憲容> 출판서 <出判書>)은 이현보(李玄甫), 조백영(趙伯泳),

윤수보(尹綏甫),한주경(韓周卿),피종순(皮宗舜) 등과 약속하고 유람할을 갖추고 새벽에 출발한다고 나를 찾아와 알려주었다.

 

3.

余曰行矣余未也。悵坐吃朝飯。從弟有之謂余曰以吾輩老未能耶。往須往。誰能障之。兄能否。余欣然許之。卽起乘二肩之輿。二儓隷二驅史。持一貼枕一襆被一筇一酒壺一菜缸隨之。從弟及季兒基命,辛老儒志泰,卞老醫宗浩從焉。

여왈행의여미야。창좌흘조반。종제유지위여왈이오배로미능야。왕수왕。수능장之。형능부。여흔연허지。즉기승이견지여。이대례이구사。지일첩침일복피일공일주호일채항수지。종제급계아기명,신로유지태,변로의종호종언。

 

내가 말하기를 “너희들은 가라, 나는 갈 수가 없다.” 라고 하고는 애가 타게 앉아서 아침밥을 먹었다.

사촌 아우가 나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늙어서 갈 수 없을까요? 가는 거야 반드시 간다면 누가 막겠습니까? 형은 갈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라고 말하기에 내가 흔쾌히 허락하였다.

타고 갈 가마, 두 사람의 하인과 관노비(官奴婢), 몸에 지닐 하나의 수첩, 베개와 하나의 건. 이불과 하나의 지팡이. 하나의 술 항아리 하나의 반 찬 그릇 등도 준비하였다. 사촌 아우와 그의 막내아들 기명(基命) 나이든 선비 신지태(辛志泰), 나이든 의사 변 종호(卞宗浩)도 따라나섰다.

 

4.

於是出城東門水落。日已斜。行三十里。

蘆原提燈。踰林嶺數里。抵興國寺。俗稱德寺。宿西別堂。晨興飯。始辨色。

어시출성동문향수락。일이사。행삼십리。

유로원제등。유림령수리。저흥국사。속칭덕사。숙서별당。신흥반。시변색。

이에 성 동쪽 문을 나와서 수락산 水落山으로 향했다.

해는 이미 기울어 졌고, 삼십 리를 갔다. 노원으로부터는 등불을 들고 숲 고개를 넘어 몇 리를 가서 흥국사(興國寺)에 다다랐다 . 세속에서는 덕사 (德寺) <덕절> 이라고 일컫는다.

서쪽 별당에서 잠을 자고 새벽에 일어나 밥을 먹으니, 비로소 희끄무레 동이 트기 시작하였다.

 

5.

出山門。大霧彌山谷。行五六里。對岸蘚壁。微辨刻玉流洞。憇石上烹茶。少焉旭高昇。霧稍稍捲散。峰巒始呈露。頭頭頂頂。挺秀聳拔。頹嵐斷霞。又點綴之。與墨水潑染之繪畫相類。且奇觀也。

출산문。대무미산곡。행오륙리。대안선벽。미변각옥류동。게석상팽다。소언욱고승。무초초권산。봉만시정로。두두정정。정수용발。퇴람단하。우점철지。여묵수발염지회화상류。차기관야。

 

흥국사 절문을 나오니, 짙은 안개가 산골짜기에 가득 찼다. 오륙 리쯤 가니 건너편 언덕 이끼 낀 벽에 옥류동(玉流洞)<금류동천(金流洞天). 해서체 ‘道光 丁西五月1873년(헌종 3년’)>이라는 글자가 희미하게 보였다. 바위 위에 앉아 쉬며 차를 달여 마셨다.

얼마 후 해가 높이 솟아나고 안개가 조금씩 걷히자 산봉우리가 비로소 드러나서 꼭대기마다 뾰족뾰족하게 빼어나 높이 우뚝 솟아 있었다. 스러지는 아지랑이와 조각놀이 또 점철되어 먹물을 뿌려서 그린 그림과 서로 비슷하였으니, 또한 보기가 드문 기이한 경치였다

6.

兩岸擘開。石以之底。水以之布。廣濶曼衍。平平作層級。間流淺狹僅如帶。想雨眺爲快也。傍流之石。盤陀可席。或突而爲几榻。或窪而爲盆臼釜鐺。水聚而渟澄可鑑。

양안벽개。석이지저。수이지포。광활만연。평평작층급。간류천협근여대。상우조위쾌야。방류지석。반타가석。혹돌이위궤탑。혹와이위분구부당。수취이정징가감。

 

양쪽 기슭이 갈라져 열려있는데 바위는 바닥에 있고 물은 폭포수로 떨어져서는 넓게 퍼져 흐르면서 평평하게 층을 이루었다. 틈 사이 얕고 좁게 흐르는 물은 겨우 띠 같아서 내리는 비를 생각나게 하여 바라보니 상쾌하였다. 흐르는 물 옆의 바위는 비스듬하여 앉을 만하였는데, 혹 불거진 곳은 궤안이나 걸상 같았고, 혹 움푹 팬 곳은 절구나 가마솥 같았으며 물이 모여서 고이자 거울처럼 맑았다.

 

7.

自此懸磴危棧。曲折偪仄。鳴筇移步。選而後蹈。至芝峙巖巖陡截。至脊愈滑。斧銜以受履。惴栗益謹。循級尋跡。若肆采節。趍窮而息稍定。

자차현등위잔。곡절핍측。명공이보。선이후도。

지지치암암두절。지척유활。부함이수리。췌률익근。순급심적。약사채절。추궁이식초정。

여기서 부터는 가파른 돌길과 아찔한 잔도(棧道)가 굽고 좁아서 지팡이를 울리며 걸음을 옮기는데 땅을 잘 골라서 밟았다. 지치암(芝峙巖)에 이르니 절벽이 험하였고 등성마루에 이르니 더욱 미끄러웠다. -斧銜以受履- 두려워서 더욱 조심하였다. 층계를 따라 흔적을 찾는데 마치 采節 같아서 끝까지 가서야 숨이 조금 안정되었다.

도끼를 입에 물고 발을 내밀었지만 두려워서 더욱 조심하였다. 층계를 따라 흔적을 찾는데 마치

방자하게도 제철의 나물을 뜯는 것 같아서 끝까지 가서야 숨이 조금 안정되었다.

 

 

8.

見西岸石壁斗疊而長亘者曰三瀑洞。行數里。望見林樹間。人衣袂隱映未已。意前行伴宿內庵回路也。及相遌互叫奇。有從者安遠亨吹笙簧。淸韻益飛越。

견서안석벽두첩이장긍자왈삼폭동。행수리。망견림수간。인의몌은영미이。의전행반숙내암회로야。급상遌호규기。유종자안원형취생황。청운익비월。

 

서쪽기슭 돌 벽을 바라보니 겹쳐 길게 걸쳐 있는 것을 삼폭동이라고 하였다. 수 리를 가서 나무숲 사이를 바라보니 사람의 옷소매가 쉬지 않고 은은하게 비치는데, 앞선 일행이 內庵에서 숙박하고 돌아가는 길인 듯하였다. 만나서는 서로 소리를 쳐서 불렀다. 일행 중에 安遠亨이라는 사람이 생황을 불자 맑은 곡조가 더욱 울려 퍼졌다.

 

9.

約午炊長水院。少進內庵。磬聲到矣。盤石跨寺樓前。圓闊鑱磨。若神斧劈斲整齊。高可數十仞。水勢雖不飛舞噴激。而轉輪曳縠金晶可愛。

 

至底不作淵潭。瀠漩洄漣久之。急溜而去。嵌崖叉麓。楓林雜樹。經新霜作丹黃色。紅葉或墜揚於疊石洑流之間。錦紋眩纈。

약오취장수원。소진내암。경성도의。반석과사루전。원활참마。약신부벽착정제。고가수십인。수세수불비무분격。이전륜예곡금정가애。지저불작연담。형선회련구지。급류이거。감애차록。풍림잡수。경신상작단황색。홍엽혹추양어첩석보류지간。금문현힐

장수원에서 점심 먹기로 약속하고 조금 가니 내원암의 풍경소리가 들렸다. 넓고 평평한 바위가 절 누각 앞에 웅크리고 있는데, 둥글고 넓게 파고 갈아서 마치 신령스러운 도끼로 쪼개고 깎아 정돈한 듯하였고 높이가 수 십 길이었다. 물살은 비록 날아 춤추고 세차게 뿜지는 않았으나 굴러 흐르는 모습이 비단을 끄는 듯하고 금이 빛나는 듯해 참으로 좋아할 만하였다.

 

밑에 이르러서는 못을 이루지는 않고 물결이 소용돌이치며 오랫동안 돌다가 매우 급하게 흘러갔다. 깊은 벼랑은 산기슭이 깍지 낀 듯하고 단풍 숲과 잡목들이 서로 뒤섞였는데 무서리가 내려서 알록달록 하며, 붉은 잎은 혹은 떨어져 첩첩바위 흐르는 물 사이에 떨어져 날려 비단 문채가 현란한 듯하였다.

10.

抵寺正宇曰極樂寶殿。金字籠碧紗。門楣扁內院庵楓臯金太史筆。對樓曰知足。海居洪都尉筆。樓南卽金洞上流。石刻金流洞大字。朴尙書周壽筆。僧言堂宇辛卯經回祿重建

저사정우왈극악보전。금자롱벽사。문미편내원암。풍고금태사필。대루왈지족。해거홍도위필。루남즉금동상류。석각금류동대자。박상서주수필。승언당우신묘경회록중건

 

내원사 정면의 寺宇에 이르니 ‘극락보전’ 이라 하였고,

금빛 글자를 푸른 비단으로 싸 있었다.

문미의 편액은 ‘내원암’이라고 쓴 풍고 김조순 태사의 글씨였고, 맞은 편 누각은 지족이라 했고, 해거 홍도위(居齋 홍현주(洪顯周, 1793년~1865년)의 글씨였으며, 누각 남쪽 곧 금동 상류는 돌로 새긴 ‘금류동’<금류동천(金流洞天)’>이라는 커다란 글자였다. 상서 벼슬인 박주수(朴周壽)

<1787(정조 11)∼1836(헌종 2). 본관 반남(潘南), 자 군여(君與)>의 글씨였다. 스님의 말로는 堂宇는辛卯(신묘,1771)년에 화재를 만나 중건했다고 하였다.

11.

樓西數十步。新構七星閣。內揭光膺殿金字板。閣門傍獨巖蹲踞。僧云龍角石。

루서수십보。신구칠성각。내게광응전금자판。각문방독암준거。승운룡각석。

내원루 서쪽으로 수 십 보를 가니 새로 지은 칠성각<1794년 정조18>이 있었다. 내원루에는 광응전(光膺殿)이라는 금빛 글자의 판이 걸려 있었고 전각문 옆에는 홀로 웅크리고 있는 바위가 있었는데 스님이 이르기를 ‘용각석’(龍角石)이라고 말했다

 

12.

出洞門。由松山行二十里。長水院店舍。前伴先在。飯將熟。孫範朝來言昨夜鍾時。自高陽還。聞行信曉發至德寺。且問且趕遂到此。笑不嗔。

출동문。유송산행이십리。장수원점사。전반선재。반장숙。손범조래언작야종시。자고양환。문행신효발지덕사。차문차간수도차。소불진。

 

洞門을 나와 송산으로부터 이 십리를 가서 장수원 주막에 도착했다. 앞에 온 친구들이 먼저 와 있었으며 밥이 익어가고 있었다. 손 범조가 와서 말하기를, 어젯밤 종을 칠 무렵 고양에서 돌아왔는데, 일행이 분명히 새벽에 출발하여 덕사에 이르렀을 것이라는 소문을 듣고는 한편으로 묻고 한편으로 달려서 드디어 여기에 도착했다고 하기에, 웃기만 하고 성내지는 않았다.

13.

又行十里。入道峰洞口。近寺益崎嶔。多舍輿。憇望月寺之樓軒。家人具酒麵至。欣然共醉。

上東臺。隆然起平阜。可百人坐。東眺墟然莽然無涯際。佛巖天寶諸山狀㟝嶁。峀巒纍纍類鬟䯻。

우행십리。입도봉동구。근사익기금。다사여。憇망월사지루헌。가인구주면지。흔연공취。상동대。륭연기평부。가백인좌。동조허연망연무애제。불암천보제산상㟝루。수만류류류환고。

상동대。륭연기평부。가백인좌。동조허연망연무애제。불암천보제산상배루。수만류류류환고。

 

또 십리를 가서 도봉동 입구에 들어서니 근처의 사찰들은 더욱 높고 험한 곳에 있어서 교자를 대부분 버렸다. 망월사 누각 마루에서 쉬고 있으니 家人(노복)이 술과 밀가루 음식을 갖추어 이르렀다. 기뻐서 함께 취하였다.

 

동쪽 누대에 오르니 평평한 언덕에 우뚝 솟아 있어 백 사람이 앉을 만하였다.

동쪽을 바라보니 언덕은 아득하게 끝나는 곳이 없었다.

불암산(佛巖山) 천보산(天寶山)의 여러 산들은 우뚝 솟은 봉우리였다. 산봉우리들이 옹기종기 트레머리 모양이었다.

 

14.

斗湄下大江。微茫溪澗流也。西望峰嶂森列。骨而少膚。或層疊或抱對或瑰特。僧指最絶頂曰義相臺大師說法塲也。傍列一行石枚。長短間之。若樹木之列植而旐旟之位置。僧云名羅漢峰。

두미하대강。미망계간류야。서망봉장삼렬。골이소부。혹층첩혹포대혹괴특。승지최절정왈의상대대사설법장야。방렬일행석매。장단간지。약수목지렬식이조여지위치。승운명라한봉。

斗湄 아래 큰 강은 아득한 시냇물이 흘렀으며 서쪽을 바라보니 중첩한 봉우리들이 빽빽이 늘어서 있었다. 뼈대가 많고 살집은 적은 편으로 혹 중첩되기도 하고 혹 마주 안기도 하고 혹은 기이하기도 하였는데, 승려가 가장 높은 꼭대기를 가리키면서 의상대사가 설법하던 장소라고 하였다. 곁에 줄지어 늘어선 한 줄기 바위는 크기가 길고 짧은 것이 서로 끼어 있어서, 마치 줄지어 심은 나무가 번식하여 자리 잡은 듯하였다. 승려가 이르기를 이름이 나한봉이라고 하였다.

 

15.

夕氣蒼凉。下臺而樓會飯。是夜籟寂境淨。長空無點翳。圓月輪益大。輝益揚。皓潔晶澈。不可名狀。玆山之峻極而樓據山之巓。諸勝聚焉。望覽豁濶無障。尤與月色相宜。

석기창량。하대이루회반。시야뢰적경정。장공무점예。원월륜익대。휘익양。호결정철。불가명상。자산지준극이루거산지전。제승취언。망람활활무장。우여월색상의。

 

✶저녁기운이 서늘하고 차갑다. 대에서 내려와 누에서 모여 저녁밥을 들었다. 이 날 밤은 고요하고 경내가 깨끗하여 높은 하늘엔 한 점의 티끌도 없었다. 둥근달은 갈수록 더욱 크고 빛은 더욱 뚜렷하고 하얗고 깨끗하고 맑아 무어라 형언할 수 없었다.

이 산은 매우 높고 누대가 산꼭대기에 자리 잡고 있으며 절경이 모여 있었다. 바라보면 아무것도 막힘이 없이 탁 트여 달빛과 더불어 더욱 잘 어울렸으니,

16.

樓名良以哉。更深煖酒相屬。賦四韻詩。安生吹笙簧。皮生拍扇而歌。與淙澗摵葉相和然。懸燈和衣睡。

루명량이재。경심난주상속。부사운시。안생취생황。피생박선이가。여종간색엽상화연。현등화의수。

✶누대 이름을 그렇게 지은 이유가 참으로 있었다. 밤이 더욱 깊어 따뜻한 술을 서로 권하며

사율시를 읊었다. 안생은 생황 악기를 불었고, 주부 벼슬인 피 종순은<皮主簿宗舜> 부채를 치면서 노래를 불렀는데, 계곡의 냇물소리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와 서로 잘 어울렸다. 등불을 매달아놓고 옷을 입은 채로 잤다.

 

 

17.

十五日朝將發。問僧天竺路。僧云由洞口逶迤二十里路多夷。從山間稍險可十里。諸伴奮躍而前曰山行便佳。余獨後焉。

십오일조장발。문승천축로。승운유동구위이이십리로다이。종산간초험가십리。제반분약이전왈산행편가。여독후언

✶십오일 아침에 길 떠나려 하면서 스님에게 천축사 가는 길을 물으니, 스님이 이르기를 “골짜기로부터 구불구불 이십 여리 길은 대부분 평탄하지만, 산속부터 십리쯤은 조금은 험하다. „ 라고 하였다.

여러 친구들은 뛰어 앞으로 가면서 “산행은 좋구나”하였는데 나 혼자만 뒤쳐졌다.

 

18

登西嶺展數十武。左右眄。惟黝壁頑嶝。橫亘縈絡。爲巘者磈硊峍屼。爲峽者碨礧嶇巇。

등서령전수십무。좌우면。유유벽완등。횡긍영락。위헌자외위률올。위협자외뢰구희。

✶서쪽고개를 올라 수십 걸음쯤 나아가 좌우를 얼핏 보니 오직 검푸른 벽에 가파른 고개가 가로로 뻗쳐 감돌고, 산봉우리는 높고 험하게 우뚝 솟았고, 골짜기는 울퉁불퉁하며 험하였다.

 

19

穿線徑。筇響硠硠。石側倚而罅。礓礫堆以縫腹綴石。而僂腰㑋足以度之。又踰懸厓。鼯緣猱攀以上。始見前行者魚貫鴈序而進也。

천선경。공향랑랑。석측의이하。강력퇴이봉복철석。이루요궁족이도지。우유현애。오연노반이상。시견전행자어관안서이진야。

✶  오솔길 뚫고 가니 지팡이 울림소리가 딱딱 울렸다. 돌 옆 기울고 틈이 벌어진 곳에 자갈이 쌓여 있는 것을 가운데를 꿰맨 듯해 허리를 구부리고 짧은 보폭으로 건너갔다.

또 절벽을 넘어 날 다람쥐와 원숭이가 오르듯 위로 갔더니 비로소 앞에 가는 사람들이 물고기 꿰듯 기러기 늘어서듯 앞으로 나가는 것이 보였다.

20.

見萬丈峰。高可百尋。緣趾至巓。純石爲質。

一似冶爐之鎔鐵鑄造。風雷之所剝蝕。雨雪之所礱鐫。

鮮瑩章絢。奇不一狀。

견만장봉。고가백심。연지지전。순석위질。

일사야로지용철주조。풍뢰지소박식。우설지소롱전。

선형장현。기불일상。

✶만장봉(萬丈峰, 718m)을 바라보니, 그 높이가 백 길 족히 되고, 터로부터 꼭대기까지 바탕이 순전히 돌로만 되어있어 한결같이 흡사 용광로에 쇠를 녹여서 주조한 듯한데, 바람과 우레에 깎이고 침식되고, 비와 눈에 갈리고 파여, 무늬가 선명하고 환한 것이 모양새가 다양하여 일정한 모양이 아니었다.

21.

三峰長第植立。而前後拱趨者。若抗若墜若壓者。如仆如倚如伏者。獸相搏者。翮騫騰者。旄幟槊戟之井井者。詭異不相讓。

삼봉장제식립。이전후공추자。약항약추약압자。여부여의여복자。수상박자。핵건등자。모치삭극지정정자。궤이불상양。

✶세 봉우리가 차례로 우뚝 서서 앞뒤로 손을 모으고 나아가는 것이 마치 항거하듯 떨어질 듯 누르듯 하고, 엎어질 듯 기댄 듯 엎드린 듯하고, 짐승이 서로 싸우듯 하고, 날개로 날아오르듯 하고, 깃발과 창이 질서 정연히 늘어선 듯하여, 괴이한 모습이 서로 조금도 부족하지 않았다.

 

22.

峰底傍谽谺成小窟。僧云高禪讀經舊址。往往土汰成堆磧。足一跌如氷坂之走。足小駐輒顧笑。且隥斷崿缺者。數攀藤超竇。或縮跬 或跂? 或手代蹠而尻代趾。

봉저방함하성소굴。승운고선독경구지。왕왕토태성퇴적。족일질여빙판지주。족소주첩고소。차隥단악결자。수반등초두。혹축규 혹기무 혹수대척이고대지。

 

✶봉우리 밑에는 옆쪽이 텅 비어 작은 동굴이 되었는데, 승려가 ‘고승들이 불경을 읽던 옛터’라고 말하였다. 이따금 흙이 미끄러져서 서덜이 되어서, 한 번 발을 헛디디면 얼음판을 달리듯 미끄러져서 발이 조금 멈추게 되어서야 돌아보며 웃었다. 또 비탈이 끊어져서 낭떠러지가 된 경우에는 등나무 넝쿨을 자주 잡아당겨서 구덩이를 넘고, 혹은 반걸음으로 줄이고 혹은 발 돋음을 하고 혹은 손으로 발을 대신하고 엉덩이를 발 대신 사용하였다.

23.

凡行險者所倚仗惟手足。而目以督之。盖與視爲謀而定。然後升則指。降則踵也。若偕盤山導僧。不知發送幾聲笑也。(袁宏道遊盤山。先與導僧約。遇險處當大笑。每聞笑聲。皆膽掉。)

범행험자소의장유수족。이목이독지。개여시위모이정。연후승칙지。강칙종야。약해반산도승。불지발송기성소야。(원굉도유반산。선여도승약。우험처당대소。매문소성。개담도。)

 

✶무릇 험난한 곳을 가는 사람이 의지하는 것은 오직 손과 발이며 눈으로 살펴보는 것이다. 보통 눈으로 보고 가늠하여 결정한 연후에 오를 때에는 손으로 잡고 내려갈 때에는 발로 딛는 법인데, 만약 盤山의 안내하는 승려와 함께 했더라면 몇 번의 웃음소리를 내었을지 몰랐을 것이다.

<원굉도(袁宏道) 1568년 ~ 1610년)는 중국 명 말의 문인. 자 중랑(中郞), 호 석공(石公).公安三袁 袁宗道, 袁宏道, 袁中道.

遊盤山記」 >가 반산을 유람할 때 먼저 안내하는 승려와 약속하기를 험한 곳을 만나면 크게 웃기로 하였는데, 웃음소리가 들릴 때 마다 모두 담이 떨렸다)

24.

入寺。寺扁曰天竺。負萬丈峰。峰至此爲正面。

潤滑淨拭。碧綠玲瓏。

입사。사편왈천축。부만장봉。봉지차위정면。

윤활정식。벽록령롱。

절에 들어가니 절 이름이 천축이었는데

만장봉(萬丈峰:718m)을 등지고 있었다. 봉우리는 여기에 이르러 정면이 된다. 매끄럽고 깨끗이 씻은 짙푸른 녹색이 아름답게 빛났다

25.

坐樹下飯。出洞口。家弟一行向北漢

余一行還入城。華山多石。廬山多瀑。非踰絶險則無以探其勝

좌수하반。출동구。가제일행향북한。

여일행환입성。화산다석。려산다폭。비유절험칙무이탐기승

✶나무 아래에 앉아서 아침을 먹고 골짝에서 나왔다.

동생 일행은 북한산으로 향하고, 우리 일행은 성으로 다시 들어왔다. 華山<수락산>에는 돌이 많고, 여산 <도봉산>에는 폭포가 많아서 몹시 험한 곳을 넘지 않으면 그 절경을 찾을 수 없다.

26

靈區奧址之爲空門受用久矣 豈公侯 貴達彤轂綠鞅之 所得躡者哉

玆兩山拱都而近。秀潔晦明朝夕之狀。皆可以供衆矚而名益顯。豈非山之幸歟。如余老且癃焉。而獲涉遊。又非余之幸歟。

령구오지지위공문수용구의 기공후 귀달동곡록앙지 소득섭자재

자량산공도이근。수결회명조석지상。개가이공중촉이명익현。기비산지행여。여여로차륭언。이획섭유。우비여지행여。

✶ 신령한 곳 깊숙한 터를 사찰에서 수용한지 오래되었으니, 어찌 벼슬이 높고 영달하여 화려한 수레를 모는 사람들이 밟을 볼 수 있는 곳이겠는가.

 

이 두 산은 도성을 옹위하면서 가까이 있고 빼어나고 깨끗해서 아침저녁으로 어두워지고 밝아오는 모양새가 모두 사람들의 눈을 놀라게 하여 이름이 더욱 드러났으니 어찌 산의 입장에서 다행이 아니겠는가.

나처럼 늙고 병약한 사람이 다니며 노닐 수 있으니, 또한 내 입장에서도 다행이 아니겠는가.

 

 

 

 글을 가져 가시는 것은 절대 환영하지만 출전을 정확히 밝혀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