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序言--------------------------------------
1722 년 8 월 24 일 북쪽 함경도 땅 富寧 땅에서 賜死되시기 전에
오직 하나뿐인 손자에게 급히 쓴 눈물의 유서 같은 편지글이다.
비록 이 세상을 떠나가지만 면면히 이어 온 안동 가문의 전통을 잘 이끌어 달라는
할아버지의 눈물이 담긴 간곡한 당부가 담겨 있다. 총 5 1 자에 담긴 눈물의 애소 이다. 문곡 12 대 후손 한 사람 白村 彰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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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 孫 履長 書( 기손이장서)------ 金 濟謙 (1680~1722) 자는 필형(必亨). 호는 죽취(竹醉) 옮긴이 白村 金彰顯 (문곡 김수항의 12 세 손)
하나뿐인 손자 履長에게 吾死分也. 不得 復見汝. 面目耿耿. 汝必有所成 勤學不倦 以繼述志事可也. 先祖考祭祀 只在汝身 當益處也. 前書見之否餘不一一. 한자 읽기 오사분야부득부견여면목경경여필유소성근학불권 이계술지사가야선조고제사지재여신당익처야 전서견지부여불일일 -------------------------------------------------- 국역 할비는 죽는다. 너를 다시 볼 수가 없구나. 네 얼굴이 잊혀 지지 않는구나. 너는 꼭 이루는 바를 부지런히 배워 게을리 하지 말며, 선조의 업적을 이어받아 뜻과 일을 이루도록 하여라. 돌아가신 할아버님들의 제사는 다만 네 자신에게 있으니 더욱 더 대처하도록 하여라. 지난번의 편지는 보았느냐. 나머지는 일일이 쓰지 못한다.
1722 년 壬寅 경종 2 년 8 월 24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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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이해 노트>---------------------------------------
1. 1721년 辛丑 년 <신축사화> 12 월 아버지 夢窩 忠獻公 김창집 (金昌集, 1648∼1722) 조상님은 星山에 아드님은 거제(巨濟)로 유배를 떠나신 후 다시 1722 년 3월 27일 목 호룡(睦虎龍, 1684~1724)의 다음과 같은 告變으로 1722 년 임인 년 4월 29일 성산에서 賜死 되셨고, 8 월 24 일 함경도 富寧 땅에서 세상을 떠나셨다.
2. 이 편지는 죽음을 앞에 두고 부령 땅에서 오직 하나뿐이던 5 살 짜리 친손자 앞으로 보낸 유언과 같은 총 51 자의 짧은 서간문으로 구절마다 슬픔이 배어 있는 글이다.
한마디로 이제 <이 할비는 죽는다吾死分也>라는 한 마디로 첫 서두를 펴고, 손자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담아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였다. 그리고는 앞으로 가문을 이어갈 손자에게 간곡한 당부를 하였다. 학문에 게으르지 말 것이며, 조상들의 전통을 잘 이어가야 한다고 하였고, 조상들의 제사들도 꼼꼼히 챙기라는 유언을 하시는 것으로 본문을 맺었다. 마지막 결말의 인사도 가슴이 미어진다, 곧 죽어갈 이가 또 더 말해 무엇하랴. 하고 싶은 말 그리 많아도 그냥 가슴에 묻어두고 초연한 마음으로 죽음에 임하고 있는 할아버지의 슬픈 심정이었으리라. 아마도 잔뜩 눈물이 괸 편지글이었으리라.
서두-- 인사말--- 죽음을 알림. 손자 향한 그리움
본문--- 당부- 면학. 가문 전통 승계. 제사 걱정
결말--- 유구 무언. 이만 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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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호룡睦虎龍의 고변告變<경종 2년(1722 임인3월 27일)>
睦虎龍者上變告: “賊有謀弑上者, 或以刃以藥, 又謀黜。 有國以來未有之賊。 請急討, 以安宗社。” 又曰: “賊有賣東宮, 以貽難洗之辱。 究賊情雪累名, 以安國本
又曰: “賊有賣東宮, 以貽難洗之辱。 究賊情雪累名, 以安國本。”
역적(逆賊)으로서 성상(聖上)을 시해(弑害)하려는 자가 있어 혹은 칼로써 혹은 독약(毒藥)으로 한다고 하며, 또 폐출(廢黜)을 모의한다고 하니, 나라가 생긴 이래 없었던 역적입니다. 청컨대 급히 역적을 토벌하여 종사(宗社)를 안정시키소서
또 말하기를,
“역적 중에 동궁(東宮)을 팔아 씻기 어려운 오욕을 끼치려 하는 자가 있습니다. 역적의 정상을 구명(究明)해서 누명(累名)을 씻어 국본(國本)을 안정시키소서.”
< 조선왕조 실록 인용>
※ 이 후에 이 고변은 誣告로 판명이 되어 명예를 회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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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어 이해>
面目 1 얼굴의 생김새.2 같은 말: 낯 3 사람이나 사물의 겉모습( 용모 )
불교에서는 본체[本體] 그대로의 상태, 참모습을 일컫는다고 한다.
耿耿 1 빛이 약하게 환함.2 불빛이 깜박거림.3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고 염려가 됨
勤學 1 학문(學問)에 힘씀 2 부지런히 공부(工夫)함 不倦 게을리 하지 않음
繼述 조상(祖上)의 하던 일이나 뜻을 끊지 아니하고 이어 감
志事 뜻과 위업
見之否 보았느냐 못 보았느냐
餘不一一 나머지는 일일이 다 쓰지 못함. 상투적인 서간문의 결말
-------------------- 문정공파 족보기록 壬戌 보 ------------------
김 이장 (金履長)
자 장경(長卿) 음 장악정(蔭掌樂正)
1718년(숙종44 무술) 7 월 5 일 - 1774년(영조50 갑오) 12 월 18 일
향년 57세
증좌찬성(贈左贊成)
부인 증정경부인(贈貞敬夫人) 덕수이씨 (德水李氏)
1718년(숙종44 무술)- 1778년(정조2 무술) 2 월 8 일 향년 61세
부 광연(廣淵) 조 현감(縣監)증화(增華) 증조 동야(東野) 외조 호판(戶判) 김진구(金鎭龜) 본 광산(光山)
산소 충정공조(忠正公兆)<부20세省行> 차을좌(次乙坐) 합폄(合窆) 誌 종제자(從弟子) 조순(祖淳)撰 表 증손(曾孫) 男 병기(炳冀)書 孫男문근(汶根)篆 (乙坐- 남동쪽방향)
부인(夫人)지명(誌銘) 조순(祖淳)撰
자녀 4 남 1녀
復淳1-泳根 演根 沃根 趙秉榦( 풍양인)
泰淳2- 敎根 韓象履( 청주인)
麟淳3- 종숙 履直 出- 浚根- 洙根 汶根(出) 李英奎( 전주인)
頤淳4- 汶根 漢根 宋完圭(은진인)
女 洪守榮( 풍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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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곡 종가의 가계◀
鼻祖 宣자平자-10세 係權-11세 永銖5-12세 璠2-13세生海-14세 大孝( 大孝1 元孝2 克孝3)-15세 尙憲( 생부 克孝)- 16세 光燦-17세 壽恒3- 18세 昌集- 19 세 濟謙-20세 省行-21세 履長-22세 復淳-23세 泳根-24세 炳駿- 25세 文圭- 26세 禎鎭- 27세 益漢- 28세 瓚東- 29 세 珠顯( 62년 임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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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등장 < 왕조 실록인용>---------------------金履長 등장
英祖 37年(1761 辛巳) 8月 5日 司僕判官 金履長 特命陞敍
英祖 44年(1768 戊子 ) 12月 15日都承旨金應淳啓 黃州收使 金履長 致勤點下
道臣推考
英祖 45年(1769 己丑) 8月 17日
命放 金履長 履長 因妓事旣被竄 上曰: “予於二人, 思其祖而用之。” 命特放給牒。
掌樂正 각종 제사와 의례 각종 행사의 음악과 교육 악공 악생의 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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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취 조상님의 시 한편 감상
鴨江拜別家大人 <압강배별가대인>---------------
아버님 보내드리며
金 濟謙
松鶻山高鴨水長 송골산 우뚝 솟고 압록강 뻗쳐 있네.
勞歌一曲斷人腸 뱃노래 한 가락에 애간장 타는구나.
輕車駟馬如飛去 네 필 말 모는 수레 나는 듯 달려가고
獨望行塵上絶崗 수레 먼지 위쪽에 등성이만 바라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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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취 선조님께서 33 세 때에 아마 아버님을 따라 압록강까지 가서 배웅을 하며 쓰신 시 같다. 1712 년 11 월 謝恩兼冬至使로 가셨다.
이별의 어떤 아픔보다는 자연의 서경과 함께 멀리 사라져 가시는 아버님 행차의 뒷모습을 담은 것 같다. 죽취고에 담긴 생전의 시다.
(1721 신축) 12월 12일(무진)
김제겸(金濟謙)을 울산부(蔚山府)로 귀양보냈다. 竄金濟謙于蔚山府
(1722 임인) 6월 4일(정사)
김 제겸(金濟謙)을 부령부(富寧府)에 찬적(竄謫)하였다. 竄金濟謙富寧府
※ 죽취 아호는 왜 죽취인가 5 월 13 일 죽취일에 태어나셨기에.
< 조선왕조 실록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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履長 선조의 산소 전경-- 앞쪽에는 안동김씨 세장비가 세워졌고. 양쪽에는 망주가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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