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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日與 海谷‧秋史‧彛齋‧石閒‧ 遊 北漢
가을 날
북한산 유람
黃山: 김유근(金逌根)
국역: 문곡 후손 金彰顯
1785(정조 9)∼1840(헌종 6).
자는 경선(景先), 호는 황산(黃山).
영안부원군(永安府院君) 조순(祖淳)의 아들이다
남종문인화(南宗文人畵)를 잘 그렸다.
유작으로 개인 소장의 〈오주고목도 五株枯木圖〉와 〈괴석도 怪石圖〉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연산도 硏山圖〉 소림단학도<疎林端壑圖>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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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노트】
양평군 <친환경농업박물관>에서 발행한 <黃山遺稿> 문집(2009년)에는 실리지 않은 초고본이라고 할 수 있는 곳에 실린 작품이다. 계명대 김 영진 교수 님은 <고전과 해석>이라는 학술논문에서 간단히 작품 연대를 밝힌 바는 있으나, 작품에 대한 구체적인 풀이는 읽을 수 없어 크게 안타까울 뿐이다.
<황산유고> 집에 실리지 못한 작품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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其 一北漢山 가을 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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蒼崖紅樹疊相依 푸른 언덕 단풍나무 빽빽하게 서 있고,
望望登高路轉微 산에 올라 볼수록 길들은 아른아른
我伴白雲今始到 흰 구름과 함께 와 이제 막 이르렀네.
卄年還笑出山非 스무 해 우스워라 산 나와 잘못됐네..
평성 微 자 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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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노트】
황산의 초고본이라고 할 수 있는 閒居感秋集序<1808-1822임오>로 시작이 되는 책에 실려 있는 작품이다. 이 책에 실린 <惠慶宮挽章 ><正宗大王遷陵挽章>
<嘉順宮挽章>이라는 시들은 지은 연대를 확실히 알 수 있는 확실한 작품들이라 이 책이 연대순으로 배열이 되어 있음을 알 수가 있겠다.
<惠慶宮挽章>(1735~1815)--- 순조15년 乙亥에 돌아가심- 황산 31세
<正宗大王遷陵挽章>-정종은 정조를 말함. 정조[正祖, 1752~1800] 조선 제22대 왕(재위 1776~1800). 왕비 효의왕후(孝懿王后:1753년~1821년) 1821년 순조21 신사에 천릉 =健陵>---- 황산 37세
<嘉順宮挽章> 가순궁(嘉順宮)-純祖의 生母 수빈박씨(綏嬪 朴氏, 1770년~1822년)--황산38세
결국 이 책에 실려 있는 작품들은 황산의 20대 초반부터 30 대 후반에 쓰여진 작품이라고 볼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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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블로그를 보시면서 북한산도 감상하시기를.
http://blog.naver.com/madecolor/20153744294 북한산 종주
http://blog.daum.net/yongjae625/17191513 숨은 벽 능선
산행길이 오늘은 이리도 힘이 드니
살아온 20 년의 세월이 그리 힘드는구나.
< 내용 이해>------------------------------------
20 대 후반이나 30 대 후반의 나이에 어느 가을 山閒이라는 선배 한 분과
비슷한 또래의 세 친구인 海谷(전주1783), 秋史(경주1786) 彛齋 (안동권씨 1783)와 서로 앞 다투어 가면서 837m의 북한산을 올랐다. 무척이나 힘이 든 산행 길이었음을 말하며 이날에 산을 오른 것은 잘못이라고 판단하였다.
화자 자신이 나이에 비해서 힘들게 산 정상을 오른 것에 대한 자괴감 같은 마음을 담았다.
< 두련>: 가을 단풍의 화려한 모습.
蒼崖: 푸른 언덕. 절벽. 紅樹: 단풍. 疊相依: 겹겹이 서 있는 단풍나무의 울창한 모습
< 함련>: 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모습----- 가을의 서경
望望: 아득히 바라보는 모양 . 路轉微: 높은 산꼭대기에서 내려다보는 운무가 낀 모습.
• 힘이 들어 숨이 찬 모습으로 내려다보고 있기에 더욱 산 아래의 정경이 희미했을 것이다.
< 경련>: 산 정상에 도착한 모습----- 산행길이 고행길--- 서정.
30세나 앞서신 石閒 어르신, 그리고 두 살이 많은 海谷, 彛齋 친구들,, 그리고 제일 나이 어린 秋史 친구도 모두 다 산 정상에 도달하였는데, 산 속 높은 곳에 머물러 있는 구름과 짝이 되어 뒤늦게 산 정상에 도달했다는 마음을 읊었다.
구름과 친구 되어 힘이 드는 산길을 오르셨다는 서정을 노래했다.
< 미련>: 산행이 힘들었음-------------- 산행이 힘들었음(서정)
스무 해: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온 20 여년의 세월을 말함. 꼭 20 년이 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모든 것에 강건해야 할 이 나이에 이리도 힘든 산행을 했다는 것이다.
육체도 약해지고 따라서 정신도 약해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속에 느끼는 내면적 부끄러움의 토로이다. 저 말 없는 북한산은 나를 내려다보고 그리도 힘이 들었느냐 하면서 꾸지람이라도 하는 듯 해 나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마음의 표현이다. 오늘 산을 오른 것은 진정으로 나의 잘못이었구나 하는 후회 감을 피력하였다.
還笑: 도리어 우습다. 出山非: 산행이 잘못되었다는 자기 판단이다.
오늘 함께 산행을 같이 하였던 분들에게 무척이나 육체적으로 힘이 드는 북한산을 오른 자기를 보여 준 것에 서 오는 깊은 후회와 자책감을 담고 있다. 의지의 여린 모습의 성격도 담겨 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으시고 북한산 저 정상을 다녀오셨다는 것이다. 고행길 속에도 포기하지 않은 굳센 의지와 정열을 읽을 수 있었다.
이 시는 연행시의 성격으로 그 다음에 절구 한 편과 율시 한 편이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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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노트】
北漢山 유람을 함께 하셨던 그 분들은
해곡海谷‧추사秋史‧이재彛齋‧김조石閒
海谷이 기연(李紀淵)[1783(정조7)∼1858(철종 9)] 彛齋 권 돈인(權敦仁)[1783(정조7)~1859(철종 10)]은 黃山 김 유근(金逌根)[1785(정조9)~1840(헌종6)]보다 두 살이 더 많고, 秋史 김 정희(金正喜)[1786(정조10)~1856철종7)] 는 황산보다는 한 살 아래다.
石閒 김 조 (金照)< 자:명원(明遠),호 석한(石閒) 석치(石癡)>
[(1754(영조30)-1825(순조25)] 는 32 년이 앞선 대 선배이다. 풍고(楓皐) 김 조순(金祖淳) [1765(영조 41)~ 1832(순조 32)]보다도 12 년이 연장이다. 그리고 石閒 은 자하(紫霞) 신위(申緯)[1769(영조 45)∼1845(헌종11)] ,
담정(潭庭) 김 려(金鑢)[1766(영조 42)~ 1822(순조 22)] 시에도 등장하고 있다.
石閒의 생몰연대는 유일하게 계명대학교 한문교육과 김 명진교수 님이 쓰신
[황산유고 고전과 해석 제2집<287-293쪽>]이라는 학술논문 291쪽 아래 주(註)에 선배인 金照(1754-1825)라고 생몰 연대만이 나와 있을 뿐이다.
石閒 이라는 분과 교유했던 분은 자하 신위, 담정 김려 그리고 황산의 생부이신 풍고 김조순 등이다. 풍고의 시 속에는 서른 번 이상 등장되고 있고 황산의 초고집에도 20편 이상의 시가 보인다. 그런데 구체적인 내력이나 관향은 인터넷에는 어디에도 없다. 아마 전문으로 연구하시는 학자님들만 알고 계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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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海谷 이 기연(紀淵) [1783(정조7)∼1858(철종 9)향년76세]
자는 경국(景國), 호는 해곡(海谷) 광평대군派. 대군의 14대손이며 참판 의열(義悅)의 아들이다. 우의정 지연(止淵)의 아우이다
순조 27년(1827 정해) 6월 28일(임인)
김원근(金元根)을 이조 참의, 이기연(李紀淵)을 발탁하여 한성부 좌윤
순조 33년(1833 계사 ) 11월 29일(을미)
이기연(李紀淵)을 공조 판서, 이지연(李止淵)을 우빈객(右賓客)
헌종 3년(1837 정유 ) 11월 19일(계사)
김유근(金逌根)을 예조 판서(禮曹判書), 이기연(李紀淵) 사헌부 대사헌(司憲府大司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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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rfo.co.kr/ <전주이씨 대동 종약원 인물 검색 서비스>
전주 이씨 인물을 검색하는 방법이 아주 잘 정리되어 있다. 국문으로 이름 두자만을 넣으면 아주 상세한 설명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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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秋史 김 정희(金正喜)[1786(정조 10)~1856(철종 7) 향년71세]
본관은 경주. 자는 원춘(元春), 호는 완당(阮堂)·추사(秋史)·예당(禮堂)·시암(詩庵)·과파(果坡)·노과(老果)·보담재(寶覃齋)·담연재(覃硏齋).
북학파(北學派)의 한 사람 추사체 완성. 1810년 옹 방강과 사제의 맺음.
1816년에는 북한산 비봉에 있는 석비가 진흥왕 순수비임을 밝혀냄,
1820년 동장에서 초의 스님, 김경연, 황산과 교유. 작품에 <묵죽도(墨竹圖)>, <묵란도(墨蘭圖)>, <세한도(歲寒圖)> 저서에 《완당집》, 《금석과안록》 등이 있다.
[重興寺次黃山] 완당전집 제10권에서---- 추사 작
上方明月下方燈 절위에는 밝은 달 아래는 등불이라.
法界應須不已登 법계는 모름지기 그침 없이 오르는데
鍾鼎雲林非二事 높은 관직 산림처사 두 가지 일 아닌데
名山空自與殘僧 명산엔 부질없이 늙은 중만 허락하네.
十年筇屐每同君 십년을 지팡이. 신 그대와 같이 하니
衣上留殘幾朶雲 옷 위에는 몇 떨기의 구름이 배어 있네.
吾輩果無諸漏未 우리들 모든 번뇌 정말로 없어졌나.
空山風雨只聲聞 빈산의 비바람은 오로지 성문이라.
♣<황산시>의 운을 따라 지은 시인데 아직 필자는
이런 운을 따라 지은 시를 찾지를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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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彛齋 권 돈인(權敦仁) [1783(정조 7)~1859(철종 10) 향년77세]
본관은 안동. 자는 경희(景羲), 호는 이재(彛齋)·과지초당노인(瓜地草堂老人)·
번상촌장(樊上村庄). 시호는 문헌(文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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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산과 이재의 지란지교(芝蘭之交).금란지교(金蘭之交)를 볼 수 있는 한 편의 짧은 산문이다.
銘彛齋硯 이재의 벼루에 대한 명
一. 伴螢雪 冝 子孫 我 今 銘之 不可 諼
1.형설을 짝하여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자손을 훌륭하게 만드는 법 지금 내가 이렇게 명을 지었으니 그 의미를 잊지 말 것이며< 황산유고 문집에 실림>
http://blog.daum.net/0113508344/4720116 : 추읍산 블로그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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代 彛齋 銘 이재의 벼루에 새긴 명을 대신하다.
二. 喩斷金 矧玆
三. 仁遺我雲仍 示我不貧
2. 비유하자면 쇠붙이도 끊을 만큼 우정이 대단히 깊기 때문이다.
3. 더구나 이것은 나의 후손들에게 어짊을 남겨주고
내가 가난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기 때문이다.
<황산유고 초고 본>에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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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김 조 (金照)[(1754(영조30)-1825(순조25)]
< 자:명원(明遠),호 석한(石閒) 석치(石癡)>
☞ 풍고 김조순이 石閒을 애도한 시이다.
<풍고집>에는 30 여 편이나 된다. 전문가님들의 훌륭한 학술논문이 없음이 크게 아쉽다.
哭 石閒 --- 풍고 김조순
貍首斑然奈若何。 삵 머리 알록달록 그런 관목 어찌하랴.
心知慟哭不如歌。 마음 알아 슬퍼도 노래만 못하구나.
一回灑淚柴門出。 사립문을 나와서 한 차례 울고 나니
怊悵寒溪有逝波。 슬프다 찬 냇가에 물결이 흘러가네.
☞ 양평 친환경농업 박물관 발행의 <황산유고> 집에는 石閒과 관련이 된 시가 한 편도 없는데 <초고집>에는 25 편이나 실려 있다.
和 金照-- 황산 김유근
昔我南來日 옛날에 나 혼자서 남으로 온 날
憐君病臥時 가엽게도 당신은 병이 나셨지.
何勞江上別 어찌 애써 강에서 이별했는가.
多謝數行詩 고맙게 여러 편의 시 써 주셨네.
幽思梅發處 그윽한 생각 속에 매화 꽃 피고
孤懷月上時 외로운 마음속에 달은 떠오네.
依俙千里回 어렴풋이 천리 길 되돌아보니
看取案頭詩 책상머리 놓인 시 깨달아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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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내용에는 가을이지만 사진은 겨울 정경입니다. 두 개의 절기를 만나보시기를.
http://blog.daum.net/scj8642/544 여산 신선마을
더 많은 사진을 보시려면 여기를 들어가세요.
북한산 정경이 담겨진 사진을 보내주신 여산 님께 깊은 고마움을 드립니다. 그리고 항상 건강하신 산행길이 되시기를 두 손 모아 합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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