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재(尤齋) 선생 화상찬(畫像贊)
김 창협(金昌協)
1651년(효종 2) -1708년(숙종 34)
자 仲和 호 洞陰居士, 寒碧主人, 三洲, 農巖
시호 文簡
특기사항 宋時烈, 李端相, 趙聖期의 門人.
老論 洛論의 종장
그림은 동생 金昌業<1658년(효종 9) 1721년(경종 1)
자 大有 호 稼齋, 老稼齋 >이 그린 74세의 송시열 선생
以豪傑英雄之資。이호걸영웅지자。
有戰兢臨履之功。유전긍림이지공。
斂浩氣於環堵之窄。可以塞宇宙。
염호기어환도지착。가이새우주。
任至重於一身之小。可以抗華嵩。
임지중어일신지소。가이항화숭。
進而置之巖廊。爲帝王師而不見其泰。
진이치지암랑。위제왕사이불견기태。
退而處乎丘壑。與麋鹿友而不見其窮。
퇴이처호구학。여미록우이불견기궁
巖巖乎砥柱之峙洪河。凜凜乎寒松之挺大冬。
암암호지주지치홍하。늠름호한송지정대동。
苟億世之下。觀乎此七分之貌。
구억세지하。관호차칠분지모。
尙識其爲三百年間氣之所鍾。
상식기위삼백년간기지소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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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역 : 한국고전번역원 ┃ 송기채 선생 (역) ┃ 2004
영웅호걸의 자질을 지니고서
깊은 못에 임하듯 얇은 얼음을 밟듯
전전긍긍 근신하는 공을 닦았다.
좁은 방 안에 모은 호연지기는 우주를 채울 만하고
작은 한 몸에 짊어진 막중한 짐은 화산(華山)과 숭산(嵩山)에 비길 만하였다.
조정에서 불러들여 묘당(廟堂)에 두고 제왕의 스승으로 삼았으나 거만한 기운을 찾아볼 수 없고,
물러나 초야에 처했을 때는 고라니와 사슴을 벗하였으나 궁색한 기색을 볼 수 없었다.
하수(河水)의 격류에 우뚝 선 지주(砥柱)처럼 당당하고 엄동설한에 홀로 푸른 소나무처럼 늠름하였다.
행여 억만대 이후에 이 화상을 살펴본다면 조선 삼백 년간의 정기가 한 몸에 모인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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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박물관에서 만난 송시열 선생님의 초상, 그리고 필자의 조상님의 글을 만나게 되어
큰 즐거움을 가졌다. 해석은 고전 번역원에 계신 송기채 선생님의 글을 실었다.
화제의 제목은 <우암 송선생 칠십사 세진 이라고 읽는다.>
그림의 왼쪽 글은 권상하 선생님의 글이다. 다음 기회에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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