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암 선생 화상찬
글: 權尙夏
글씨: 蔡之洪 1683(숙종 9)~ 1741(영조 17).
충북 청주.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군범(君範) 호는 봉암(鳳巖)·삼환재(三患齋)·봉계(鳳溪).강문8학사(江門八學士) 중 한 사람이며, 인물성이론(人物性異論)을 주장한 호론(湖論)을 대표하는 성리학자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군범(君範), 호는 봉암(鳳巖)·삼환재(三患齋)·봉계(鳳溪)·저서로 〈봉암집〉·〈성리관규 性理管窺〉·〈세심요결 洗心要訣〉·〈독서전보 讀書塡補〉·〈천문집 天文集〉등.
권 상하(權尙夏)
1641년(인조 19)- 1721년(경종 1)
자 致道 호 遂庵, 寒水齋, 黃江居士
본관 安東 시호 文純
특기사항 宋時烈의 適傳弟子.
嶷嶷山嶽之氣像。억억산악지기상
恢恢河海之心胸。회회하해지심흉
높고 높은 산악의 뛰어난 기상이요
넓고 넓은 하해처럼 깊숙한 마음이네.
允矣集群儒之大成。윤의집군유지대성
蔚然爲百代之師宗。울연위백대지사종
진실로 유현들을 크게 이뤄 모으시고
성대히 오랜 세월 스승으로 모셨도다.
以一言而闢聖路於將堙。
以隻手而擎天柱於旣倒。
묻혀가는 성현의 도 한 말로 여셨고,
이미 기운 도덕 기둥 한 손으로 붙드셨네.
深闈密贊。吾不知其何謨。
燕居長歎。吾不知其何抱。
깊숙한 궁궐에서
남몰래 도운 것은
그것이 무슨 계책 인가를 모르겠고
한가로이 살면서
깊이 있게 탄식한 것
그것이 무슨 포부 였는지 모르겠다.
吁嗟乎。道之大而莫能容兮。
吾將捨考亭而其誰從。
아 아! 도가 커서 받아들일 수가 없구나.
내가 앞으로 朱子를 버리고 그 누구를 따르겠나.
<寒水齋先生文集卷之二十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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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박물관 소장 전시회에서 ---------
【 백촌 노트】
嶷嶷: 嶷 산이름 의/ 산모양 억 높을 억 숙성할 억
1. 어린이가 영리한 모양 幼小聰慧貌。
2. 높이 우뚝 솟은 모양 高聳貌。
3. 도덕적으로 고상한 모양 形容道德高尚。
4. 웅장하고 성대한 모양.
위엄 있고 씩씩한 모양 形容壯盛﹑威武。
奇嶷 高嶷 嶷岌 英嶷 歧嶷 九嶷 嶒嶷 嶷如 嶷爾 嶷爽 崱嶷 哲嶷
岌嶷 嶢嶷 岐嶷 明嶷 端嶷 嵬嶷 秀嶷 嶷嶷 嶷然 淵嶷
恢恢: 恢 넓을 회
매우 광대하다 / 매우 넓고 크다 / 거대하다
形容非常廣大=深厚:天網,疏而不漏(形容作恶者一定受到惩懲罰)
天網 강한 징벌 하늘의 구멍은 굉장히 넓어서 성근 것 같지만, 죄인은 반드시 벌을 면치 못한다는 뜻.
드넓은 모양이다. 포정(庖丁)이 문혜군(文惠君)을 위해 소를 잡는데, 소 잡는 솜씨가 매우 뛰어나 문혜군을 감탄하게 하였다. 포정이 소 잡는 도(道)를 말하면서 “두께가 없는 칼을 두께가 있는 틈새에 넣으니, 널찍하여 칼날을 움직이는 데에 있어 반드시 여유가 있습니다.〔以無厚入有間 恢恢乎其於遊刃必有餘地矣〕” 하였다. 전하여 후대에는 포정의 해우(解牛)라고 하여 정사를 다스림에 업무가 많아도 잘 처리함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莊子 養生主》
心胸: 가슴속에 깊이 간직한 마음/ 도량 / 포부
河海: 강과 바다라는 뜻으로, 넓고 깊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允矣:진실하다. 마땅하고 미쁜 모양. 진실로. 참으로.
群儒: 유학에 정통하고 어질며 총명한 선비.
蔚然: 무성한 모양 성대한 모양 무성하다
師宗: 스승으로 받들어 모심. 또는 그 스승
宗師: 모든 사람이 존경하는 스승
百代: 오랫동안 이어 내려오는 여러 세대
聖路: 성현의 길. 성인의 도. 성인으로 가는 길
天柱: 하늘 받칠 기둥 하늘을 괴고 있다는 상상의 기둥.
세상을 이끌어 나가는 도의(道義)를 비유함
深闈: : 闈 대궐의 쪽문 위 깊은 궁궐
密贊 : 남몰래 도움.
燕居: 燕 편안 연 =安居
한가로이 거처하는 곳 하는 곳
특별히 하는 일 없이 집안에 한가하게 있음. 편하게 쉬고 있음
子之燕居에 申申如也하시며 夭夭如也러시다
공자께서 한가로이 계실 적에 그 모습은 활짝 펴시고, 온화하셨다.
<논어(論語)술이(述而)편(篇) 4 장(章)에서>
燕居 한가히 있음 =燕處 燕樂 주연을 베풀고 즐거이 놂
燕侶 부부 제비는 두 마리 씩 짝지어 살므로 이름
燕朋 흉허물 없는 벗 燕息 편안히 쉼= 燕休
燕語 제비가 지저귀는 소리 터놓고 화목하게 이야기 함
燕婉 안존하고 얌전함 날씬하고 예쁨 燕雀 제비와 참새 전하여 작은 새. 그릇이 작은 사람
燕朝 천자가 휴식하는 방 燕好 친절히 대접함
★중국어 사전에 나오는 단어들이다--------------
燕齊 燕虞 燕軷 燕鶯 燕嘉 燕狎
燕嬉 燕智 燕邯 燕賞 燕接 燕盍
燕咏 燕弓 燕公 燕魚 燕俎 燕玉
燕代 燕談 燕朝 燕脂 燕鴴 越燕
燕婢 燕媟 燕市 燕翦 燕山 燕豆
燕麥 燕舟 飲燕 游燕 燕客 燕娭
燕燕 燕好 燕昭 燕礫 燕剪 燕金
燕巾 燕言 燕谷 燕郢 燕雛 燕尾
燕髀 燕鸿 燕惰 燕享 燕禖 燕泥
吁嗟: 탄식할 우. 탄식할 차
考亭 : 주자.
소희(紹熙) 3년 임자년(1192)에 주 선생(朱先生 주자(朱子))은 처음으로 건양(建陽)의 고정(考亭)에 서당을 지었다.
주자학(朱子學)을 말한다. 고정은 주자가 평생 거처했던 곳으로, 1192년(고려 명종22) 이곳에 고정서원(考亭書院)을 짓고 학문을 강론했다. 이 때문에 주자학파를 고정학파라고도 한다. 《宋元學案》
주자(朱子)가 63세 6월에 창주정사(滄洲精舍)를 낙성하여 만년에 거처했던 곳이다. 주자의 부친인 위재(韋齋) 주송(朱松)이 생전에 이곳에 와 보고는 일기에 “고정의 계산(溪山)이 맑고 그윽하여 복거(卜居)할 만하다.”라고 적어 두었는데 주자가 그 뜻을 이어 건물을 짓고 이주한 것이다.
주자(朱子)가 63세 6월에 창주정사(滄洲精舍)를 낙성하여 만년에 거처했던 곳이다. 주자의 부친인 위재(韋齋) 주송(朱松)이 생전에 이곳에 와 보고는 일기에 “고정의 계산(溪山)이 맑고 그윽하여 복거(卜居)할 만하다.”라고 적어 두었는데 주자가 그 뜻을 이어 건물을 짓고 이주한 것이다.
주 부자(朱夫子)의 고정(考亭)의 뜻 : 고정은 복건성(福建省) 건양(建陽) 서남에 있는 정자이다. 오대(五代) 남당(南唐) 때 황자릉(黃子稜)이 이곳에 정자를 지어 죽은 아버지의 무덤을 멀리 바라보며 ‘망고정(望考亭)’이라 이름하고 ‘고정’이라고 간칭(簡稱)하였다. 뒤에 송나라 주희(朱熹)(1130年-1200年)가 만년에 이곳에 거처하며 창주정사(滄洲精舍)를 지었는데, 이종(理宗)이 ‘고정서원(考亭書院)’이라는 명칭을 하사하여 ‘고정’이 주희를 지칭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여기서는 망고정의 의미, 즉 죽은 아버지를 멀리 바라본다는 뜻을 취한 것으로, 주 부자는 고정을 부각하기 위해 의미 없이 붙인 말[주D-003]창주정사(滄洲精舍) : 고정(考亭) 곁에 있던, 주희가 강학하던 죽림정사(竹林精舍)인데, 뒤에 창주정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주희가 1194년에 창주정사를 짓고서 공자에게 석채례(釋菜禮)를 올렸는데, 안자(顔子)ㆍ증자(曾子)ㆍ자사(子思)ㆍ맹자(孟子)를 배향하고, 주돈이(周敦頤)ㆍ정호(程顥)ㆍ정이(程頤)ㆍ소옹(邵雍)ㆍ장재(張載)ㆍ사마광(司馬光)ㆍ이동(李侗) 등을 종사(從祀)하였다. 《朱子年譜》
참고
조선왕조 실록의 기록 ---------------------
肅宗 21 15年(1689 己巳 / 청 강희(康熙) 28年) 6月 3日(戊辰)
송시열의 졸기 에서
權尙夏贊其畫像曰: “嶷嶷山岳之氣像, 恢恢河漢之心胸。 允矣集群儒之大成, 蔚然爲百世之師宗。 以一身而闢聖路於將堙, 以隻手而擎天柱於旣倒, 深闈密贊, 吾不知其何謨。 燕居長嘆, 吾不知其何抱。 吁嗟乎! 道之大而莫能容兮, 吾將捨考亭而其誰從?”
권상하가 그 화상(畫像)에 찬(贊)하기를,
“높고 높은 산악의 기상이요 넓고 넓은 하한(河漢) : <하늘의 내. 은하(銀河)를 말함.> 의 마음이라. 미쁘도다. 뭇 선비의 학문을 모은 대성(大成)이오, 울연(蔚然)하게도 백세(百世)의 사종(師宗)이 되었도다. 한 몸으로 성인(聖人)의 길이 장차 막히려는 것을 열었고, 한 손으로 하늘의 기둥이 이미 쓰러지는 것을 받들었도다. 깊은 궁중에서 비밀히 협찬한 것은, 내가 그 무슨 계책임을 알지 못하겠고, 한가로이 있으면서 깊이 탄식하는 것은, 내가 그 무슨 포부임을 알지 못하겠도다. 아아, 도(道)가 커서 용납할 수 없으니, 내가 장차 고정(考亭)( =주자) 을 버리고 누구를 따르겠는가?” < 조선왕조 실록 인용>
▶ 고전 번역원의 해석 은----------------------------
우암 선생(尤菴先生)의 화상(畫像)에 찬함
산악같이 높은 기상이요 / 嶷嶷山嶽之氣像
하해같이 넓은 심흉이로다 / 恢恢河海之心胷
진실로 뭇 유현을 집대성하여 / 允矣集羣儒之大成
성대히 백 대의 종사가 되시어 / 蔚然爲百代之師宗
말 한마디로 막혀가는 성로를 열어 놓았고 / 以一言而闢聖路於將堙
한쪽 손으로 넘어진 천주를 붙들어 놓았네 / 以隻手而擎天柱於旣倒
깊은 궁궐서 비밀히 찬조한 것은 / 深闈密贊
무슨 계책이었는지 나는 모르겠고 / 吾不知其何謨
평상시에 길이 탄식한 것은 / 燕居長歎
무슨 회포였는지 나는 모르겠다 / 吾不知其何抱
아 도가 커서 용납할 수 없어라 / 吁嗟乎道之大而莫能容兮
내가 주자를 버리고 누구를 따르리요 / 吾將捨考亭而其誰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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