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호산서 (玉壺山墅)
현재의 흔적들
흘러간 역사의 아쉬움.
내 조상님의 흔적이 묻어 있던 그 옥호정 (玉壺亭) 자리엔
< 옥호정 : 김조순 (金祖淳1765-1831. 領敦寧. 奎章閣 檢校提學 )의 별서>
오랜 역사의 풍화 속에서도 꿋꿋하게 그 자리를 지켜온 느티나무들이
스며오는 입춘의 하얀 입김 속에서도 하늘 향해 검은 가지 길게 뻗어 있었고, 분명 옥호정 (玉壺亭)의 땅이었을 그 자리 그 골목길엔 시멘트 냄새로 포장되었지만 졸졸 흐르는 샘물소리가 우물가에서 들리고 있었다.
정조 임금이 샘물을 마셨다는 기록이 보였다.
운용대 (雲龍臺) 라는 글씨가 새겨진 암각의 바위 하나가 집의 담장처럼 길게 누워 있었고, 중턱쯤 비탈진 산 숲에는 울창한 노송들이 서 있었고, 그 아래 기천석 (祈天石), 강일암 (康日庵), 서월당 (徐月堂) 의 글씨가 음각으로새겨진 암각이 있었다. 글씨에 새겨진 함풍 (咸豐) 3 년으로 보아 철종시대에 세워 놓은 바위 같아 보였다.
고 (故) 이병도 (李丙燾) 선생께서 소장하고 있던 옥호정도 (玉壺亭圖) 그림
< 길이 1m 50cm, 폭 2m 80cm >이 1960 년 10 월 한국서지학회에 소개된 일이 있었고, 대부분 말하기를 옥호정의 조영 (造營)을 1815 년경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동성교여집 (東省校餘集)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음을 볼 때에
이 옥호정은 그 보다도 먼저 장생으로부터 사들여 별장으로 수축하고 여가를 그 곳에서 즐긴 듯하다.
◂옥호는 본래 성이 장이라는 사람이 살던 집으로 갑자년 ( 1804 년 )에 내가 장생에게 사겠다고 청원했더니 장생이 허락하여 드디어 옮겨진 것이다.
<玉壺本姓張人所居 甲子余從張生請買 張生許之 遂移去>
삼청동 동쪽 골짜기 칠보사 사찰 근처엔 옥호정 배경의 일부였던 흔적들이 이제는 변하는 세월의 흐름 속에 점점 희미해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가고 있음에 삼청동의 발걸음이 오늘도 유난히 무거웠다.
느티나무를 찍고 있는 내 모습을 지붕 꼭대기에서 개 한 마리가 골짜기를 울리고 있었다.
작은 흔적 하나로도 내 조상의 숨결이 깃들어 있는 그 땅을 밟고 찾아간 그 희열이 봄의 은은한 향기를 맛보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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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임금도 마셨다는 우물. 장대석이 위로 보임.
기천석. 강일암. 서월당의 암각
운용대가 있는 골목길의 모습
칠보사 경내의 느티나무 모습
칠보사 아랫쪽 교회 마당의 느티나무
칠보사 주차창의 느티나무
지붕에 서서 짖어대는 흰 개 한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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