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한담/수상

삼청동 ( 三淸洞 ) 칠보사 (七寶寺)엔 한글 주련이

백촌거사 2008. 1. 11. 17:43

 

 

 

 

 

 

 

 

 

 

 

 

 

   삼청동 ( 三淸洞 )

 

 

 

   칠보사 (七寶寺)엔 한글 주련이

 

 

 

 

 

 

북촌 골 서울 삼청동은 옛 한양 도성 안에서 제일 경치 좋은 곳으로 꼽혔다고 한다.

 

 

삼청동의 지명은 도교적인 분위기를 풍겨주던 곳으로 많은 시인 묵객들이 풍광을 즐

 

기던 곳이라고 한다. 태청(太淸), 상청(上淸), 옥청(玉淸)의 도교 3위를 모신 삼청전

 

(三淸殿)이라는 곳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며, 산 맑고(山淸) 물도 맑으며(水淸) 그래

 

서 사람의 인심 또한 맑고 좋다(人淸)는 뜻의 삼청(三淸)이 되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많은 명사(名士)들이 이곳을 찾아와 아름다운 풍광을 시로 읊은 것이 참 많다.

 

1.이재(李栽) 1657년(효종 8) - 1730년(영조 6) 자: 유재(幼材)아호:

 

                       밀암(密菴),본관: 재령(載寧)

同諸友遊三淸洞 (동제우유삼청동)

여러 친구들과 삼청동에서 노닐며 -----------------------------

絶勝三淸洞裏天。 절승삼청동리천 뛰어난 삼청 하늘 속 골짜기여

松林寂寂水涓涓。 송림적적수연연 소나무 숲 고요하고 물 졸졸 흐르네.

誰云出郭少塵事。 수운출곽소진사 속세 번뇌 적다고 누가 나가 일렀나.

只此風流非世緣。 지차풍류비세연 다만 이 풍류 세속 인연 아닐세.

< 密菴先生文集卷之一에서 >---------------------------------------------------

 

 

2. 이달(李達) 1539년경(중종 34) 1610년경(광해군 2) 

        자 : 익지(益之) 아호: 손곡(蓀谷), 서담(西潭), 본관 신평(新平)

    최경창 (崔慶昌), 백광훈(白光勳)과 교유함.

 

遊三淸洞  유삼청동

 

삼청동에서 노닐며 -----------------------

 

北市連街路。 북시연가로 북촌 시장 큰 거리로 이어졌고

 

秋林近郭山。 추림근곽산 울창한 가을 숲 성곽을 뒤덮었네

 

三淸留寶殿。 삼청유보전 삼청은 대궐 모습 그대로이고,

 

一磬閉雲關。 일경폐운관 종소리 한 번에 궐문이 닫히네.

 

水落寒巖下。 수락한엄하 냇물 흘러 찬 바위에 떨어지고

 

螢飛露草間。 형비노초간 이슬 젖은 풀숲엔 반딧불 날아드네.

 

悠然忘世慮。 유연망세려 한가로움에 온갖 근심 잊고서

 

 

夜久不知還。 야구부지환 밤새도록 돌아감을 모르더라

                                                      < 五言律蓀谷詩集卷之三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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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관명(李觀命)1661년(현종 2) 1733년(영조 9)

          자: 자빈子賓  아호 병산屛山

           본관 전주全州(密城君派) 시호 문정文靖 대사헌. 형조판서.

 

三淸洞 삼청동 ------------------------------

杖策尋幽逕。장책심유경 지팡이 짚고 오솔길 찾아

登高覺爽然。등고각상연 산에 오르니 상쾌함 깨닫네

細泉流太古。세천류태고 잔잔한 시냇물 태고로 흐르고

蒼壁護千年。창벽호천년 푸른 산 벽은 천년을 지켜왔네

萬壑秋聲裏。만학추성리 수많은 산골짝 가을소리 퍼지고

孤鴻暮靄邊。고홍모애변 외로운 기러기 저물녘 안개 속 나르네.

披衣閒藉草。피의한적초 옷 벗고 풀밭에 한가로이 앉으니

乘興却忘旋。승흥각망선 흥겨움에 빠져 돌아갈 길 잊는구나. < 屛山集卷之一 其 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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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님들의 옛 숨결이 흘러 넘치던 삼청동 골짜기였기에 그 흔적이라도 더듬어 보려고 삼청동을 찾았다.

옥호정(玉壺亭)이라는 별서가 있던 곳(김조순金祖淳 1765(영조 41)~1832(순조 32). 아

 

호:풍고(楓皐) 영안부원군(永安府院君) 시호: 충문(忠文) ) 은 그 흔적 찾을 길 없어 큰 애태

 

움이었고, 백련봉 白蓮峰 아래 백련사 白蓮社라는 집 터 자리가

 

(김유근 (金 유 根 (卣+辶)1785(정조 9)∼ 1840(헌종 6) 자 : 경선(景先), 아호 :황산(黃山) 시호 : 문정(文貞))

   한국 교육 평가원 안에 그 표적이 있다고 하여 찾아갔으나 오늘 그 곳엔 17 대 대통령 당선인의 인수위원회 사무실로 쓰임으로 출입을 통제하는 바람에 그냥 아무런 소득이 없이 삼청동을 물러 나오고 말았다. 칠보사(七寶寺) 라는 푯말을 따라 그 곳에 찾아가

 

다른 사찰에서는 볼 수가 없는 법당의 한글 주련 (柱聯)을 읽으며 삼청동 골짜기에서 작은

 

불심 하나를 얻고 왔다. 정신적으로 얻은 더 없는 소득이었다.

 

여느 사찰에서는 볼 수가 있는 번듯한 일주문도 하나 없었고, 건물이라곤 대웅전 하나와 오래된 느티나

 

무 옆으로 종각 하나와 요사 채 2 개동뿐이었다.

 

 

 

대웅전이라는 말은 <큰 법당>, 여섯 개의 기둥에 써 붙인 주련도 궁정체로 쓰인 한글 서체였다.

 

        둥글고 가득찬 지혜의 해

 

         캄캄한 번뇌 없애버리고

 

        온갖 것 두루두루 비치며

 

        모든 중생들 안락케하는

 

         여래의 한량없는 그 모습

 

         어쩌다 이 세상 오시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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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혜반야(prajñā) 미혹을 절멸하고 보리 菩提를 성취하는 일

 

번뇌煩惱, (klesa)불교에서 미혹 (迷惑)을끊고 부처의 진정한깨달음을 얻는 힘.

 

중생衆生(jantu) 부처의 구제 대상이 되는 인간 및 그 밖의 일체의 생물.

 

여래如來, (Tathagata)부처의 여러 칭호 가운데 하나이자 역사상 석가모니가 자신을 가리킬 때 가장 자

 

주 사용한 칭호. 모든 사람에게 내면적으로 갖추어져 있는 본질인 불성(佛性)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되

 

었다. 즉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게 하는 진여(眞如 tathata)와 같은 의미로 쓰인다.

 

 

 

 

주련 글씨는 이 절 조실이며 조계종 원로이셨던 석주(昔珠) 스님

                     < 1909 년 -2004.11.14음10.3 96세. 법랍 81세 입적.

                            진주 강씨. 26 세 啓中. 법명. 正一>

쓰신 글이라고 한다. 한글 사랑에도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계시던 분이었다고 생각을 하였다. 원래 이 칠

 

보사는 삼각사 三覺寺라고 했는데 만해 스님의 유일한 제자이신

 

춘성(春城)선사(1891∼1977)님께서 <속명 창림. 법랍 74 세 평창 이씨.> 1932 년 창건

 

39 년 광주군 성부산에 있던 봉국사 이름을 이전하여 세운 절이라고 한다.

 

 

<< 태어남은 죽음의 시작이요, 번성함은 쇠퇴함의 시작이다. 영광은 치욕의 징

 

조이고, 소득은 상실의 원인이기도 하다. 따라서 나면 반드시 죽게 되고, 성하

 

면 반드시 쇠하게 되고, 영화로우면 반드시 욕됨으로 끝나고, 얻으면 반드시 잃

 

게 되고 만다. 이것은 세상의 변함없는 이치로서, 어리석은 이나 지혜로운 이나

 

모두 이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영화로울 때 치욕이

 

닥칠 것을 알지 못하고, 왕성할 때 그만둘 줄 알지 못하고, 名利만 탐할 뿐 피할

 

줄 알지 못하고, 얻을 것만 생각하고 잃을 것을 걱정하지 않으니, 무슨 까닭인

 

지 알 수 없다.>> 라고 통탄하셨다는 석주 대 선사님의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http://blog.naver.com/horraby/60032440242에서 스크랩 인용.

 

 

아늑하고 정적스러운 마음으로 칠보사를 나와 11 번 마을 버스를 타고 광화문까지 나왔다.

 

잠시 머물었던 삼청동 칠보사에서의 잔잔한 여운이 겨울 하늘을 더욱 포근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