壺亭 호정 -------------------------
옥호정
풍고(楓皐) 김조순(金祖淳)
1765년(영조 41)-1832년(순조 32)
自愛靑山宅 자애청산댁/ 스스로 청산 집 사랑함이어라.
何煩綠野堂 하야녹야당/ 어찌 번거로이 녹야당에 비기랴.
烟巒千古色 연만천고색 /안개 가득 산봉우리 천고 색이고
雲峽四時凉 운협사시량 /구름 골짜기 계절마다 맑구나.
石徑林楓合 석경임풍합/ 단풍나무 숲 돌길이 어울리고
松門澗水長 송문간수장 /솔문 앞 시냇물 길게 흐르네.
衰疴無外事 쇠아무외사 /늙고 병드니 하는 일 없구나.
終日淨書香 종일정서향 /온종일 책속 향기 깨끗하구나.
<풍고집 2에서>
한자
煩 번거로울 번 烟 연기 연 巒 뫼 만 峽 골짜기 협 凉 서늘할 량
徑 지름길 경㵎 시내 간 疴 병 아 淨 깨끗할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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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애청산댁 >-- 옥호정에서 스스로 자연을 즐기는 지은이의 성품
◄<綠野堂>녹야당 --당(唐) 나라 재상 배도(裴度)가 녹야당이라는 별장을 지어 놓고 백거이(白居易)ㆍ유우석(劉禹錫) 등과 시주(詩酒)를 즐겼던 고사를 생각하며 녹야당에 비길 만 하겠는가 하면서 필자의 겸손함이 반영.
◄<衰疴 쇠아>-- 늙고 병이 듦.
◄<書香서향>---학문을 하는 기풍
감상이해 ------------------------------------------------------------------------
지은이의 말년 쯤 옥호정에 머물면서 옥호정의 자연 풍광을 담아낸 시다. 늙어가고, 병이 든 속에서도 옥호정에서 풍겨오는 서향의 그윽한 향기에 심신의 한거 (閑居)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산봉우리에 안개 가득하고, 계절마다 골짜기 구름 두둥실, 단풍나무 숲 한적 한 오솔길, 솔나무 울창한 속에서 졸졸 흘러가는 시냇물 소리 이 모두가 선경인 듯한 풍경으로 그려져 있다.
▶ 필자의 변---------------------------------------------------------
옥호정에 대한 그림이 소개된 것은 1960 년대이고, 이 그림은 지금도 <고 이병도 씨 댁>에 보관되고 있다고 한다. 아래 옥호정 배치에 대한 글은 <한국 전통 조경> 이라는 책을 쓰신 <정 재훈 교수 님>의 글을 읽고 발췌한 것이다. 사진은 출판사의 사전 허락을 받았고, <정재훈 교수님>으로부터 글 내용을 인용하여도 좋다는 전화를 드리고 옮긴 것이다.
< 한국전통조경. 조경 출판사 278 쪽-285 쪽 >의 내용을 크게 참고하였다. 출판사의 남기준 이라는 분, 그리고 정 재훈 교수님께 전화를 드렸을 때 흔쾌히 꼭 출전을 밝혀 달라는 말씀으로 허락을 해 주신 점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 앞으로 이 블로그에는 풍고 김조순 조상님과 황산 김유근 조상님의< 옥호정 >에 대한 시들을 풀이해 올릴 것이다.
그림으로라도 내 조상님의 삶의 터전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어 끝없는 기쁨뿐이다. 모든 실상들이 다 사라져 버린 것에서 오는 후손의 가슴 아픈 부끄러움도 가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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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호정의 그림 < 한국 전통 조경. 정재훈 교수 님 >에서
■옥호정 (玉壺亭)의 배치 --------------
조선 시대 사대부 민가의 높은 격조를 보여주는 구성과 기법을 지니고 있다.
일종의 별서로 보기도 한다. 당시의 세도가였던 풍고 김조순의 문예와 풍류를 즐기던 조원의 공간이었다.
1. 대문 밖의 바깥마당 ----- 하인들의 생활공간
▶ 북악산 계곡의 맑은 계류가 흐르고 있다.
바깥을 흐르고 있는 명당수 위로 판석교가 설치되어 이 다리를 건너서
집안으로 들어갔다. 수양버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
바깥 마당에는 3 채의 집이 배치되어 있고, 개울가 북쪽 구석에 井이란 글자와 샘.
조경을 한 흔적은 없고, 맑은 계류와 초가집을 배치 자연스럽고 소박한 인상을 줌.
◄ 3 채의 집 구도
< ㄱ >자형의 남향 초가집 -- 下人廳 글자. 하인들 공간.
< ㄴ >자형의 초가집 -- 남향. 大門글자. 대문채. 헛간이 달림.
< ㅡ >자형 동향 초가집 --3 칸. 庫. 廳. 房의 글자가 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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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대문 안의 사랑마당 ---- 남주인의 생활 공간
▶ 초가의 대문채로 들어감- 축대 밑으로 낮은 네모진 마당
축대 --사랑마당으로 오르는 돌계단-- 사랑 앞마당에 이름
사랑마당 입구 -- 생 울타리. 취병 翠屛 글자
오른쪽 마당 -- 느티나무 한 그루. 槐木 글자-- 정심수로 심은 나무
느티나무 아래 -- 입이 넓은 독 하나.
▶ 사랑채--- 기와집. 3 칸 대청. 1 칸 방. 玉壺山房 편액
▶ 사랑마당---앞마당-- 화목이 없고 밝게 빈 공간
남쪽 사랑마당 -- 파초, 모란, 작약, 난초 등의 화초 등이 한 단위 로 심기도 하고, 마당가에도 심고, 둥근 수조에 수련을 심었다.
10 여개의 화분에는 분재.
화단 남쪽 -- 길쭉한 빈 마당. 동쪽에 노송 한 그루.
마당 남쪽 -- 등가대 설치. 포도를 심음. 葡萄架 글자
사랑마당 동남쪽 -- 外厠 글자. 한 칸의 방형의 초가- 남자 화장실
사랑마당 서쪽 -- 산자락으로 오르는 길. 닭집.
산자락 --- 자연석의 3 단의 단 설치. 花階 설치-- 작약의 꽃.
사랑마당은 남자 주인과 손님들이 한담하는 공간의 기능이고, 주인이 직접 화목을 길러보는 공간이며, 소요하면서 완상하는 공간이었다. 주인공의 취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공간인 듯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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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중문 안의 안채
안채 마당 및 후원 --- 여주인의 생활공간
▶ 사랑마당에서 작은 중문을 통해 안채로 들어감.
안채 ---⨅ 형 기와집. 동향- 큰방과 대청
남향 - 부엌, 작은 방, 庫房
안채마당 - 빈 공간. 화목과 기물이 없음.
동쪽에 담장 문-- 동쪽마당-- 담안에 장고방. 醬庫 글자.
안채 뒷마당 -- 토담 담장. 內厠-- 한 칸 방형의 초가로 여자 화장실
▶ 안채 후원 -- 뒷마당 서쪽 산자락에 위치. 자연석의 6 단 구성. 돌계단 길.
6 개의 단에는 화목이 없고, 그 위 산자락에 울창한 수림조성.
돌계단 입구 -- 한 칸의 草亭--석대 위. 竹亭이란 글씨
죽정은 사방이 열려진 정자. 여름철의 완상 공간.
초정 (草亭) -- 기둥과 난간 모두가 대나무. 지붕위-- 절병통.
수림 위쪽 담 안에 또 하나의 초정---山半樓라는 편액.- 4 분 합문 설치-기둥은 方柱 사용.--산자락 위에는 암반에 늙은 노송림.
산반루의 초정은 봄 가을철의 은밀한 대화의 공간.
산반루 초정에 남으로 토담 설치-- 남쪽의 옥호동천과 격리.-- 토담에 초가를 이 은 작은 협문이 담장에 설치-- 왕래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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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옥호동천 (玉壺洞天)의 별원(別苑)
옥으로 만든 작은 병처럼 신선의 세계. 현실을 초월하여 초연한 자아를 찾고, 맑은 심성을 보양하여 선인의 세계에 몰입하고자 하는 구상으로 이루어진 공간이다.
▶ 서쪽사랑마당- 괴석들을 군집으로 배치한 산길로 오름
붉은 글씨로 玉壺洞天이라 새김.---바위 아래로 나무홈의 석간수--지당
지당속에-- 장방형 판석--지당 옆 암벽에 惠生泉 글씨- 그 앞으로 둥근 샘.
▶ 옥호동천 바위 남쪽 암벽--乙亥壁. 山光如邃古石氣下長年이란 붉은 글씨.
<<을해벽. 산광여수 고석기하장년 邃깊을 수--을해-순조 15 년 (1815 년). 산 빛은 태고와 같고, 돌 기운은 장수함직하다. >>
▶ 암벽 앞 - 다락과 같은 정면 2 칸, 측면 1 칸의 초정.-- 그 앞으로 느티나무 거 목--나무 밑으로 石床이 있고, 石床이란 글씨가 보임.
▶ 초정의 북쪽 마당 --- 2 개의 장방형 수조.---남쪽엔 단풍나무 원림.
丹楓臺 글씨가 보임
▶ 단풍대 지나 돌계단 아래--장방형의 地堂--- 연꽃 심지 않고 옥호동천의 선경 과 하늘이 물속에 그림자로 잠김.
▶지당 북쪽 물 속 --기와의 정자. 사방으로 4 분합의 문 설치.
정자에 疊雲亭 편액. 지당 남쪽 호안-- 돌계단의 보도 설치.- 石盆 위 괴석 설치.
지당 동북쪽 모퉁이- 단을 조성. 오미자나무. 받치는 架構 설치. 五味子架 글씨.
-- 오미자가 북쪽 단- 盤松 한 그루. 가지를 기둥으� 받침.盤松글씨 보임.
▶ 지당 서쪽 산자락 - 노송들의 원림 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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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일관석(日觀石)의 산봉우리 ---자연 송림.
세속적인 세계와는 유리되어 있는 순수한 자연의 공간이다.
원경산천을 관상하며 산책을 하기도 하고 일출 일몰의 장관을 탐승하기도 한 공간이었다. 순수한 자연만의 공간을 배치함으로써 인공적인 조원공간과 조화가 되어 더욱 더 유현미를 더 하고 있다. <일관석>이란 해를 맞이하는 바위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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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순의 6 대 손
김 철동 (金澈東)님 (1944. 甲申生 )의 조상 이야기
15 세 김상헌 ( 문정공 )-16세 김광찬 -17세 김수항 --18세 김창집 -19세 김제겸
20 세 달행 --21 세 이기 --22 세 용순 -23 세 유근 - 24 세 병주 -25세 정규
26 세 익진 -27세 조한 -28 세 철동
대통령 경호실이 2007,7,15일 펴낸 책, 청와대와 주변 역사. 문화유산에서 저희 안동 김씨
가문을 장동김씨로 소개하면서 사진첨부 깊이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일반인이 접근하기 쉽지 않은 청와대 인근지역, 그러나 역사적 중요성에 의해
서도 제일가는 지역인 것을 감안하여 대통령경호실에서 나서 학습 동아리 팀을 만들어 잊혀
져가는 청와대 주변의 역사, 문화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이해하기 쉽도록 아름다운 책으로
내놓았습니다.
저희 안동김씨 가문으로는 청와대 인근지역에 사셨던 서윤공 김번 집터,청음 김상헌과 손자
김수항 집터, 선원 김상용집 터,영안부원군 김조순 살던 집 옥호정터, 그리고 그 큰아들 황
산 김유근의 백련사터,김석진집터,그리고 김흥근 별장이였으나 흥선대원군이 뺐었다는 석파
정(삼계동 정자),문곡 김수항의 후손들이 사셨다는 六靑軒,정자인淸暉閣,그리고 김옥균 집터
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 책속에 소개된 분들과 청와대 인근지역이 아니라서 소개되지 않은 저희가문의 휼륭하신
조상님들의 발자취를 추적하고 조명하는 것도 뜻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우선 저의 직계인 5대조 黃山 金유根께서 사시던 집인 白蓮社,그리고 황산 할아버지의
生父이신 永安府院君 집터인 玉壺亭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알고 있었던 내용과 그리고 위 책 청와대와 주변 .역사문화유산을 근거로 씁니다.
玉壺亭 이야기 ------------------
순조15년(1815년) 영안부원군의 집인 이곳을 지었다고 합니다.
서울시 종로구 삼청동133번지 일대인 이곳을 옥호정도에서 보면 아름다운 산록에 둘러싸여
있고 넓은 후원, 아름다운 정자각, 텃밭과 벌통, 울창한 松林,초가지붕의 하인들이 살았던
집으로 보이는 곳과 행랑채, 그리고 기와지붕으로 그린 본체가 보입니다.
자세히 보면 본체는 넓은 집터에 비하면 의외로 작아 보입니다. 일반인의 역사인식과는 달
리 영안부원군께서는 검소하고 너그러웠으며 많은 어려운 사람들에게 가진 것을 베풀었다고
합니다. 세도정치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할아버지의 본래의 모습까지 흐리지 말아야 할 것
입니다.
매천야록을 쓴 황현도 훌륭한 분이라고 하였고 조선왕조실록 등 모든 역사는 정조
의 유언에 의해 순조대왕을 잘보필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사가들은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당파에 몰리지 않으려는 그의 노력과 세도의 풍을 형성하
지 않으려는 노력이 있었는데도 그를 둘러싼 척족세력이 후세에 안동 김씨 세도정치의 기반
을 조성하는 결과가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사실 1차 안동김씨 세도정치 시기인 1800~1838년은(순조대왕~헌종4년) 일부 시행착오는
있었겠지만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그런 부정적인 시기는 아니었습니다.
진정한 세도정치의 피해가 나타난 것은 2차 안동김씨 시대라고 사가들은 쓰고 있습니다.
전혀 생각도 못하셨겠지요. 그러나 세도정치라는 부정적 의미의 단어가 할아버지로부터 비
롯되었음은 가슴 아픈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 후손들은 저부터 정직하고 나라
를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맡은바 책임과 주어진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다짐 합니다.한국금석문 종합영상정보시스템의 김조순 신도비 해석문에 의하면 중년
에 옥호에 작은 집을 짓고 때때로 쉬며 목욕하며 지냈다.---공은 만년에는 더욱 세상일을
물리치고 삼청동 소무속헌에서 한가하게 소일하며 지냈다.1832년(순조32년)4월기묘일 세상
을 마치었다.
이 모든 기록은 공께서 삼청동133번지 옥호정(또는 옥호산방)에서 순조15년 이후 일생을
사셨음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둘째 아들이 대를 이어가게 되는 취정 金元根과 함
께 사셨을 것입니다. 큰아들 黃山 金유根은 바로 이웃인 삼청동25 번지의 백련사로
보내시고, 그리고 셋째이며 막내아들 하옥 김좌근은 무슨 이유로 언제부터 인지는 모르겠으
나 당시 교동으로 불렸던 종로구 경운동 66번지로 나가 사셨던 것입니다. 이곳 삼청동의 옥
호정(또는 옥호산방)에는 玉壺山房의 현액, 정자각으로 보이는 竹亭, 山半樓, 疊雲亭,그리고
산기슭과 석벽에 惠生泉, 玉壺洞天,乙亥壁,山光如邃古 石氣可長年의 각자가 있고 뒷동산 정
상에는 日觀石이라는 바위에 새긴 각자가 보입니다.東向으로 지여진 옥호정 뒷산 정상에 있
는 일관석 위에 서서 영안부원군 께서는 새벽 일찍 일어나셔서 해맞이를 하시고 정국을 구
상 하셨을 것 입니다.그리고 일관석을 새긴 각자는 대통령 경호실 학술 동아리팀이 발견 지
금도 옛날 그 자리로 추정되는 그곳에 유일하게 남아 당시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당시 귀양
에서 풀려나신 다산 정약용도 이곳을 오셨다는 군요. <풍고집>을 비롯하여 2007년 세상에
처음 밝혀지게 된 황산 김유근의 문집을 통해서 이곳 옥호정의 모습이 아름답게 펼쳐질 것
을 기대합니다. 옥호정도의 아름다운 그림은 인터넷 검색하시면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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