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 교수님 교실/정민 교수 漢詩의 멋

지족(知足)---을지문덕(乙支文德)의與隋將于仲文시

백촌거사 2008. 12. 17. 14:31

정민 교수님이 쓴 글....-------------------------------

*이왕 시작하는 김에 한시 300수 시리즈도 시작합니다. 앞서 백촌 선생 말씀도 있고 해서 시작합니다. 이제부터 올리는 한시들은 기억하실 지 모르겠습니다만, 지난 2002년부터 2005년까지 매일 올렸던 한시들을 다시 정리한 것입니다. 모두 600수입니다. 복습 겸해서 감상하시지요. 그리고 끝에는 흥이 나면 번역의 과정을 조금 설명 드리겠습니다.

< 정민 교수 한문학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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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변 > ♠---------------------

만년에 넘쳐오는 기쁨이다.

한시를 풀이하시는 그 분의 지식을 그리고 깊숙이 감추어진

그 분의 리듬감이 살아 있는 해석 능력을 간절히 배우고 싶었다.

그 분은 오롯한 열성으로 시 600 여 수의 한 시를 홈페이지에 올리신다고 하지 않는가. 물결처럼 번져오는 감동이 있기에 새로운 마음을 가다듬으며 더욱 배우려고 하고 있다. 한시를 가지고도 그 분은 현대시인 이상의 서정으로 수를 놓으신다.

음악 이상의 율동이 그 분의 붓끝에서 춤추는 시의 진정한 미감을 배우고 싶다.

강단을 오랜 동안 떠나 있는 필자에게

다시 인고의 밤을 보내야 하는 충동과 격려의 손짓을

그 분으로부터 진정 배우고 싶다. 번역이 아직도 되어 있지 않은 내 가문의 조상님들의

수많은 유음들을 오늘의 것으로 들리게 하는데 작은 힘을 보태고 싶다.

황혼 길에 서 있는 나에게는 너무나 벅찬 감격일 뿐이다. 그 분의 이야기를 먼저 옮기고 필자 자신의 학습을 담아갈 것이다.

겨울인데도 훈훈한 샛바람 같은 것이 창문을 스쳐오고 있다.

배우자. 더 배우자. 칠십의 나이

육체는 늙어가도 마음은 봄바람을 배워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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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지족(知足)----------------------

을지문덕(乙支文德, 생몰미상),

〈수나라 장수 우중문에게 주다(與隋將于仲文)〉

기찬 책략 천문 뚫고

묘한 계산 지리 다했네.

싸움 이겨 공 높으니

족함 알아 그만 하게나.

                                                                            ♠ 神策究天文 妙算窮地

                                                                신책구천문 묘산궁지리

                                                               戰勝功旣高 知足願云

                                                                전승공기고 지족원운지

▴신책(神策): 귀신 같은 계책./ ▴묘산(妙算): 절묘한 계산./ ▴원운지(願云止): 그만 두겠다고 말하기를 원한다. / ▴우중문(于仲文): 고구려 정벌에 앞장섰던 수나라의 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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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민 교수 감상평설>----------------------

살수대첩 당시 고구려 을지문덕이 수나라 장수 우중문에게 보낸 시다. 그냥 읽으면 밋밋하다. 행간을 알면 그렇지도 않다. 끝 구절은 《도덕경》 44장에 나온다. “족함 알면 욕 되잖코, 그침 알면 위태롭지 않다. 오래 갈 수가 있다.(知足不辱, 知止不殆, 可以長久)” 또 32장에는 “처음 만들어지면 이름이 있다. 이름이 있고 나면 그칠 줄 알아야 한다. 그침을 알면 위태롭지 않다.(始制有名, 名亦旣有, 夫亦將知止. 知止所以不殆.)”라고 했다. 그러니까 4구는 “이길 만큼 이겼으니 이제 그만 하시지! 까불지 말고, 좋게 말할 때 돌아가라”는 말이다. 상대의 부아를 돋구었다. 전쟁에 이길만큼이란 말이 어디에 있나? 서로 간에 《도덕경》을 읽었다는 전제가 있다. 시를 받은 우중문은 분기가 탱천했겠지. 이 자식이 도대체 뭘 믿고 이렇게 까부는 건가? 지형지물이 익숙지 않고, 도로 사정은 여의치 않았다. 그런데도 분기를 못 이겨 행군을 서둘렀다. 보급로도 확보 못하고 살수에서 길이 끊겼다. 손도 못 써보고 유린당해 목숨 겨우 부지해 달아났다.

*사족 : 보통 5언시의 번역은 7,5조의 리듬이 좋습니다. 2,1.2 또는 2.2.1의 구문으로 떨어지니까, 3어절이 호흡에 맞습니다. 이것을 다시 한번 압축해서 4,4조로 압축해 보았습니다. 이것을 7,5조에 맞추면 이렇게 옮길 수도 있겠습니다.

신기한 계략은 천문 뚫었고

오묘한 술수는 지리 다했네.

싸움 이겨 세운 공 이미 높으니

족함 알고 그만 두길 바라는도다.

다시 이것을 3,4조로 늘이면 이렇게 바뀌겠지요.

신기한 계략은 천문을 꿰뚫었고

오묘한 술수는 지리를 다했구려.

싸움에 이겨서 공이 이미 높으니

만족함을 알아서 그만 두길 원하노라.

리듬은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번역시에도 리듬을 살려주는 것이 읽기에 훨씬 수월한 점이 있습니다. 같은 내용이라도 번역의 톤에 따라 시의 느낌이 상당히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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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상을 위한 <백촌> 교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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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策究天文 妙算窮地

신책구천문 묘산궁지리

戰勝功旣高 知足願云

전승공기고 지족원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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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의 분석적 이해

고등학교 교과서엔 다음처럼 풀이들을 하고 있다.

• 그대의 신기한 책략은 하늘의 이치를 다했고

오묘한 계획은 땅의 이치를 다했노라

전쟁에 이겨서 그 공 이미 높으니

만족함을 알고 그만두기를 바라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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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신 같은 계책은 하늘의 이치를 다했고

기묘한 꾀는 땅의 이치를 통달하였도다

싸움마다 이기어 공이 이미 높으니

만족함을 알아 싸움 그만 두기를 바라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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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조분석 >

기승---- 적장 찬양.----- 계책과 묘계 칭송

전----- 전공의 찬양--- 공명심 유발

결----- 회군 종용 ---------------- 철병의 요구

• 표면적으로는 칭찬을 하지만 그 내면에는 상대방을 조롱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 운율- 상성 紙운인 理 止. 표현--- 대구 법. 억양 법 반어법

• 형식: 오언고시의 풍자시-- 현존하는 우리나라의 최고의 한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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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장에 대한 조롱과 야유를 보내는 통쾌한 기개가 넘쳐 있다. 겉으로는 상대방을

짐짓 칭찬을 보내는 듯하지만 지은이의 내면에는 도가적인 사상도 바탕을 이루며

이제 물러가라는 호통이 넘치고 있다.

• < 신책-묘산. 천문-지리, 구-궁> 등은 서로 비슷한 가락을 맞춘 대구법의 표현이다.

• 외면적 칭찬은 내면적으로는 야유와 조롱을 담고 있는 반어법적인 표현이요, 억양법의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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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법對句法, parallelism]----------------------

한 요소가 동등한 중요성과 비슷한 표현법을 가진 다른 요소와 균형을 이루도록, 대등한 개념들을 구·문장·문단에 배열하는 것이다. 비슷한 발음·의미·문장구조를 되풀이하면 이 대등 관계를 정리하고 강조하는 의미가 된다.

• [억양법]

우선 누르고 후에 올리거나, 우선 올리고 후에 누르는 방식으로 문세(文勢)에 기복을 두어 효과를 노리는 수사법.

• [반어법]

1 [논리]상대편이 틀린 점을 깨우치도록 반대의 결론에 도달하는 질문을 하여 진리로 이끄는 일종의 변증법.

2 [언어]참뜻과는 반대되는 말을 하여 문장의 의미를 강화하는 수사법. 풍자나 위트, 역설 따위가 섞여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인색하다는 뜻으로 쓴 ‘참 푸지게도 준다!’ 따위이다.

<예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 소월의 진달래꽃>-- 내면적으론 깊은 눈물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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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32 장의 <知足> ---------------------------------

道常無名. 雖撲小 天下莫能臣也.

候王若能守之 萬物將自賓. 天地相合以降甘露. 民莫之令而自均.

始制有名. 名亦旣有. 夫亦將知止. 知止可以不殆.

譬道之在天下 猶川谷之於江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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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이

도는 항상 이름이 없어 비록 질박하고 작으나, 천하 누구도 부릴 수 없다.

왕후가 그것을 지킬 수 있으면 만물이 스스로 공경한다. 천지가 서로 합하여 감로를 내리고, 백성들은 명령 없어도 스스로 균등하다.

처음 제정함은 이름이 있고 이름 역시 이미 있으면 장차 머무를 줄을 알고 머무를 줄을 알면 위태롭지 않을 수 있다.

도가 천하에 있는 것을 비유하면 시냇물이 강과 바다로 가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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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老子 第四十四章의 知足> ------------------------------

名與身孰親 身與貨孰多 得與亡孰病

是故甚愛必大費 多藏必厚亡 知足不辱 知止不殆

可以長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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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이

명예와 생명 중 어느 것이 더 가까운가. 생명과 재산 중 어느 것이 소중한가.

얻는 것과 잃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근심이 되는가.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깊이 빠지게 되면 많은 것을 잃게 되는 것이다.

너무 많이 가지게 되면 결국은 크게 잃게 되는 것이다.

만족할 줄 알면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으며,

적당히 그칠 줄 알면 어떤 위태로움도 생기지 않는 것이다. 그래야만 오래도록 편안히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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知足의 용례

제 분수를 알아 마음에 불만(不滿)함이 없음 곧 무엇이 넉넉하고 족한 줄을 앎

만족을 안다면 어찌 가난을 걱정하랴 / 知足寧憂貧

어찌하여 스스로 만족할 줄 모르고 / 胡奈不知足

평생에 만족할 줄을 알매 즐겁고 또 즐거운데 / 半生知足樂復樂

이 몸은 만족할 줄을 알아 다시 일이 없거니 / 此身知足還無事

군자는 만족할 줄 앎을 귀히 여기나니 / 君子貴知足< 한국고전번역원 인용>

• <足不足> 시의 일부

龜峯 / 宋翼弼(송익필) 1534(중종 29)~1599(선조 32).

君子如何長自足 군자는 어찌하여 늘 스스로 만족하며

小人如何長不足 소인은 어찌하여 늘 만족하지 아니한가.

不足之足每有餘 부족하나 만족함을 알면 늘 한가하겠고

足而不足常不足 만족한데도 부족하다 하면 언제나 바쁘다네.

樂在有餘無不足 즐거움이 한가함에 있으면 바쁠게 없겠지만

憂在不足何時足 근심이 부족함에 있으면 언제나 만족할까

安時處順更何憂 때에 따라 순응하여 살면 또 무슨 근심 있으리

怨天尤人悲不足 하늘을 원망하고 남 탓해도 슬픔은 모자라겠네.

※전부가 40 구 280자에 달하는 장편으로 '족足'자만을 운자로 사용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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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언 절구 시의 맛은 어느 것이 더 나을까.------------------------

정민 교수님은 5 언 절구 시의 번역은 7.5 조 리듬을 따라가는 3 음보의 운율적인 리듬이 좋다고 하셨다.

3,4조로 4,4조로 4,5조로 그리고 1,3구는 두 어절로, 2,4구는 3어절의 엇박자로 리듬을 맞춰 나가는 것이 시의 읽는 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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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재(李益齋 이제현(李齊賢))의 보덕굴(普德窟) 이라는 시에 대해서 서로 다른 맛을 주는 풀이를 옮겨 실어 본다.

음산한 바람은/ 산골짜기에서 /일고 / 陰風生巖谷

시냇물은/ 깊고도 /푸르구나 / 溪水深更綠

지팡이를 짚고/ 절벽을 /바라보니 / 倚杖望層巓

높은 처마 /구름 위에/ 떠 있구나 / 飛簷駕雲木 < 한 국 고전 번역원 인용>

 

서늘바람 바윗골에 /시냇물/ 깊푸른데

막대에 몸을 실어/ 층층 벼랑 /올려다보면

솔구름 멍에한 추녀/ 날개 활짝/ 폈어라.< 옛 시정을 더듬어>에서 인용.>

한학자이신 孫宗燮 선생님의 풀이다.

 

 

♠ 읽어 주신 모든 분께 진정한 감사를 드립니다. 일흔 살 늙은이의 작은 숨결과 몸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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