穀雨日始雨 (곡우일시우)-----------
--“곡우”날에
비 내리고 --
이 민구(李敏求)
1589년(선조 22) - 1670년(현종 11)
자: 子時 호 : 東州, 觀海
본관 : 全州
창문을 밀치니 봄바람 좋지만
처마를 돌아보니 봄비에 헐고
차를 달이니 병든 가슴 낫는 듯하고
술을 거르니 마음 속 근심 씻어지며
녹색 길가엔 여린 싹들 돋아나고
숲속 붉음에 잠시 향기 쏟아내네.
지금은 봄철 일이 너무 일러서
둥지 속 제비는 아직 바쁘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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拓戶條風好。巡簷穀雨妨。탁호조풍호。순첨곡우방
煎茶蘇病肺。漉酒浣愁腸。전다소병폐。녹주완수장。
徑綠抽纔嫩。林紅吐乍芳。경록추재눈。임홍토사방
卽今春事早。巢燕莫須忙。즉금춘사조。소연막수망
< 東州先生詩集卷之五 鐵城錄 五에서>
한자
拓밀 탁簷 처마 첨 煎 달일 전肺 허파 폐 漉 거를 록
浣 빨 완抽 싹틀 추 纔 겨우 재 嫩 어릴 눈 乍 잠깐사 巢 보금자리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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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어 정리 >
▸拓戶: 창문을 열어젖힘
새벽 문을 열고 푸른 바다 마주하니 / 曉來拓戶臨靑海
경탄하여 서둘러 방문 여는데 / 叫奇催拓戶
잠 못들어 창문을 제치고 보니 / 不眠仍拓戶
▸條風: 동북방에서 불어오는 바람. 동북풍. 봄바람. 높새바람
봄바람 불고 해맑은 날씨 / 條風淑景
동북풍 가볍게 부니 따스한 기운 감도네 / 條風輕扇煖些微
봄바람에 나물씨 껍질 터지네 / 條風菜甲穿
1따스한 바람으로 잎 피우니 / 條風發之
동북풍이 이미 불어와서 / 條風旣發
▸穀雨: 24 절기의 하나. 백곡을 잘 자라게 하는 비. 양력으로 4 월 20일이나 21 일. 청명(淸明)과 입하(立夏) 사이에 있는 음력(陰曆) 3월 중기(中氣)로 태양이 황경 30도에 이른 때이다. 의미는 봄비가 내려 백곡(百穀)이 윤택해지고, 농가에서는 못자리를 마련하고 한 해 농사의 준비가 시작된다.
▸煎茶:차를 달임
돌 아궁이 차 달이니 자색 연기 모락모락 / 石竈煎茶颺紫煙
차를 끓이니 우유 거품 보글보글 / 煎茶雪乳翻
부싯돌로 불을 쳐 차를 달이려 하니 / 將敲火而煎茶兮
술을 사고 또 차를 끓이네 / 賖酒更煎茶
돌솥에 차 달이기 좋기도 해라 / 石鼎好煎茶
▸病肺: 병든 가슴.
달고 진한 석청은 병든 폐를 소생시키고 / 崖蜜甛濃蘇病肺
병든 폐 말끔히 되살아나고 / 乍堪穌病肺
감당 못할 나라 걱정 게다가 폐병까지 / 憂國不堪兼病肺
혀 끝에 차고도 달콤한 맛 병든 폐 소생할 듯 / 嚼罷甘寒蘇病肺
병든 가슴에 술 마시기가 몹시 꺼림해 / 病肺苦嫌謀飮酒
▸漉酒:술을 거름.
중국의 도연명(陶淵明)이 술이 익을 때가 되면 갈건(葛巾)으로 술을 거르고 나서 다시 머리에 썼다는 고사가 있음. 녹주관(漉酒冠) .녹주옹(漉酒翁) 이라고 함.
도잠이 술을 거르며[陶潛漉酒]
술 거르는 선생의 두건 바람에 흔들려 날리리라 / 風動先生漉酒巾
머리 위의 녹주관을 웃으며 가리켰으리 / 笑指頭邊漉酒冠
높이 누워 우리 녹주옹만 떠올리네 / 高臥長懷漉酒翁
▸愁腸: 愁心. 근심하는 마음
헤어진 뒤 시름 속에 몇 번이나 애태웠나 / 別後愁腸日幾回
시름하는 마음 점점 풀어짐을 깨닫노라 / 轉覺愁腸澆
수심에 싸인 창자를 끊어놓네 / 剪斷愁腸
괴로운 마음은 처참하여 눈물이 줄줄 / 愁腸慘慘涕漣漣
오직 근심에 애를 끓는 건 / 惟是愁腸回
▸徑綠: 녹색 풀이 자란 길
도라지 캐 돌아올 제 두 갈래 길 새파랗고 / 桔梗採歸雙徑綠
나그네 드물어 길 문엔 초록이끼가 많고/客稀門徑綠苔多
▸纔嫩: 매우 어린. 연약하게 자라는 싹들.
▸莫須忙: 모름지기 바쁠 것 없다. 당연히 분주하지 않다.
돌아가는 흥 노래를 기다리지 마소 / 歸興莫須歌
막수유(莫須有 없을 것 같지 아니하다)
실컷 담화하고 작별하니 시름할 것 없어라 / 話闌而別莫須愁
엄명을 한번 받았으면 바삐 가야만 할 터인데 / 一銜嚴命故須忙
걸음을 굳이 바삐할 필요가 없네 / 行李不須忙
좋은 때 만나 행락하는 것 서둘러야겠다 / 得時行樂要須忙
서풍에 노를 돌림이 다시 바쁘겠군 / 西風回棹更須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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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상 이해 >=====================
◀분석적 이해▶
5 언 율시의 시로 운자는 평성 陽자 운으로<妨腸芳忙>이
동일 운자이다.
<1.2 행 두련>-- 봄바람 더불어 곡우에 비 내림.
條風好--穀雨妨 대구적인 표현.
<3,4 행 함련>-- 차 달이며, 술 거르는 풍류
지은이 마음--- 상쾌해지는 안온한 마음
<5.6 행 경련 >- 녹색, 홍색의 싱그런 자연
자연의 윤택. 시각. 후각의 동원
<7.8 행 미련>-- 이른 봄날의 풍경
춘일의 한가함. 분주하지 않은 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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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상 이해 >=====================
24 절기의 하나인 곡우(穀雨)날의 자연 풍경을 감각적으로 그려낸 서경적인 시이다. <곡우에 가물면 땅이 석 자나 마른다 >라는 속담이 있다.
곡우날에 비가 내린다. 농촌에서는 못자리를 마련하며 한 해 농사를 준비한다.
이 날이 지나면 산야는 더욱 더 깊은 연초록의 물결이 될 것이다.
모란꽃, 개나리꽃 진 나뭇가지에는 살랑살랑 부는 봄바람에 연한 초록으로 물들어가고 있다. 하얀 배꽃 가지에도 붉은 복사꽃 나뭇가지에도 녹색의 연한 숨결을 토해내고 있다. 곡우가 지나면 이제 비로소 봄의 화려한 들판이 펼쳐질 것이다.
지금 눈을 적시는 것은 봄바람 맞으며 봄비에 포근히 젖는 봄의 정경이다.
차 달이는 향기, 술 거르는 진한 향기에 마음도 포근해지고 산뜻해지는 지은이의
아늑한 모습도 보인다.
연한 녹색의 여린 싹들이 돋아나고 숲속의 붉은 복사꽃 철쭉, 진달래꽃의 은은한 향기도
곡우에 내리는 비에 더욱 짙어만 가고 있다. 둥지를 튼 제비들은 아직은
분주히 날아가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 이른 봄의 서경이다.
곡우날에 비로소 비가 내리며 봄의 생명들이 움터가는 이른 봄날의 서경을 그린 감각적이고 밝음의 정경이 담긴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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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은이>
이 민구(李敏求) 1589년(선조 22) - 1670년(현종 11)
실학 발전에 선구적 역할을 한 이조 판서 이수광(李晬光)의 아드님으로 젊어서 뛰어난 재능이 있어 사마시와 문과에 모두 장원하였다.
1623년(인조 1년) 에는 趙翼, 任叔英, 吳䎘, 李明漢, 鄭百昌, 金世濂, 張維, 李植,
鄭弘溟 등과 함께 사가독서 인원에 뽑혔고, 도원수 張晚의 종사관이 되었으며,
1626 년(인조 4 년) , 대사간, 이조 참의의 직책으로 李敬輿, 李景義, 李景奭, 李昭漢, 尹墀, 李明漢, 李植 등과 함께 사가독서 인원에 뽑혔다.
이듬해 정묘호란(丁卯胡亂)이 일어나자 병조 참의(兵曹參議)가 되어 세자(世子)를 모시고 전주(全州)에서 난을 피했다. 그해 승지(承旨)가 되었다가 외직(外職)인 임천 군수(臨川郡守)로 나갔다.
1636년(인조 14 병자)에 黃監軍 접반사, 대사헌, 도승지. 동지경연사가 되고, 이조 참판이 되었으며 대사간이 되었다. 12월, 賊兵이 쳐들어오자 예방승지 韓興一이 종묘사직의 神主와 빈궁을 모시고 江都로 피난할 때 檢察副使가 되어 빈궁의 행차를 호위하였다.
1637년(인조 15 정축) 청 나라 군사가 江都를 공격할 때 방어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永興 鐵甕城에 유배되다. 이후 1643년까지 7년간 철옹 유배지에서 지내었다. 효종 현종 시대에는 여러 번이나 대간의 반대로 직책을 얻지 못하였다.
저서에《동주집(東洲集)》 〈독사수필 讀史隨筆〉·〈간언귀감 諫言龜鑑〉·〈당률광선 唐律廣選〉등이 있다. 그의 시문은 는 작품 4000여 편 가운데 병화로 소실되고 남은 詩文을 수습하여 연도별로 편차한 문집이 있다.
본문의 시가 실린 鐵城錄은
1637년부터 1643년까지 7년간 永興 鐵甕에 유배되어 있을 때에 지은 작품들을 연도별로 한 권씩 엮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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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우날 비 내리는 속에서 연한 녹색 잎들>
< 곡우 전에 백설 같은 배꽃에 순결한 생명이 넘치고 >
다음과 같이 풀이를 해 주신 분들이 있어 여기에 옮겨 싣습니다.
함께 동학하는 만년의 가득한 즐거움입니다.
1. 포상님의 풀이----------------------------
拓戶條風好(방문을 열어 저치니 봄바람이 좋아)
巡簷穀雨妨(처마를 돌려하나 곡우가 방해하기에)
煎茶蘇病肺(차를 다려 병이든 폐를 소생시키고)
漉酒浣愁腸(술을 걸러 수심에 찬 마음을 씻어내네)
徑綠抽纔嫩(길이 푸르니 막 여린 싹이 돋아남이요)
林紅吐乍芳(숲이 붉어 마침 꽃향기를 토해내는데)
卽今春事早(지금 당장은 봄 농사가 일러서 인지)
巢燕莫須忙(집짓는 제비는 모름지기 바쁘지가 않네)
2. 미유당 님의 풀이------------------------
문 내기엔 높새바람이 좋아
처마를 둘러본다만 봄비가 막는구나.
차 달여 아픈 가슴 달래고
술 걸어 근심 씻자꾸나.
골목은 파릇파릇 어린 싹을 틔우고
산은 붉어져 풋풋한 향기를 내뿜는다만
올봄 농사는 아직 이르니
집짓는 제비야, 서둘지 마라.
__________________
<미유당 님의 감상>
높새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제비가 집짓기에 딱 좋은 바람입니다. 날 짐승들은 바람을 타면 비행하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봄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습니다. 강남에서 돌아온 제비는 여기저기 집지을 만한 처마를 점검하며 부산합니다. 그렇지만 봄비 때문에 집짓기를 계속할 수 없습니다. 몸이 젖으면 비행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시인은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제비야, 농사에 좋은 봄비가 내리고 있다. 그러니 애태우지 말고 차 한 잔 마시고 막걸리 한 잔 마시면서 답답한 가슴을 누그러뜨리렴. 아직은 너희들 봄 농사가 이른데 서두를 게 뭐 있겠느냐?”
시인은 제비에게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자신에게 얘기하고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세상사는 서두른다고 해서 맘대로 되지 않습니다. 비가 오면 그치기를 기다려야 하고 역시 바람이 불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바람이 불어도 비가 오면 물론 안 되겠지요. 순리를 따라야 한다는 간단한 생활철학을 집짓는 제비를 통하여 시인은 재확인하고 있습니다.
2009. 4. 26. 微幽堂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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