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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주 조찬한 님의 파사성

백촌거사 2009. 5. 16.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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婆娑城 丙午(1606선조 39년.35세)-----------

      파사 성

                                                      조 찬한(趙纘韓)

                                                                               1572년(선조 5) -- 1631년(인조 9)

                                                                                                   자 : 善述 호 : 玄洲 본관 : 漢陽

 

此郭山僧築。當時避賊

幾人收土石。千雉繞魚

只合開江市。唯能扞水

可憐廊廟計。終始在崇

                                             <출전 : 玄洲集卷之五 門人愼天翊攷에서>

한자 ---------------

할미 파 춤출 사 칼끝 봉 담 치

두를 요 막을 한 찌를 충 복도 랑 담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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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차곽산승축。당시피적。기인수토석。천치요어

지합개강시。유능한수。가련낭묘계。종시재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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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성곽 산승이 세웠고

        그 당시 왜적 침략 피했어라.

 

         토석을 거둔 이들 몇 사람인가.

       높은 성벽 강가에 둘러싸여 있네.

 

         강변 시장 열기에만 합당하고

        오직 물결침을 막을 뿐이네.

 

       조정의 그 계획이 안타깝구나.

     시종 높은 성벽 쌓기에만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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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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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석이해와 감상>

<1-2 행- 두련>- 파사성의 축조 내력

※의엄(義嚴) 수축(修築) 과 임란을 피함

<3-4 행- 함련>- 파사성 성벽의 정경.----< 서경 >

강가에 이어짐- 토석을 쌓음

<5-6 행- 경련>- 파사성의 효용성

강변시장을 열음. 강물의 방어

<7-8 행- 미련>- 파사성의 불합리성------< 서정 >

조정의 계획에 대한 탄식( 지은이의 주제 의식).

왜적을 방어하는 것에는 미흡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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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현주 님의 병오년 ( 1606 년. 35 세) 작품이다.

현주는 1592 년 21 세에 임란을 26 세 때에는 정유재란의 비극적 체험을 겪으면서 많은 심적 좌절을 가슴에 안고 살아온 시인이다. 전쟁 중에 아이를 잃었고, 아내는 순절하는 통절감을 맛본 지은이로서는 파사성을 바라보면서 오히려 왜적을 막는 역할에 조금은 소홀히 하지 않는가 하는 사실을 비판하고 있는 시이다.

파사성을 노래한 여느 시와는 다르게 풍물에 대한 어떤 낭만적인 서정을 표현하기 보다는 남한강 변 주위에 세워진 성의 기능이 강물의 유입을 막는 방파제 기능은 될지 모르나 왜적의 침략을 막는데는 많은 부족함이 있을 것이라고 그 당시 조정의 성 건립에 대한 계획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수많은 백성들을 동원하여 세운 성이 실제로는 왜적을 방어하려는 것보다는 처음부터 성을 쌓는 그 자체로만 헛된 노력을 하고 있다는 내면적인 우국충정의 의지가 깃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현주 님의 < 前欲哭> <後欲哭> 등의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전쟁의 비극적 상황을 체험한 지은이로서는 왜적의 침략을 막을 수 있는 더욱 더 공고한 성이 되지 못했음을 한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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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어 이해> -----------------------------------

婆娑:

할미 파--노모.늙은 여자. 梵語-bha의 음역자

婆娑,舞也。——《爾雅》

婆羅門-범어 Brahmana의 음역. 인도에서 가장 높은 지위의 승족

婆娑- 너울너울 춤추는 모양/ 옷자락이 너울거리는 모양/ 흩어져 어지러운 모양/ 산란한 모양/ 댓잎 같은 것에 바람이 부딪치는 소리/ 음조에 억양이 많은 모양/ 비틀 거리는 모양/ 배회하는 모양/ 그림자가 움직이는 모양/ 꿈지럭거리는 모양/ 편안히 앉은 모양

婆娑兒- 갈매기의 이칭. 婆然- 춤추는 모양.

娑 춤출 사 옷 너풀거릴 사. 앉을 사

裟婆- 梵語sabha 음역. 忍土. 能忍으로 번역. 안에는 여러 번뇌가 있고, 밖에는 한서풍우의 고통이 있어 여러 고통을 견디어 내야하는 국토

파(婆)는 범어로 바(bha)이며 그 뜻은 유(有)이고, 사(娑)는 발음이 사(sa)로서 그 의미는 체(諦 : 진실한 도리)이다.

그러므로 파사는 유체(有諦)로서, 일체의 지혜가 현증(現證)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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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婆娑>라는 지명에 대한 논란---------------------------------------

1. 가락국 수로왕의 왕비 허황옥(許黃玉)이 서역에서 가져왔다는 석탑의 명칭이 바로 파사석탑(婆娑石塔)이다. ‘삼국유사’에는 서기 48년 수로왕비 허황옥이 서역 아유타국에서 바다를 건너올 때 파신(波神)의 노여움을 잠재우기 위해 석탑을 싣고 왔다는 기록이 실려 있다.

2.신라의 5대 왕인 파사 이사금(재위 80∼112년)이 있는데, 이 파사 이사금의 한자가 파사성의 한자와 똑같다.

신라 파사 이사금 때에 남녀 두 장군이 이 파사성을 쌓았다는 것은 후대의 사람들 사이에 구전되는 전설일 뿐이다.

3.옛적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지배한 페르시아의 한자 이름이 바로 파사(波斯)<페르시아’의 음역어>이다. 이 파사와 ‘婆娑’가 같은 의미로 쓰이는가 하는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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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로이 달 아래 거닐며 앞 시에 화운하네 / 婆娑步月和前詩

하얀 달빛 아래 너울너울 춤을 추기도 하고 / 舞月婆娑

꽃과 달 여유롭게 즐기셨도다 / 婆娑花月

높은 장대 끝에 서서 너울너울 춤추는 일 / 百尺竿頭舞婆娑

산수가 좋은 고을에서 한가로이 지내며 / 婆娑林丘

몇 그루 나무 밑에서 배회하네 / 婆娑數株樹

한들한들 버드나무 몇 가지가 / 婆娑數枝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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此郭:

경기도 여주군 대신면 천서리에 있는 해발250미터 정도의 <파사산>에

세운 성벽으로 石城이다. 성의 둘레는 대략 943m라고 한다.

성의 일부가 남한강 유역에 연하여 있어 강기슭에 돌출되게 세워졌고, 강의 상하류의 흐름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요충지이다. 여주 팔경 중에 婆娑過雨 (파사과우) 라는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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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僧: 속명(俗名)이 곽언수(郭彦秀)이고,休靜大師의 제자인 의엄(義嚴) 스님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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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엄(義嚴) 스님>에 대한 기록----------------------------------

<<선조(宣祖) 25년에 승장(僧將) 의엄(義嚴)이 고성(古城)을 수축(修築)했는데, 그 둘레가 1천 1백 보(步)이다.>>라는 기록이《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경기(京畿)여주목(驪州牧)>에 기록이 되어 있고, 조선 왕조실록에도 다음과 같은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1. 비변사가 승려 의엄(義嚴)을 도총섭(都摠攝)으로 삼아 파사 산성(婆娑山城)을 수축하게 할 것을 계청(啓請)하였다<선조 28년(1595 을미 ) 3월 1일>

2.파사 산성(婆娑山城)은 도총섭(都摠攝) 의엄(義嚴)이 바야흐로 성 안에 집을 짓고 또 성 아래에 널리 둔전을 개척하고 있는데, 종자는 부근 고을의 곡식을 주고 농량(農糧)은 번(番)을 면제한 군사의 대량(代糧)으로 지급했습니다. 성벽이 무너진 곳은 또한 승군(僧軍)으로써 점차 수축하고 가을에 추수한 곡식은 성 안에 비축하여 급할 때의 용도에 대비해야 합니다. 그리고 의엄에게 수확한 뒤 원수(元數)를 본사에 첩보하게 함이 마땅합니다. 또 의엄이 호소한 바 강원·함경·평안도 등의 사사 노비(寺社奴婢)의 신공(身貢)과 위전(位田)의 소출을 원대로 거두어 쓰게 하고, 진중에서 공이 있어 금군첩(禁軍帖)을 받은 사람들도 응성으로 하여금 순찰 나가 시재(試才)하여 계문하게 한 뒤에 등급이 뛰어난 자는 알맞게 급료를 지급하는 것이 무방하겠습니다<선조 28년(1595 을미) 6월 12일>

3.팔도 선교종 도총섭(八道禪敎宗都總攝) 석 의엄(釋義嚴)이 상소하였다. 그 대략에,

“파사(婆娑)에 성(城)을 축조하는 일은 소승이 살펴 구상한 것이 아니요, 조정에서 특별히 상류(上流)의 요충지로서 관방(關防)이 된다고 하여 상에게 사실을 주달한 다음, 그 일을 이 미천한 소승에게 위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소승은 사양하지 않고 이 일을 맡아 힘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승군(僧軍)은 출입하는 데에 있어 그 문호가 번다하기 때문에 비록 도총(都總)이라 칭하여도 빈 직함만 띠고 있을 뿐입니다. 전라도와 경상도는 변지에 가깝기 때문에 처음부터 영을 내리지 않았고, 충청도와 평안도는 각각 그 도의 일을 좌우로 분집(分執)함으로써 역무에 나오는 사람이 하나도 없고, 강원도와 황해도 역시 일반이며, 함경도는 거리가 멀어서 명령이 시행되지 않습니다. 파사가 비록 작은 산성이라고 하나 역군이 1백 명에도 차지 않습니다. 이것으로 상례를 삼아 해를 마치게 되면 비록 10년이 지나더라도 어떻게 마칠 수 있겠습니까. 설사 승군에게 전담시킬 수 없어 다른 방법으로 그 부족함을 보충한다고 하더라도 조정이 조처할 일이며, 다른 방법으로 보충할 수 없어 승군에게 전담시켜 그 성공을 책임지운다고 하더라도 역시 조정이 조처할 일입니다. 그러므로 일의 이루고 이루지 못함은 이 미천한 소승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조정의 조처 여하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파사성의 역사를 지난해에 일으켰으나 역군이 모이지 않음으로써 공정은 절반도 성취하지 못하였는데, 중국의 사신 행차는 끊이지 않습니다. 성은을 입어 그 감격한 마음이 뼈에 사무치니 두려움이 더욱 깊어집니다. 만약 금년에 공사를 마치지 못하면 위를 기망하는 것이 될 뿐만 아니라, 불충(不忠)이 될 것입니다. 그 불충의 책임으로 소승을 책하는 것은 진실로 부끄러움이 되지 않겠으나 방비의 조처를 잃는 것은 실로 국가의 잘못입니다. 일이 이해에 관계되기 때문에 삼가 죽음을 무릅쓰고 아룁니다.”<선조 29년(1596 병신4월 12일>

-----------------------------------조선왕조 실록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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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산의 스님 보는 것을 평소에 좋아하였는데 / 平生喜見名山僧

앉아서 산승 대함에 속인(俗人)의 마음도 씻기는 듯 / 坐對山僧遣俗情

절간 문 바라 울려 산 중 달린다 / 寺門鳴鉢走山僧

산속으로 돌아온 나를 산승은 묻지 말라 / 山僧莫問還山意

문에 나와 웃으며 손 맞는 / 山僧出門笑迎客

머리 벗겨진 이 앉아 차를 만드네 / 赤頂山僧坐點茶

승려는 구름과 더불어 반 칸의 집을 나누었네 / 與雲分屋半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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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려僧侶-- 산스크리트 상가<saṃgha>의 번역으로, 불교의 출가 수행자를 말하며.

스님,·승(僧)·중(衆)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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賊鋒: 적의 칼날(鋒刃). 적군의 공세를 말함. 여기에서는 임진왜란 때의 왜적의 기 세를 말함.

賊魁- 도적의 괴수/ 賊巢- 적도의 소굴/ 賊心- 남을 헤치려는 마음

賊風-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 賊漢- 도적놈/

- 봉망 봉/ 끝 봉/ 앞장 봉/ 병기 봉

鋒戈- 창/ 鋒鋩- 날이 있는 무기의 첨단. 창 같은 것의 끝,

날카로운 기세. 기상의 비유. 鋒蝟- 고슴도치/ 鋒刃- 창 칼 따위의 날

鋒毫- 붓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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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칼날 꺾기 벼락과 같았으니 / 賊鋒摧挫興雷同

용감하게 적의 예봉을 막았고 / 勇遏賊鋒

앉아서 경도를 적의 수중에 빼앗겼네 / 坐使京都陷賊鋒

적봉(賊鋒)을 꺾거나 적진(賊陣)을 함락시킨 일은 별로 없다.

적의 예봉을 꺾고 요해처부터 차단하니 / 折得賊鋒先截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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幾人: 몇 사람

幾人收土石--- 현주 님의 내면에는 성을 쌓기 위해 많은 피와 땀을 흘리며

고생을 했던 백성들을 생각하는 안온한 마음이 담겨 있다.

雨中歸城 <玄洲集卷之四>---------------------------------

三日尋源逸興飛。 사흘 간 도원 찾아 멋진 흥취 날리며

暫隨雲水浣塵衣。 잠시 구름, 물 따라 속세 옷 씻었네.

出溪還復憂民계곡 벗어나 다시 백성 일 근심하니

春郭何妨冒雨歸。 봄나들이 비 맞고 오는 길 무슨 상관이랴.

‣ 이 글을 쓴 병오년 ( 1606 년)에는 庭試文科에 장원을 한 후에 선조의 특명으로

전시를 보아 廣試文科에 합격을 한 해이다. 아직은 관직이 없을 때이다.

관직을 얻은 후에도 현주님께서는 작품 곳곳에 백성들을 긍휼히 여기는 어진 인자의 마음이 위에서 처럼 담겨 있음을 볼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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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토에서 청아한 정취 느낄 자 몇이나 될까 / 幾人塵土懷淸賞

기근과 역병 속에서도 몇 사람이 살고 있네 / 饑疫幾人猶且居

흰머리로 탈없이 돌아간 이 몇이나 될꼬 / 白首全歸有幾人

이 영광 차지한 이 과연 몇이 될꼬 / 幾人同此意

세상에서 알아줄 이 몇이나 될꼬 / 世間還有幾人

이 성을 쌓은 뒤로 통곡한 이 몇몇일꼬 / 城成幾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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千雉繞魚龍: 성벽이 강가에 둘러싸인 모습의 표현.

千雉: 천 길 높이의 성벽

雉-꿩 치/ 성의 담 치/

성의 담의 척도의 단위 높이 열자, 길이 서른 자를 말함

성(城)에 천치 백치의 한정된 제도가 있다.

치(雉)는 길이가 세 발이요, 높이가 한 길이다.

龍: 물고기와 용. 여기에서는 강물을 상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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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의 벽과 담이 백이며 천일세 / 百垛千雉

흰 성벽 띠와 같이 둘러 있네 / 粉堞如帶明千雉

암울한 근심은 천 길 높이 성벽 같아 / 黯黯淸愁千雉

천치 성과 백치 성은 정해진 제도 없어 / 千雉百雉又無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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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대한 진에 누가 천 치의 성 쌓으려나 / 雄鎭誰營千雉

천치백치는 또 정해진 제도가 없으니 / 千雉百雉又無制

천년 묵은 나무들은 성(城) 그림자 비끼고 / 老樹橫分千雉

높은 담장 천치의 성이 구름 위에 치솟아라 / 崇墉千雉入雲平

정상에는 펀펀하고 뾰족하거나 가늘지 않고

억 길[丈]의 성과 천 치의 첩에 기를 총총 꽂은 것과 같다네 / 絶頂平衍不尖細環如億丈之城千雉之堞井井立旗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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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들어 어룡은 관현에 춤을 추는 듯하네 / 入夜魚龍舞管絃

배 가득 풍악 소리 어룡이 다 놀라겠네 / 滿船簫鼓駭魚龍

텅 빈 강에 어린 달빛 썰렁한 물고기들 / 空江月照魚龍

언덕 사이로 물고기들 뛰어놀고 / 魚龍游於陵阜兮

※ 옛사람이 성제(城制)를 말할 때에 모두 치(雉)를 일컬었으니, 이른바 천치(千雉), 백치(百雉)라는 것이 그것이며, ‘치’란 바로 지금 말하는 곡성(曲城)ㆍ옹성(甕城)이다. 대개 성에 곡성ㆍ옹성이 없으면 비록 사람이 타(垜)를 지키고 타 사이에 방패를 세워 밖의 화살과 돌을 막는다 하더라도 성 아래에 와서 붙는 적을 발견하여 방어할 수가 없다. 척계광(戚繼光)의 《기효신서(紀效新書)》에, “50타마다 1치를 두고, 밖으로 2, 장(丈) 나가며, 두 치 사이의 거리가 50타이고, 1치는 각각 25타의 땅을 차지해야 화살과 돌이 한창 퍼부어질 때에도 좌우를 돌아볼 수 있어 활쏘기에 편리하니, 적이 성 아래에 와서 붙을 수가 없다.” 하였다. 《징비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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只合開江市 : 다만 강변의 시장을 열기에 적당하다.

只合: 다만 적당하다. 다만 합당하다.

江市: 강가 변의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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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산이란 오직 한 번 노닐기에 합당하다오 / 名山只合一番游

다만 운명대로 맡겨 두는 게 합당하다오 / 只合騰騰任運騰

작년의 시는 황토를 발라서 말소해야 할 것이니 / 舊題只合黃泥埽

한가한 관직은 동료의 술자리에나 적격이니까 / 官閑只合讌同僚

황관은 산 속에 살 때만 어울리는데 / 黃冠只合棲山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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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시에서 가져온 한 병의 술로 / 一壺江市

그래도 요즘에 시장 쌀값이 오르기만 하니 / 邇來江市猶刁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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唯能扞水衝 : 오직 물결이 치는 것을 막을 뿐이다.

唯能: 오직 능할 뿐이다.

扞水衝: 물의 맞부딪침을 막는다.

扞- 막다/ 호위하다/ 다닥치다/ 팔찌/ 범하다.< 한 >

扞拒- 방어/ 扞格- 다닥침/ 扞衛- 방위함 /扞蔽- 막아 가림

衝 [찌를충,뒤얽힐종] 뒤얽히다 (종) ㉠찌르다, 치다 ㉡부딪치다 ㉢향하다

㉣움직이다 ㉤돌다, 회전하다(回轉ㆍ廻轉-- 들이밀어 뚫음)

衝激- 심하게 부딪힘/ 衝擊- 찔러침/ 衝衝- 근심하는 모양

衝火- 일부러 불을 놓음/衝撞- 부딪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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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요충이 어느 날부터 인적이 끊어졌는지 / 要何日斷人行

차가운 해를 직선으로 부딪쳐 가는 까마귀요 / 烏鴉一道寒日

절간의 스님 찾아 혼자서 진흙탕 뚫고 가네 / 尋僧蕭寺獨

외줄기로 저녁 연기 꿰뚫고 오는 갈가마귀 / 一道烏鴉暮煙

매년 조수의 부딪힘을 입어/連年被潮水衝

오직 한 몸 구제함이 다르다 할까 / 康濟唯能及一身

장안의 여러 부호의 자식들은, 비린 고기와 훈채를 가득 벌여 놓고, 문자를 논하며 마실 줄은 모르고, 오직 기생에 취할 줄만 아는구나./長安衆富兒 盤饌羅羶葷 不解文字飮 唯能醉紅裙

<한유(韓愈)의 취증장비서(醉贈張秘書) 에서>

오직 능한 건 자고 먹는 것이라 / 唯能眠與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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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언덕은 수양버들이 가리고 있다네 / 夾岸垂柳

변방을 호위한다./邊境

재해를 막고 백성의 고통을 긍휼히 여기니 / 災恤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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廊廟: 정사를 보는 정전이나 묘당. 先王들을 모신 宗廟.

조정

廊(복도 랑 행랑 랑 ) 廟(사당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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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조정에선 자꾸 지휘만 하시는지 / 廊廟如今費指揮

조정에선 가을 천둥 얼마나 놀랄거나 / 廊廟應驚秋有雷

그 당시에 대로께서 조정 위에 계셨는데 / 當時大老登廊廟

비루한 자 조정에 천거됨이여 / 薦闒茸於廊廟

문단(文壇)은 갈피를 못 잡고 / 詞壇錯莫

조정은 쓸쓸하기 그지없구나 / 廊廟凄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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終始 : 끝과 처음. 끝냄과 시작함.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한결같이

終古- 언제까지나 영구히/ 終乃- 마침내/ 終歲- 일평생/

終始一貫- 처음부터 끝까지 변하지 않음. 終夜- 밤새도록/ 終朝- 아침 동안

哀榮終始 - 생영사애(生榮死哀)와 같은 말로, 생전이나 사후 모두 영예스럽게 되는 것을 말한다. “살아서도 영광이요, 죽어서도 애도를 받는다.〔其生也榮 其死也哀〕”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논어(論語)》 (자장(子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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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종 굼벵이처럼 느긋하게 행동하며 / 終始等鈍遲

언제나 기운은 서로 통하는고야 / 終始氣相徹

끝과 시작은 분명히 꼬리와 머리라 할 것인데 / 終始端如尾與頭

하늘이 당연히 시종일관 돌보셨네 / 宜考終始

나라 은혜 종시 쇠함 없으니 / 試看終始恩無替

언제나 기운은 서로 통하는고야 / 終始氣相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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崇墉 높은 담이나, 높은 성벽 (高墙.高城)

崇- 높다/ 높이다/ 모이다/ 채우다/ 마치다/ 세우다/ 일으키다

崇丘- 높은 산/ 崇麗- 높고 화려함/ 崇城- 천자를 이름/ 崇椒- 높은 산봉우리.

崇廈- 높고 큰 집/ 崇病- 중병

- 높은 담 용. 보루 용. 鏞과 통하여 매단 鐘의 뜻

큰 종처럼 도시의 주변에 원기둥 모양으로 둘린 성벽의 의미를 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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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이 우뚝 솟구쳐서 높은 성벽 압도하네 / 巍巍椶殿壓崇墉

높은 담 우뚝 솟아 뛰어넘기 어려우며 / 崇墉屹屹難輕渡

백 길의 높은 성 궁륭처럼 걸쳐 있네 / 崇墉百雉跨穹嶐

높은 담장 천치의 성이 구름 위에 치솟아라 / 崇墉千雉入雲平

높고 큰 성벽이 천하에 웅장해라 / 崇墉巨壁天下壯

떠도는 구름 저 끝으로 휘돌아 든 높은 성곽 / 崇墉迤轉逗雲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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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婆娑城에 대한 논란 기록-----<조선왕조 실록에서 인용>

1. 선조 28년(1595 을미 ) 8월 6일(병오)

상이 비변사에 하교(下敎)하기를,

“파사성(婆娑城)을 의엄(義嚴)이 쌓았지마는, 성의 제도야 의엄이 어찌 알 수 있겠는가. 특별히 계려(計慮)가 있는 사람을 보내어, 성을 살펴보게 하기도 하고 혹 제도를 가르치게 하라.”

하였는데, 비변사가 회계하기를,

“성을 쌓는 데에는 법도가 있으니 만일 그 법도대로 쌓지 못하면 쌓지 않은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근일 외방에 왕왕 산성을 수축하는 공사가 있기는 하나, 그 살받이[垜]·치첩(雉堞)·누로(樓櫓)·성문·옹성(甕城)의 제도를 다 헤아려 처리하지 않고, 산세의 굴곡만을 따라 성을 만들 뿐 그 요점을 알지 못하였으므로 인력만 허비하고 적을 막는 데에는 도움이 없게 되었습니다. 심한 경우에는 구차히 책임만 때워서 버팀목을 빼내기도 전에 성이 무너지니, 이와 같은 성을 장차 어디에 쓰겠습니까. 신들이 항상 ‘이 일을 이처럼 엉성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여 관원을 내려보내어 살펴보게 하기를 계청하였으나 시방 일이 많아서 미처 입계(入啓)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상의 하교를 받드니, 지극히 합당하십니다. 파사성에 우선 사지 낭청(事知郞廳) 1인을 보내어 그 기초 설계도를 그려 오게 한 뒤에 다시 지시하여 수축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하니, 상이 따랐다.

2.선조 28년(1595 을미) 11월 4일(임신)

훈련 도감이 아뢰기를,

“강 연변에 진영을 설치하는 일에 대해서는, 지난 해에는 결딴나서 의거할 데가 없었습니다. 금년은 도감에서 둔전(屯田)을 대강 설치하였고 또 파사성(婆娑城) 이하 한두 곳에도 건설을 시작하였으니, 이듬해에는 불가불 점차 수하(水下)에 배치하여야 할 것입니다. 행주(幸州)도 또한 형세가 극히 유리한 지역으로 우리 나라가 일찍이 그 이익을 힘입었으니, 1개 진영을 배설하여 용산(龍山)과 형세가 서로 통하게 해야 할 것으로 조치하는 일을 바야흐로 도감에서 조처하고 있습니다. 다만 산 아래 돌아와 모여 있는 백성들이 혹 부역에 지쳐 보전할 수 없으니, 행주와 독성(禿城)의 예에 의하여 성안으로 들어가 거주하는 사람에게는 다른 부역을 다 면제하여 다수가 와서 모이도록 하소서.”하니, 상이 따랐다.

3.선조 38년(1605 을사) 10월 9일(경술)

경기 감사 이정구(李廷龜)가 치계하였다.

“본도에 이른바 보장(保障)이 될 만한 곳이 5∼6처인데, 강화(江華)와 독성(禿城)과 죽성(竹城)은 성지(城池)가 완벽하고 형세 또한 좋아 위급할 때 믿을 만하지만 한수(漢水) 북쪽의 파사성(婆娑城)과 용진(龍津)의 진마 산성(陳馬山城) 같은 곳은 퇴락한 지 이미 오래되어 지금 수리하려 하여도 많은 인력이 요구되며 형세도 천로(淺露)한데다가 샘물도 없어 성을 지키면서 적을 방어하기에 결코 좋은 곳이 못되므로 신은 이를 몹시 위태롭게 생각합니다. 만약 위급한 일이 생기면 강화 등지는 지킬 수 있다 하겠으나 한수 북쪽은 의지할 만한 곳이 하나도 없으니 실로 장구한 계책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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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지금 파사성은 수축 공사가 진행 중인 어수선한 상태로 놓여 있다. 공사가 중단되고 있는 듯했다.

일흔 살 늙은이의 걸음으로 남문지 쪽으로 오르는 길은 30 여분, 내려올 때는 40 여분을 걸려 하산하였다. 파사산 옹성에서 아래쪽으로는 이포 대교, 그리고 개군면 향리 마을 뒷산인 추읍산이 뿌옇게 보였다. 선조들이 이 파사성을 바라보면서 쓴 많은 시문들의 내용들을 다시 한 번 음미하게 되었다. 내려오는 길에 노랗게 피어 있는 애기 똥 풀이 정감스러웠고, 성바닥을 기어가는 뱀 한 마리가 이제는 여름으로 접어들고 있음을 실감하였다.

개군면 향리 마을은 내 부모님들의 육신적인 고향이다. 더욱 더 부모님의 숨결 소리를 가까이서 느끼고 왔다.

내 조상 님 <청음>과 <삼연> 님의 시들도 있지만 우선 현주님의 시 감상을 곁들여 파사성을 음미하였다.

서애 유성룡 선생님이 쓰신 시 한 편을 다시 꺼내 읽으며 거의 한 시간 이상을 파사성 정상에서 보냈다.

파사성 위에는 풀이 더부룩하고 / 婆娑城上草芊芊

파사성 아래에는 물이 빙 둘렸네 / 婆娑城下水縈廻

봄바람은 날마다 끊임없이 불어 / 春風日日吹不斷

지는 꽃잎 무수히 성 모퉁이에 날리네 / 落紅無數飛城隈

도인의 신령스러운 눈 하늘의 묘리를 알아 / 道人神眼覷天奧

밤 사이 곤명지에 겁회가 생겼네 / 一夜昆明生刦灰

금강 역사 백만이 지휘를 받드니 / 金剛百萬奉指揮

큰 칼 긴 파람으로 강대에 임했네 / 尺劍長嘯臨江臺

<<파사성(婆娑城)에서 의엄(義嚴) 장로(長老)에게 써 줌

을미년(1595, 선조28)-- 고전 번역원 자료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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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사성에  기록한 여러 개의 안내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