田翁 전옹-----------
시골 농부
이 영보 李英輔 <1687-1747>
조선 후기의 학자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몽여(夢與), 호는 동계(東溪).
문집: 동계유고(東溪遺稿)
산에 해지자
밭갈이 끝내
숲 속 길 따라
소 몰고 가네.
들판 길 멀리
사립문 보여
큰 나무 사이
연기 올라라.
▶ 輟耕山日落철경산일락 林逕驅牛去임경구우거
遙野望家門요야망가문 煙生喬木處연생교목처
< 출전 東溪遺稿 권1>
輟 그칠 절 耕 밭갈 경 逕 좁은 길 경 驅말몰 구 遙 아득할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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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이해▶
서산에 해가 진다. 깊은 땀 흘리며 소와 함께 오늘의 밭갈이가 끝났다.
늙은 농부의 잠방이에도, 그리고 소의 등에도 흠뻑 젖어 있다. 사래 긴 밭을 다 갈아 치우고 이제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언덕 너머 보이는 둥구나무 옆
사립문 초가집에는 저녁연기 몽실몽실 멀리 피어오른다. 들판에서 돌아오는 남편을 위해 아내는 부지런히 저녁 상 차림의 준비를 하고 소가 먹을 여물도 쑤어야 한다.
들판에서 돌아오는 남편을 위한 기다림 그런 아내의 사랑이 연기와 함께 집안에 퍼져 있다. 시제는 늙은 농부를 뜻하는 田翁이다. 코끝에 스며오는 향긋한 시골 냄새가 풍겨오는 듯한 시골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된장찌개 맛처럼 다가오는 옛날의 시골 모습이다. 喬木이라는 나무로 오랜 세월 전통을 지키며 살아온 농부의 삶의 고향이요, 터전이었음을 알 수가 있다.
지금과는 다른 하나의 농촌풍경이다. 고달픈 삶의 일정이다. 그러나 다가올
가을걷이를 기다리는 희망이 있기에 오늘 하루 고달팠어도 또 내일의 해를 기다리며 살아가던 옛 농부의 모습이다.
2 음보의 리듬에 맞추어 해석을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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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연< 기 승> 밭갈이 끝나고 돌아옴 < 서산에 해 짐>
3 .4 연< 전 결> 시골집의 저녁 풍경 < 저녁연기 피어오름>
배경: 시간적 배경. 공간적 배경의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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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 이해▶
田翁 시골에서 생활하는 늙은이.
비슷한 말 :·촌로(村老)·촌수(村叟).
• 마치 농부가 호미 메고 가래 들고 / 有如田翁荷鋤携長欃
• 촌 늙은이는 항상 유여한 낙을 누리나니 / 田翁常做閑閑樂
• 한 보습 비가 토맥을 녹이니 / 一犁敷土脈
아름다운 기운은 농사짓는 첨지에게 속했네 / 佳氣屬田翁
• 시골 노인의 두터운 정은 하도 고마워라 / 多謝田翁情不淺
술병 갖고 와서 또한 다정히 위로해주네 / 持壺亦復慰殷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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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거정(徐居正 : 1420 ~ 1488)의 望田家<전가(田家)를 바라보다>의 시
논밭 다 갈고 들판에서 소는 한창 살찌고 / 耕罷原頭牛政肥
누에는 고치 이루어 뽕잎도 듬성하구나 / 野蠶成繭桑葉稀
농가의 늙은이가 어찌 세간의 일을 알랴 / 田翁豈識世間事
백발로 청산 마주하여 시비할 게 없는걸 / 白髮靑山無是非 < 번역원 자료>
※묵묵히 청산을 벗해 논밭 갈고 누에치며 삶의 즐거움을 누려가던 옛 농부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다음의 글은 농촌의 옛 정경이 그려져 있다.
이덕무(李德懋) <1741∼1793>의 단비를 읊음(喜雨頌)이라는 시이다.
霡霂沾濕。日以復夜。沾者榮者。生者起者。山河生色。動植均化。
農夫田翁。荷鍤如雲。饁彼南畒。以耔以耘。灌水移秧。婦子殷勤。
豊年之象。處處以聞。
맥목첨습。일이부야。첨자영자。생자기자。산하생색。동식균화。
농부전옹。하삽여운。엽피남묘。이자이운。관수이앙。부자은근。
풍년지상。처처이문
이슬비 보슬보슬 적시어 종일토록 내리더니 밤에도 오니
젖은 자는 무성해지고 산 자는 일어나네. 산하에는 생기가 돌고
동식물이 모두 덕택 입었네.
농부와 전옹(田翁)들이 삽을 메고 구름같이
저 남쪽 들에서 점심밥 먹으며 밭을 갈고 김을 매네
물을 대고 모내기하니 아내와 자식들과 정답네
풍년이 들 조짐이라 곳곳에서 풍년가 들려오네 < 고전번역원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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輟耕 밭갈이를 끝냄.
• 농부들은 밭갈기를 멈추고 구경하네 / 田人徒作輟耕觀
• 신야에서 밭 가는 것을 그만두었네 / 輟耕莘野田
• 진왕이 농사 그만둔 것 우습기만 하구나 / 却笑陳王輟耕耟
※진왕(陳王) 진승(陳勝)을 가리킨다. 그는 품팔이꾼으로 농사일을 하다가 “이 다음 부귀하게 되면 잊지 않겠다.” 하니 사람들은 품팔이 주제에 무슨 부귀냐고 비웃었다. 진승은 “작은 새야 어찌 홍곡(鴻鵠)의 뜻을 알겠는가.” 하며 농사일을 걷어치웠다. 뒤에 오광(吳廣)과 함께 군중을 모아 폭정을 자행하던 진(秦)에 반기를 들고 스스로 왕이 되었다. 《史記 陳涉世家》 <번역원 자료 인용>
林逕 숲속에 난 작은 길
• 한 줄기 긴 오솔길 이리 긴 줄 몰랐구나 / 却忘林逕一條長
• 숲길을 뚫고 지나가는 그윽한 냇물 소리 / 澗溜穿林逕
• 맑은 가을 산 숲가서 때때로 즐기고 / 秋晴林逕時行樂
驅牛 소를 몰고 감
소: 느릿느릿 걷는 여유로움. 순박한 천성, 옛날 농부들의 삶의 동반자
• 하루 내내 소와 말을 몰고 가나니 / 終日驅牛馬
• 달빛 띤 채 소를 몰고 돌아오네 / 帶月驅牛還
• 채장으로 소를 몰아 농사 시작 알리누나 / 彩杖驅牛啓東作
• 늙은 농부 소를 몰고 밭 찾아 가는 곳이 / 野老驅牛向田去
• 소를 몰고 어디로 가는고 / 駈牛何所之
날이 저물어 산마을로 돌아간다네 / 暮向山中繫
遙野 멀리 보이는 들판
• 팔각이라 늘씬한 자세 먼 들판으로 날아갈 듯 / 八角勢飛遙野外
• 어슴프레 꽃이 먼 들에 떨어지고 / 昏花落遙野
• 사방의 산 먼 들판에 또 석양이 걸리었네 / 亂山遙野又斜陽
• 아득히 푸른 풀은 먼 들판에 서로 연하고 / 迢迢綠草接遙野
• 아련한 들녘빛이 눈에 들어와 / 遙遙野色來
• 시야는 먼 들판에 어른거리고 / 昏花落遙野
• 먼 들에 우연히 농사를 순찰하고 / 遙野偶巡稼
喬木 키가 큰 나무. 줄기가 곧고 높이 자라서
가지가 퍼지는 나무 소나무, 전나무 등 喬樹
여기에서는 마을 앞에 서 있는 크고 오래된 정자나무 즉 둥구나무로
고향 마을을 함께 지키고 있는 나무이다. 농부의 고향을 지켜가는
삶의 휴식 터요, 수호신 같은 나무. 마을이 그만큼 오래되었음을 암시.
• 마을마다 대 물린 나무가 있고 / 村村自喬木
• 둥구나무 황폐한 집을 덮었네 / 喬木擁荒廬
• 뜰 앞에 둥구나무 있으니 / 庭前有喬木
• 낮은 담에 높은 나무 옛집에 임했도다 / 短墻喬木舊窺臨
• 고목나무 즐비하게 늘어선 과천현 성곽 / 縣郭多喬木
• 대대로 임금 보필한 명가의 후예 / 喬木名家有世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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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계 유고>라는 문집이 지은이가 각각 다른 여러 개의 문집 이 있음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동이라는 글자가 東과 桐, 그리고 溪와 谿가 서로 글자가 달랐다. 국립도서관, 그리고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등에 그 자료들이 있으나 대략적인 해설뿐 구체적인 내용들은 거의 번역이 된 것이 없어 지난 세월을 살아가시며 남겼던 그 궤적들을 쉽게 알 수가 없었음에 매우 안타까움을 가졌다. 그 언젠가는 번역이 다 되어 그 후손들이 모두 다 볼 수 있도록 하였으면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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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집 |
지은이 |
본관 |
자 |
아호 |
비고 |
東溪遺稿 |
李英輔 1687~1747 |
延安 |
夢興 |
東溪 |
|
東溪遺稿 |
安承采 1855∼1914 |
順興 |
繪卿 |
東溪 芝山 |
|
桐溪遺稿 |
李時馨 1825-1860 |
全州 |
聖仲 |
桐溪 |
|
東谿遺稿 |
宋晦錫 1658∼1688 |
恩津 |
希文 |
東谿, |
哀辭 1首 金壽恒書. 挽詞에는 金壽增 .金壽興 |
1. 東溪遺稿
이영보李英輔(1687~1747)의 詩文集. 1759년(英祖 35) 그의 아들 李廣源과 李述源이 遺文 을 蒐拾, 編輯했으며 序文은 兩館大提學 南有容이 지었다.
李英輔의 字는 夢興, 號는 東溪, 本貫은 延安, 通德郞 李華臣의 아들, 1714년(肅宗 40) 進士試에 壯元, 1717년 靖陵參奉을 지내고 1743년에 金城縣令으로 있다가 1747년 병이 심하여 벼슬을 버리고 落鄕했다. 聰明하여 經傳, 史記 및 莊騷老佛까지도 깊이 연구했다 한다.
卷{1~3}:山 水, 樹亭 등 자연풍경을 읊은 詩로서 五言絶句, 五言律詩, 七言絶句, 七言律詩로 되어 있다. 卷{4}:書, 序, 記, 雜著, 行狀, 祭文 등. 그 중 書에는 兪展甫宜叔 등과 문답한 書翰, 記에는 觀水樓記, 琴書堂記, 雜著에는 贈司憲府持平金晥褒孝呈文後, 晋菴稿의 標題를 해설하는 晋損說이 있고, 逆賊 李麟佐亂에 殉死한 南延年, 李鳳祥, 洪霖 등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忠烈祠에 대한 <忠烈祠奉安禮成後論諸生>, 行狀에는 外三寸 贈 中直大夫司憲府執義 申思遠의 行狀이 있다.
附錄에는 李文輔의 저술인 <大觀遺稿>가 있다. 그는 李英輔의 아우로서 字는 尙絅, 號는 大觀, 李陽臣에게 入養했으며 進士試 에 壯元하고 詩로써 유명했으나 일찍 죽었다.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해설 인용>
2. 東溪遺稿
안승채(安承采)(1855년(철종 6)∼1914년)의 시문집.
조선 말기의 유학자로, 초명은 안보순(安輔淳)이고, 자는 회경(繪卿)이며, 호는 동계(東溪) 또는 지산(芝山)이다. 본관은 순흥(順興)이다.
기골이 준걸하였고 성품은 굉장하고 훌륭하였고, 7 세부터 배움에 들어 스스로 학문의 문리가 통하였다고 하였다. 점점 자라면서 천문 지리 의술 분야에도 섭렵하였다. 그의 재주가 조정에도 알려져서 내무부주사(內務府主事) 충주부주사(忠州府主事) 로 천거되기도 하였다. 정유년1897 년에는 부모의 상을 당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술과 시문으로 나라를 걱정하는 비분강개의 심정을 읊으며 보냈고,1905 년 을사 보호조약이 체결된 후로는 술병 들고 건을 벗고 짧은 저고리에 삿갓을 쓰고 다니면서 낚시도 하고 초동목부와 어울려 우스갯짓<謔浪>을 하면서 소요했다고 한다. 그의 문집은 전부 8 권으로 다음처럼 구성을 이루었다.
권1에서 5까지는 전부 시로서 오언 절구 오언 율시 고시 4 언 6 언 7 언 절구의 시와 장편 5 언 7 언시 또 7 언 율시로 이루어졌다. 권1에는 부록으로 雲山四章이라는 4 언시도 있다. 다음은 秋夜라는 제목의 6 언 절구의 시이다.
螢火輝輝帶雨 虫聲喞喞吟秋
夜深人寂無寐 獨自心中隱憂
권 6은 書 與 趙子胤이라는 글을 시작으로 여러 편의 편지 글로 모아졌다.
권 7 은 序 記 跋 論 銘 贊 婚啓 제문 행장으로 구성이 되어 있다.
권 8 은 부록으로 행장 .묘갈, 만사, 등으로 이루어졌다. 권 7 에 나오는 행장에는 고조, 조. 종조 종숙부 등의 행장이 소개되었고, 권8 의 행장에는 동생 承大가 쓴 안 승채(安承采)의 행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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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桐溪遺稿
李時馨 (1825 순조 을유 25년 - 1860 철종11년 경신)의 시문집
본관은 전주인(全州人)으로 세종대왕의 4 남인 臨瀛대군의 후손이다.
자는 성중(聖仲), 호(號)는 동계(桐溪)이다. 문장(文章)이 뛰어나 사람들에게 추앙을 받았다
동계유고는 다음처럼 구성되었다.
序 1900 년 경자 년 趙敏植
詩 偶吟. 寓中所懷 . 四月 漫吟. 庚申初夏客中吟. 旱天吟. 喜雨中吟 등 여러 편의 개인적인 감정을 서술한 시들이 있다. 시제에 전부 吟을 붙인 것이 특이해 보인다. 친구들이 쓴 시도 기록하였다.
文 鳳鳴齋重修 鳩財文 乙卯年 慈親 姜氏周甲晬辰 獻頌文 乞燭文 銘 表 등이 있다.
부록 행장 戊戌 년에 趙獻植이 씀. 墓碣銘 招魂詞
鳳鳴齋 序 鳳鳴齋記. 上樑文 孝烈婦傳 恩褒序
跋 曾孫 正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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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東谿遺稿
宋晦錫(1658∼1688)의 詩文集.
1冊(59張) 新式活字本 28.7×18.6cm
一九二九年二月水原驛前宋秉滉寄附本
8代孫 奎憲이 1929년 간행했다. 뒷장 이면에는 「一九二九年 二月 水原驛前 宋秉滉 寄附本」이라고 붓글씨로 쓰여진 글귀가 있다. 著者의 字는 希文, 號는 東谿, 본관은 恩津, 時烈의 손자. 郡守 基泰의 아들. 祖父 밑에서 교육을 받다가 1675년(肅宗1)에 祖父가 服喪문제로 德源, 熊川을 거쳐 1679년 巨濟島로 유배되자 祖父를 따라 巨濟島까지 갔으며, 1680년 祖父가 석방된 후 고향으로 돌아왔다. 1683년 鄕試에 일등으로 합격하고 이듬해 小科에도 합격했으나 奇疾에 걸려 5년간의 病苦 끝에 30세로 사망했다. 監司 金萬吉, 參議 崔奎瑞 등과 交遊했다. 卷上:賦 1首(和感春賦), 詩 61首, 書 12首(上外舅 12首), 記 1首(夢遊楓嶽記), 祭文 2首(祭同春先生文, 祭李子久留韻). 卷下(附錄):墓表, 行狀(仲兄 疇錫撰), 墓誌銘, 祭文 4首, 哀辭 1首(金壽恒書), 挽詞 39首(朴世采 등), 記述 5首. 卷末에는 宋奎憲의 追書가 있다.挽詞에는 金壽增 金壽興이 쓴 것도 보여 우리 안동 가문과도 친밀한 교유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해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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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들의 환한 꿈을 심어주는 가을의 황금들판이 펼쳐지고 있는데-------------
곤파스 태풍으로 거의 황금벼들이 쓰러져 있는 모습에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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