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彈琴臺 (탄금대)
【지은이】 황 오(黃五) <1816년(순조 16)∼미상)>
본관 장수(長水). 자 사언(四彦), 호 녹차거사(綠此居士)· 한안(漢案)· 동해초이(東海樵夷)·
녹일(綠一). 일명 황리노(黃里老)
녹일(綠一)綠一이라는 호는 ‘압록강 이남에서 제일’이라는 뜻이며,
녹차(綠此)의 의미는 <북한의 압록강의 푸를 록(綠)자를 따고 이를 차(此)를 붙여서 압록강 이남에는 나를 따를 자가 없다는 뜻이다.>
한안(漢案)은 송나라 시인인 黃庭堅과 같은 성씨로 중국의 名簿에 오를 수 있다는 뜻에서 自號한 것이다.
경남 함양(咸陽)출생. 그와 교유한 문인-- 김정희(金正喜), 그의 동생 김상희(金相喜).김재현(金在顯),조두순(趙斗淳),민규호(閔奎鎬),박규수 (朴珪壽), 김병연(金炳淵), 김병학(金炳學), 신석우(申錫愚),조재응(趙在應), 조면호(趙冕鎬), 홍한주(洪翰周) 등
황오 선생은 경상북도 상주시 모동면 수봉리가 고향으로 수봉리에는 녹차선생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고 한다. 황오의 墓所는 尙州 壽峰里 花田(꽃밭모리)에 있다고 한다.
東風東望彈琴臺
戰壘愁雲鬱未開
天地無功軍背水
江山有恨客啣盃
漁村雨帆忠州入
海戍春烽鳥嶺來
日落不逢申壯士
平沙漠漠白鷗廻
黃五의?黃綠此集?68쪽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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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에 동으로 탄금대 바라보니東風東望彈琴臺
격전지 근심스런 구름 가득히 모여 있네.戰壘愁雲鬱未開
천지는 공 없는데 군대는 물을 등지고 天地無功軍背水
강산은 한이 서리고 객은 술잔을 머금는다.江山有恨客啣盃
어촌의 비 맞은 배 충주로 들어가고漁村雨帆忠州入
바다 지키는 봉수대 연기 조령을 너머 오네.海戍春烽鳥嶺來
해 저물도록 신 장사는 만날 수 없고日落不逢申壯士
아득한 모래톱에 백구만 빙빙 도네.平沙漠漠白鷗廻
<李聖惠 교수님의 번역>
【부산대학 李聖惠 교수님의 평설】
아래의 글은<黃五 문학에 나타난 유랑지식인적 자화상> 이라는 학술 논문에서 일부 인용한 것이다. 이 교수님은 黃五를 유랑지식인으로 명명을 했으며 그 의미는 조선조 후기, 주로 18세기에서 20세기 초에 활동한 그러나 체제에 수용되지 못한 지식인을 한정해서 말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이 시는 <蓬來舘集>에는 「道中」이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탄금대는 충청북도 충주시 칠금동 大門山에 있다. 우륵이 가야금을 즐겨 탔던 곳이라 해서 붙여진 탄금대는 그러나 임진왜란 중에는 申砬 장군이 小西行長을 맞아 싸우다 달천에 몸을 던졌던 격전지다.
황오가 서 있는 당시는 임진왜란으로부터 약 260년이 흐른 뒤다. 그런데 격전지엔 여전히 근심스런 구름이 걷히지 않고 있다.[頭聯] 왜인가? 이 시가 정확히 언제 쓰였는지 알 수 없지만 1850년 전후일 것이고, 이때 또 다시 일본의 검은 야욕이 서서히 조선을 덮고 있었다. 황오는 임진왜란 당시와 그 자신의 시대 상황을 생각하며 조국을 염려한다. 근심스런 구름은 시인의 마음이다. 頷聯은 임진왜란 당시 이미 아군의 열세로 패색이 짙었는데,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친 신립장군과 결국 참패하고 순절한 그와 그들 부대원 그리고 충주의 士民들을 말한다. 그 안타까움에 강산도 한이 어렸고, 황오는 술을 마신다. 바다를 지키고, 나라를 지키려는 봉수대 연기는 그때도 지금도 조령을 넘어 날아오건만 달천에 몸을 던진 신립장군은 다시 만날 수 없고, 조국은 또 다시 일본의 검은 구름에 덮여간다. 그러나 백구는 아는 듯 모르는 듯 한가롭게 모래톱을 빙빙 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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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가 조사한 바로는 大東詩選 卷九 53 쪽에는 다음처럼 기록이 되어 있다.
자 四衍 호 漢 案 綠此 長水인으로 소개를 하였고, 대동시선에 百舌鳥 鞦韆詞 탄금대 聽鐘 鳶등의 시를 소개하고 있다. 이 시는 세 번째로 실려 있다.
東風東望彈琴臺
戰壘愁雲鬱未開
天地無功軍背水
江山有恨客啣盃---啣이 含으로 표기
漁村雨帆忠州入--雨가 暮로 표기.
海戍春烽鳥嶺來
日落不逢申壯士
平沙漠漠白鷗廻
♠ 필자의 생각으로는 글을 옮기신 분이 어떤 문집에 실려 있는 시를 옮긴 것인가에 따라 다를 수 있어 오자로 보기에는 무리라고 생각이 되며 더욱 깊은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판단된다. 학자들의 논문에서 이런 경우를 필자는 너무 많이 보고 있다.
인터넷에는 황오를 黃伍로 綠此集에서 綠을 鹿 /錄으로 此를 比로도 기록 하고 있어 이런 혼란들이 하나로 정리가 되었으면 하는 필자의 간절한 바램이다. 좋은 학습을 마련하게 해주신 충주의 不二堂님께 깊은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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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오 선생의 문집 표지
오른쪽은< 대동시선>에 실린 시이고, 왼쪽은 <황록차집>에 실린 탄금대 시이다. 황록차집은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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