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한담/수상

봄비가 오는 시간에

백촌거사 2007. 3. 2. 16:11

봄비가 내린다.

깊게 얼어 있던 겨울 땅을 녹이는 봄비가 잔잔히 떨어지고 있다.

어린 초록의 싹들이 싱싱한 생명력의 윤기를 보이며 솟아나고 있다.

현대시인 이 수복 시인의 봄비가 가슴에 와 닿는다.

이 비 그치면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서러운 풀빛이 짙어오것다.

푸르른 보리밭길

맑은 하늘에

종달새만 무어라고 지껄이것다.

이 비 그치면

시새워 벙글어질 고운 꽃밭 속

처녀애들 짝하여 새로이 서고

임 앞에 타오르는

향연과 같이

땅에선 또 아지랑이 타오르것다.

생동감 있는 자연의 정경이 눈에 선하다. 벌써 산 속에는 이름 모를 산새들의 진한 울음이 청랑한 산을 만들고 있다. 봄비는 은은하고 정밀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비다. 정몽주 시에는 물방울이 보이지 않는 비라고 하였다.

春雨細不滴 夜中微有聲 춘우 세부적 야중미유성

雪盡南溪漲 草芽多少生 설진 남계창 초아다소생,

봄비 소리없이 가늘게 내리며 밤중엔 조금씩 빗방울 소리 크게 들리네

눈녹아 내려 시냇물이 불어나니 새 싹들이 돋아나겠지

창문 밖으로 떨어지는 봄비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옛 선인들의 비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생각이 난다. 희우( 喜雨 ). 고우( 苦雨 ), 세우( 細雨 ) , 감우( 甘雨 ) 등의 제목으로 쓰여진 시들이 의외로 많다. 시인의 주관적인 느낌에 따라 봄비도 반가운 비요, 단비가 될 수도 있겠고, 슬픔을 담은 눈물의 비일 수도 있겠지만 대체로 봄비는 생동감 있는 자연으로 만들어 인간 모두에게 환희와 희망의 정서를 뿌려 주는 비는 아닐까.

넓고 아득한 들판에 햇살 오히려 번쩍이고 郊原浩渺猶翻日

푸르른 골짜기엔 구름도 넘실넘실 넘치네 澗谷蒼茫欲漲雲( 고봉 기대승의 희우 )

천심을 창조해가는 이치 변함 있겠나 天心肯斁生生理

만물은 진정 용솟음 치는 정 품고 있네 物色眞含浡浡情 ( 고봉 기대승의 희우 )

모든 산과 들에 생기가 돌고, 대지에 기름을 붓는 봄비가 내리고 있다. 겨울 속 움츠리고 있던

나태하기만 했던 마음에 큰 위안을 주고, 신뢰를 주는 봄비가 주룩주룩 가슴을 적시고 있다.

반가운 비 라는 칭송의 喜雨頌이 생각이 난다.

이슬비 보슬보슬 적시어

종일토록 내리더니 밤에도 오니

젖은 자는 무성해지고

산 자는 일어나네

산하에는 생기가 돌고

동식물이 모두 덕택 입었네

농부와 전옹(田翁)들이

삽을 메고 구름같이

저 남쪽 들에서 점심밥 먹으며

밭을 갈고 김을 매네

물을 대고 모내기하니

아내와 자식들과 정답네

풍년이 들 조짐이라

곳곳에서 풍년가 들려오네( 이덕무의 청장관 전서에서 민족문화 추진회 자료에서 발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