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한담/수상

강동구 일자산에는 둔촌 선생님의 교훈이

백촌거사 2007. 3. 21.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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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동구  일자산 ( 一字山 ) 정상에는

 

  둔촌(둔촌(遁村 ) 이 집(李 集 ) 선생님의

 

       독서 교훈이 넘치고

 

 

 

 

 

 

 

 

대학 사회학과를 졸업하고도 적성이 맞지 않아서인지 몇 년 간 자동차 정비를 배우고 남의 밑에서 열심히 기슬을 닦던 큰아들이 새로 둔촌동에 카센타를 차렸다. 아버지로서 격려도 할 겸 위로차 다녀오던 길에 둔촌동 지명의 유래도 궁금하고 일자산에도 오르고 싶어 그냥 여유로운 마음으로 일자산 해맞이 동산 정상까지 올라갔다. 늦겨울이라 산에는 아직도 시꺼먼 나무들만이 겨울 산의 적막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산을 오르고 내리며 운동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왕래를 하고 있었다.

 

산의 정상에 올라가 비로소 둔촌동 지명의 유래가 왜 생겨났는지를 알게 되는 작은 지식의 보람을 얻어 가지고 왔다. 둔촌은 이 집 대학자의 아호였다. 이 집이라는 분은 광주이씨의 중흥시조로 고려 말에 정몽주, 이색, 이숭인 학자와도 교류를 하였고, 신돈의 학정에 피신을 하였다가 신돈이 죽고 난 후에 다시 벼슬길에 올랐으나 벼슬길을 사직하고 여주에서 독서로 묻혀 살던 은둔학자였음을 집에 돌아와 구체적으로 알게 된 것이다. 해맞이 동산 서편에는 둥근 단 하나가 있었고, 그 위 돌 비석에는 둔촌 이 집의 교훈적인 한시 한 수가 씌어져 있었다.

 

한자 만으로 씌어진 것에 무척이나 아쉬움을 가졌다. 오가는 산을 찾는 많은 사람들에게 한글로도 한자 독음을 달아 놓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몇 사람이나 그 글을 읽고 의미를 전달을 받을까, 어려운 한자들도 있어 강단에서 교편 생활을 하였던 나에게도

두 개의 어려운 한자가 의미를 해석하는데 애를 먹게 하였다. 둔촌동에 대한 확실한 유래를 알게 되었고, 광주 이 씨 분이라는 사실도, 그리고 집에 있던 사전 등에 소개된 이 집이라는 분의 출생연대가 잘못 기록이 되었다는 사실을 광주 이씨 문중에 질문을 드려 알게 되었다.

어떤 사전에는 출생 연대가 충숙왕 1년 1314 년으로 기록이 되어 있었다. 충숙왕 14 년 1327 년을 잘못 표기한 기록의 과실이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만일 오늘 일자산을 오르지 않았더라면

 

이집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출생연대를 잘못 알고 지내는 지식인의 오류를 범하게 되었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 모르는 한자 두 개를 찾아 해석을 해 보고 확실한 의미를 알게 된 뿌듯함을 맛보게 된 것이다. 이제 둔촌동 하면 은둔 학자 이 집이 생각나고, 이집을 더욱 가깝게 느껴지게 되었으며, 일자산 정상이 더욱 친밀하고 아늑한 산으로 다가왔다. 일자산 정상에는 이 집 선생 님의 독서를 하라는 산의 포효가 겨울 산에 퍼지고 있는 것 같았다.

( 힘쓸 자 ) (말 달릴 침 ) 籯(+亡+口+月+貝+凡범 광주리 영. 광주리에 죽망구 월패 범이 담겼다. 이렇게 머리에 익혔다. )

 

讀書可以悅親心 ( 독서가이열친심 )독서는 어버이 마음을 기쁘게 함이라

勉爾孜孜惜寸陰 ( 면이자자석촌음 ) 시간을 깊이 아껴 힘써 독서하라

老矣無能徒自悔 ( 노의무능도자회 ) 늙어서 무능하게 되면 후회가 되리라

頭邊歲月苦駸駸 ( 두변세월고침침 ) 머리맡의 세월은 괴롭도록 빠르니라

遺子滿 ( 유자만영금 ) 자식들에게 광주리에 가득 담아 금덩어리를 주어도

不如敎一經 ( 불여 교일경 ) 경서 한 권 가르침보다는 못하니라

此言雖淡薄 ( 차언 수담박 ) 이 말은 비록 쉬운 말이나

爲爾告丁寧 ( 위이 고정녕 ) 자식들 위해 간곡히 알려 둠이니라.

                      ( 長兒遊學佛國寺。以詩示之에서)

 

이 집이라는 분을 더 알고 싶어 여러 자료들을 읽고 다음과 같은 한시 하나가 마음이 들어 음미를 하였다.

天地無涯生有涯 ( 천지무애 생유애 )

浩然歸去欲何之 ( 호연귀거욕하지 )

驪江一曲 山如畵 ( 여강일곡산여화 )

半似 丹靑半似詩 ( 반사단청반사시 )

 

(제목 : 驪州 題詠)

천지는 끝이 없고 삶에는 끝이 있네.

.가고픈 마음은 간절하나 어디로 가려는가

여강( 지금의 여주강 )은 한 굽이요 청산은 그림같아

반은 단청이고 반은 시와 같으니라 .

일자산을 다녀와 고덕동 내 집으로 와서는 이 집이라는 분의 자료들을 탐색하느라고 밤이 늦도록 침잠하였다. 강단을 떠나 사는 나에게 다시 일자산은 배움의 불을 담아 주었다. 더 늙어 가기 전에 많은 배움의 시간을 갖겠다고 스스로를 격려하였다.

 

老去貧兼病 ( 노거빈겸병 )

( 눍어감에 가난해지고 병이 드네 )

憂來悲且歌 (우래비차가 )

( 근심은 오고 또 슬픔의 소리 일뿐 )

秋風又蕭瑟 (추풍우소슬 )

( 가을 바람은 또 쓸쓸하구나 )

世事易蹉跎 (세사이차타 )

( 세상사 모든 일이 쉽게 미끄러지기만 하는구나 )

                                                    (遁村雜詠 五言絶句 病中書懷에서 )

 

세월이 가고 늙어지면 모든 세상사가 다 가을 바람처럼 쓸쓸해 지는 것일까. 떠오르는 태양의 눈부신 화려함도 아름답지만 지는 노을의 황금빛 아름다움도 못지 않게 아름답지 않은가.

 

가벼운 마음으로 오늘 일자산을 다녀와 좋은 가르침 하나를 얻어 가지고 온 것이다. 이제 나에게 일자산은 독서를 다시 깨우치게 한 산이었다. 주자가 말한 다음과 같은 권학시를 다시 한 번 음미해 보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少年易老 學難成 一寸光陰 不可輕 未覺池塘 春草夢 階前梧葉 已秋聲이라는 싯귀 하나를 학생들에게 들려 주었던 내 20 여 년 전 생활이 불현듯 다시 그리워지고 있다.

 

이 집(李集):이 원령(李元齡)(1327(충숙왕 14)∼1387(우왕 13) )

  광주(廣州) 이(李)씨. 아호는 성로(成老), 호연(浩然),묵암자(墨巖子),

  둔촌(遁村)

아버지는 이당(李唐)이며 광주군(廣州郡) 구천면(九川面) 둔촌(遁村 : 지금 서울 강동구 둔촌동)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