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동 가문 시 모음/문곡 김수항 시 모음

문곡 김수항의 한시

백촌거사 2007. 3. 6. 13:11

 

 

문곡 김수항의 관유시 ( 觀遊詩 )

관유란 자연을 즐기고 있음을 말한다.

 

하나의 자연을 그림을 그리 듯 보여주는 묘화적인 수법의 몇 개 작품을 모아 보았다.

단순한 서경을 화려한 수사와 기교를 부리지 않았고 감정의 깊이 있는 노출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펼쳐 놓은 시다.

1. 幽居 ( 유거 ) 외딴 곳에 살며

幽居悄悄閉門時 ( 유거초초폐문시 ) 외딴집에 문 닫고 고요히 머물어 있으니

啼鳥催人睡覺遲 ( 제조최인 수각지 ) 수많은 새소리들이 잠을 깨우네

晩起小堂無一事 ( 만기소당무일사 ) 늦게 일어나 앉아 있으니 집에는 무료함뿐이로다

隔窻寒雨獨題詩 ( 격창한우 독제시 ) 창문을 대하고 있으니 찬비가 시상을 돋우는구나

찬비 내리며, 새소리만 들려오는 적막한 자연 속에 은거하며 시상에 잠기는 고요함만이 묻어 있는 시다.

2. 早起 ( 조기 ) 일찍 일어나다

睡起東窻 散日華 ( 수기동창산일화 ) 잠에서 깨니 창문엔 햇볕이 환히 비치고

春容霽色望中多 ( 춘용제색망중다 ) 봄빛 정경에 바라볼 일이 많아졌네

常憎啼鳥驚幽夢 (상증제조경유몽 ) 새소리 언제나 밉구나 그윽한 꿈을 깨우게 하니

最恨奚童掃落花 ( 최한계동소낙화 ) 제일 한탄스러움은 아이가 낙화를 쓸 때로구나

山帶濕雲知夜雨 ( 산대습운지야우 ) 산 속에 습한 구름 덮였으니 밤비가 옴을 알겠고

烟生遠樹問誰家 ( 연생원수 문수가 ) 안개구름 먼 숲에 퍼져 있으니 누구의 집인가를 물어야 하겠네

此中情境 眞堪畫 ( 차중정경 진감화 ) 이 산속 경치야말로 정말로 한 폭의 그림이라

欲向人間一一誇 ( 욕향인간일일과 ) 인간 세상을 향해 하나 하나 자랑해 보리라

단순한 감정으로 산 속의 정경을 보여주고 있다. 한 폭의 진경 산수화와 같다. 서정적인 자아는 오직 자연 속에 파묻혀 있을 뿐이다. 내면 속에는 지은이의 세속을 멀리 하고 싶은 욕구가 담겨 있는 시다. 율동적인 봄을 완상하며 한가롭고 여유로운 심정이 담겨 있다.

3. 靜座 ( 정좌 ) 고요히 앉아서

靜座無餘事 ( 정좌무여사 ) 아무 하는 일 없이 조용히 앉아 있네

孤村斷徃來 ( 고촌단왕래 ) 오가는 사람 하나 없는 외로운 마을

雨和黃葉下 ( 우화황엽하 ) 가을비 낙엽을 적시고

對碧峰開 ( 창대벽봉개 ) 창문 밖으로는 푸른 산봉우리가 보이네

果熟園成徑 ( 과수원성경 ) 과일 익어가는 정원엔 지름길 이루어졌고

庭荒草沒苔 ( 정황초몰태 ) 정원의 시든 풀들은 이끼 묻어나네

小堂秋望遠 ( 소당추망원 ) 작은 집에 앉아 멀리 가을 경치를 바라보니

幽興箇中催 ( 유흥개중최 ) 그윽한 경치 한 가운데서 마음만 바쁘네.

가을 경치에 빠져 한가롭고 여유 있는 마음으로 즐기고 있는 지은이의 서정이 표현되어 있다. 그야말로 靜中動 ( 정중동 )의 심정으로 자연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눈에 보이고 있는 그대로의 늦가을 경치를 묘화적인 수법으로 표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