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실린 시는 지난 달
< 시가 흐르는 서울 축제 >에 전시되었던 시들로서 서울시 각 지하철역에 전시되고 있다.
일흔 살 늙은이의 삶의 여유를 가지고 육체적으로 힘든 일이겠지만 틈이 나는 대로
간단한 지은이의 소개를 곁들여 편안한 느낌으로 감상을 펼치려고 한다.
우선 필자가 살고 있는 5 호선 <상일역>으로부터 출발해 보려고 한다. 각 지하철역마다 전시된 시 의 목록을 이메일로 보내준 서울시 문화 관광과 직원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어느 늙은이의 볼 품 없는 짓꺼리 라고 나무라지 마시고 정감의 샘을 마련하는데
조그마한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뿐입니다.
상일역에 전시된 시---------------------
1. 김종길 ( 金 宗吉 ) 봄날
2. 김광림 ( 金 光林 ) 허수아비
3. 강우식 ( 姜 禹植 ) 서울 뻐꾸기
4. 정현종 ( 鄭 玄宗 ) 섬
1. 봄날 -------------------------
김 종길 ( 金 宗吉 )
골목의 흰 목련 꽃송이
수틀 위에서처럼
눈을 뜨고,
한나절 젖빛 운애 속에
몸풀고 돌아누은
북한산
번데기에서 나온 애벌레인가
나도 꿈틀거린다.
눈을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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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애 ( 雲靉 ) : 구름이나 안개가 끼어 흐릿한 기운.( 靉 는 구름 낄 애 )
번데기 : 갖춘 탈바꿈을 하는 곤충류의 어린 벌레에서 자란 벌레로 옮아가는 도중 한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고치 따위의 속에 죽은 듯이 가만히 들어 있는 몸.
<< 감상 노트 >> -------------------------------------------------------------
<설날 아침에> <성탄제>로 널리 알려진 시인으로 지적인 이미지와 고전적인 품격을 바탕으로 하는 정신적인 엄결성의 우아한 조화로 일상적인 생활에서 시재를 선택하여 쓰고 있다.
영문학자이기도 한 시인임으로 서양의 주지주의적인 이론의 바탕을 두어 이미지에 중점을 두고 있다.
봄이 성큼 다가오고 있는 동적인 느낌이다. 목련꽃도 북한산도 모두 봄기운이 넘치고 있다. 원근법에 의한 시각적인 이미지에 바탕을 두었다. 꿈틀거리고 있는 애벌레처럼 시적인 화자도 동시에 열리고 있는 봄기운에 개안을 하고 있다. 만물이 눈을 뜨고 있는 봄이다.
<< 지은이 >> -----------------------------------------------------------
김 종길 ( 金宗吉 ) ( 1925 - )
경북 안동 출생. 고대 교수. < 47 년 > 경향 신문에 문으로 데뷔. < 55 년 > 현대문학 에 < 성탄제 >로 등단. 작품에 <성탄제> <설날> <하회에서>< 해가 많이 짧아졌다> 등
< 이육사 문학상 05 > <청마 문학상 07> 을 수상함.
시집에 <성탄제 69> <하회에서 77> <황사현상 86> 평론에 <현대 영시산책>
영미 주지 주의의 영향을 받아 감정을 억제하고 지적인 이미지에 바탕을 둔 시인.
2. 허수아비 -------------------
김 광림 ( 金 光林 )
허탈하고플 때가 있다.
미운 것도 고운 것도 모른 채
높은데도 낮은데도
아랑곳없이
그저 허공을 향해
십자목에 걸친 채
의연히 서서
소슬바람에 옷자락 날리다가
마침내 <허리케인>에 휘말려
속사정 다 드러내고
나뒹구는
허수아비 마냥
미련없이
존재하고플 때가
간혹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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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아비
새 또는 다른 동물들이 씨, 어린 싹, 열매 등 농작물을 쪼아먹지 못하도록 막대기와 짚 등으로 사람 오양을 만들어 논 밭에 세운 장치.
허제비,허사비, 허아비라고도 부른다. 벼가 패이면서 새들이 몰려들어 알곡을 축내는 것을 막으려고 들판에 사람 모양의 인형을 세우는 것이다. 장대를 이용해 십자(十字)로 틀을 만들고 실물 크기의 사람 옷을 입혀 모자를 씌워 새에게 공포감을 주게 하며. 또한 무기를 들게 하거나 기다란 줄을 논둑 사방으로 드리워서 깡통을 달거나 빛깔 있는 오색 천을 달아 새에게 겁을 주기도 한다. 과학자의 이야기로는 허수아비를 보고 달아나는 것은 사람의 모양 때문이 아니라, 그 곳에 사람의 체취가 묻어 있기 때문이라나.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사람을 빗대어 일컫는 <허수(虛首) 가 달린 아비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며, 허수아비 같은 사람 하면 쓸모가 없거나, 실권이 없는 사람을 비유하여 일컫는 말이다.
허탈(虛脫)하고 : 몸이 허약하여 힘이 빠지고 정신이 멍함
십자목: 열십자로 만들어진 나무
의연( 의연 )히: 의지가 굳세어서 끄떡없는 모양
소슬바람: 가을에 으스스하고 쓸쓸히 부는 바람
허리케인(hurricane ): 열대성 폭풍우, 또는 그런 태풍.
<< 감상 노트 >> --------------------------------------------------
시인이면서 극작가요, 연출가이기도 하다. 그는 1948 년 이후 월남하여
다양한 작품 활동을 한 회화적 이미지의 주지적 시인이다. < 산 > 이란 대표시로 많이 알려져 있다. 그는 초기에는 주로 전란의 아픔을 다룬 시를 썼으나 후기엔 주지적 서정을 통해 이미지로서 사물에 대한 새로운 감수성의 개발, 언어의 명징성, 그리고 새로운 조형미를 창조하는데 주력하였다.
향토적이기도 하고, 종교적, 주술적인 상징성이 내포되기도 한 들판의 허수아비에게 새로운 생명을 넣어 단독자의 실존으로 살아가려는 지은이의 인생관이 반영된 작품이다.
세상의 온갖 시련에 구애되지 않고 언제나 의젓한 삶의 자세로 진실한 내면을 드러내 보이는 비록 허탈한 마음이지만 그렇게 살고픈 욕구가 깃들어 있다.
< 아랑곳 없이, 의연히, 미련없이 >세상을 살고 싶다는 소박한 서정이 나타난 시이다.
<< 지은이 >> -----------------------------------------------------------
김 광림 ( 金光 林) ( 1929 - )
함남 원산 출생. 48 년 월남 초등학교 교사. 국학대학 졸업 55 년 전시문학선 장마,
진달래로 문단에 나옴.
시집에는 전봉건 김종삼과 3 인 시집 <전쟁과 음악과 희망과 57> 희곡집 <여성 반란57>
<상심하는 접목 59> <학의 추락 71> <갈등 73>
<바로 설 때 팽이는 운다 82> <말의 사막에서 89> <대낮의 등불 96>
일본시인 15 명이 헌정하는 일본어 시집 < 한국의 율리시즈 김광림에게 > 출간.
< 이중섭> 화가가 자기의 그림을 불태우려고 할 때에 그림 뭉텅이를 빼앗아 보관하게 했다는 에피소드가 있는 시인이다.
3.서울 뻐꾸기 ------------------
강 우식 ( 姜 禹植 )
새벽 4 시에 일어나
그 옛날처럼 평범하게 우는
서울 뻐꾸기 소리를 듣는다.
내 집 근처에도
숲과 산이 있음을
새삼 일깨워준다.
창을 여니 새벽별들은
내 막내딸의 초롱한 눈빛되어
가슴을 뚫고
내 인생에 있어
잊고 산 귀중한 것들은
이렇게 평범한 것들이었구나. ( 바보 산수 99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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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꾸기: 여름 철새로 개개비 오목눈이 때까치 등의 둥지에 탁란을 하는 새다. 알에서 자란 새끼는 다른 알과 새끼들을 떨어뜨려 상대를 물리치고 어미가 주는 먹이를 먹으며 자란다. 托卵<탁란>이란 새, 물고기, 곤충 등에서 볼 수 있는 기생의 한 형태로, 다른 종의 둥지에 알을 낳아 그 종으로 하여금 새끼를 기르게 하는 것이다
옛날엔 포곡조<布穀鳥>라 하여 봄에 곡식 심기를 재촉하여 포곡포곡 운다고 하였 다. 본디 파종(播種) 때에 울기 때문에 이 새가 농사일을 권면하는 새로 알려진 데서 온 말이다. <隔林布穀盡情啼 숲 너머선 뻐꾸기가 마음껏 운다 >
<< 감상 노트 >> --------------------------------------------------
별로 상징이 없는 시어로 쓰여진 평이한 시이다. 평범 속에서 진리를 깨닫고 있다.
도시라는 삭막한 공간에서도 자연 속의 산정 <山情>을 맛보고 있다. 자연을 잊고 사는 도시 속의 비극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도시 속에도 숲과 산이 가까이 있고 그 속에서 울고 있는 상쾌한 소리를 듣는 정신적인 위로와 행복감이다.< 숲 산 별>들은 모두가 우리들의 정신적인 삶의 안식처 같은 고향이 아닐까. 물질 만능에서 오는 세상살이의 진흙 같은
답답함에서 벗어나 지극히 평범한 것들을 버리고 살아가는 우리들 마음의 숲에 뻐꾸기의 울음소리를 귀중한 진리처럼 들어 보자. 가슴을 뚫고 전해오는 자연의 오묘한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자.
<< 지은이 >> -----------------------------------------------------------
강 우식 ( 姜禹植) ( 1941- )
강원 주문진출생. 성균관 대학 졸업. 성균관대 교수.<박꽃, 사행시초>로 66 년
서정주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등단. 시집에 <사행시초 74 ><고구려의 눈보라77>. <꽃을 꺽기 시작하여 79> <육감과 혼83><물의 혼 86> <시인이여 시여 86 >
평론집 <한국현대시의 상징성 연구>
그는 초기엔 행만이 4 행을 쓰는 반정형의 시에 강한 향토적, 색채적인 감각에 관능적인 표현 속에 함축성 있게 표현하는 시를 썼다. 육체와 정신의 합일된 바탕 위에 원초적인 생명 충동의 표현으로 전통적 권위의식 속에 숨은 허위의식을 리얼하게 나타냈다. 그는 일명 섹스 시인이라고도 불릴 만큼 독특한 개성적인 서정시를 쓴 시인이었다. 후기엔 정신적인 지향성이 강하게 나타나는 자연 세계를 표현함으로써 사랑과 그리움을 담아내고 있다. 어느 평론가의 말대로 이 시인은 사람 없는 산이어도 물 흐르고 꽃은 핀다는 寒山<한산>시학의 바탕위에 그리움을 담아내고 있다. 이 시인은 <바다는 늘 깨어 있는 자의 물>이므로 바다를 스승으로 여긴다고 하였다.
4. 섬 ------------------------
정 현종 ( 鄭 玄宗 )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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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은 물로 완전히 둘러싸인 육지로서 대륙보다 작고 암초보다 큰 것을 말한다.
특히 사람이 살 수 없거나 살지 않는 섬은 무인도라고 한다. 한자인 섬도 島는
새가 바다 가운데의 산에 앉은 모양에서 섬을 의미하고 있다.
<< 감상 노트 >> --------------------------------------------------
아주 짧은 시어 속에 상징적이고 의지적인 시인의 환한 소망을 닮고 있는 시이다.
소외와 단절된 인간 공간에서 삶의 충만된 환희와 법열을 느끼고 싶은 인간의 간절한 소망을 닮고 있다. 섬의 상징적인 의미를 파악함이 이 시를 이해하는 지름길일 것이다.
그 상징적인 의미를 꼭 이것이다 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인간의 고독, 외로움, 소외감, 단절감 같은 것일 것이다.
섬은 사람과 사람 간의 소통이 단절된 고독의 공간, 사람이 아무도 없어 홀로 자신의 내부 속으로 빠질 수 있는 공간임. 동시에 섬은 인간관계를 열게 해주는 소통의 공간이다.,
앞쪽의 섬은 막혀진 닫힌 공간이고, 뒤의 섬은 지은이가 조화로운 인간관계를 열게 해주는 열림의 공간일 것이다.
막혀지고 답답한 현실적인 공간 속에서 진정한 인간성의 회복을 염원하고 있는 주지적인 시다.
<< 지은이 >> -----------------------------------------------------------
정 현종 ( 鄭玄宗) ( 1939- )
서울 출생. 소설가 이며 시인. 연세대학교 철학과 졸업 77-82 년 서울예술전문대학 교수
74-77 년 중앙일보 편집부 기자.
황동규·박이도·김화영·김주연·김현 등과 함께 동인지 《사계 96》를 결성
64 년 현대문학에 화음으로 등단.1965년 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해 3월과 8월에 각각 〈독무〉와 〈여름과 겨울의 노래〉로 현대문학에 등단
시집에 <사물의 꿈72> <고통의 축제 74> <거지와 광인85>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89>< 생명의 황홀 89>
수상 경력 :1990년 〈사람으로 붐비는 앎은 슬픔이니〉 외 6편의 시로 제3회 연암문학상을 수상. 1992년 〈한 꽃송이〉로 제4회 이산문학상을 수상. 1995년 〈내 어깨 위의 호랑이〉로 제40회 현대문학상, 1996년 〈세상의 나무들〉로 제4회 대산문학상, 2001년 〈견딜 수 없네〉로 제1회 미당문학상 시 부문을 수상. 04 년 공초문학상 수상.
사물과의 합일을 노래하는 시인이다. 때문에 그의 시세계에서는 자아와 사물과의 교감이 충만한 기쁨 속에 재현된다. 사물과의 에로스적 합주(合奏)를 통해 빚어내는 축제의 교향곡이 주조음을 이루고 있다.
초기의 시는 관념적인 특징을 지니면서 사물의 존재 의의를 그려내는 데 치중한 반면, 1980년대 이후로는 구체적인 생명 현상에 대한 공감을 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시인은 풍경이나 사물들도 모두가 행복에 이르는 비밀통로를 통하여 대상과 합치되는 순간의 환희를 표현한 시인이다. 우주의 모든 삼라만상이 융합되어 하나의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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