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序言------------------------------------------------------------------------------
청음. 문곡 조상님 줄기의 후손이 되는 사람입니다. 안동 가문 세도 정치 의 시발점이 되었던 楓皐 조상님의 후손이 되기도 합니다.
楓皐 조상님께서 정사를 돌보시며 정신적인 휴식을 취하시던 玉壺亭(玉壺 別墅, 玉壺山齋, 山墅, 精舍 라고도 불림)이라는 곳이 지금의 三淸洞지역에
분명히 있었음을 밝히는 여러 편의 글들이 있기는 하지만 아직 시문으로서 정리된 글은 보이지 않아 후손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기도 하고, 옥호정에 대한 확실한 사실을 알아보려는 작은 정성을 담아 여기 玉壺亭에 관련이 되는 시문들을 모아 가려고 합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의 많은 도움을 부탁드립니다. 한문을 전공하지 못한 필자이기에 상큼한 질정도 바랍니다. 조경을 연구하시는 많은 분들이 옥호정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함께 사라져 버린 우리들의 옛 문화유산을 찾아가는 작은 정성 이랍니다. 지금도 가슴 아픈 것은 삼청동 어느 개인 가옥에 숨어 있는 日觀石이라는 각자를 못 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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玉壺 옥호-------------------------------
김 영수(金永壽)
1829년(순조 29)- 1899년(고종 36)
자 복여(福汝) 호 하정(荷亭)
본관 광산(光山) 시호 문헌(文獻)
茆檐竹棟一壺天。띠 풀 처마 대 기둥은 하나의 별천지라.
千樹楓林昔蔚然。 천 그루 단풍 숲은 옛적엔 울창했네.
只有先生留壁字。 풍고 선생 남기신 돌 벽 글씨 있을 뿐
山光邃古石長年。 산 빛은 아득하고 돌만이 오래됐네.
한자 읽기
묘첨죽동일호천。천수풍림석울연。
지유선생류벽자。산광수고석장년。
한자
茆 띠 묘 檐 처마 첨 棟 용마루 동 壺 병 호 蔚 성할 울 邃 깊을 수
---후서<後序> ---------------------------------
楓臯金公種丹楓千樹以自號。作小竹亭。名以玉壺洞。
石壁大書曰山光如邃古。石氣可長年。今有遺墟。
但見石刻一句故云。
국역 풍고 김조순 공이 단풍 천 여 그루를 심었기에 스스로 호를 삼았고, 소죽정이라는 정자를 짓고 이름을 옥호동이라 하였다. 석벽에는 큰 글씨를 썼으니 <산 빛은 아득하여 옛날과 같고> <돌 기운 오래 됨을 진정 알겠네.> 라는 내용이다. 오늘에는 남긴 터는 있으나 단 돌에 새긴 한 구절이 보일 뿐이라고 말들을 한다.
楓臯- 단풍나무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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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이해】
1 행- 모정=초정의 외형- 선경 2 행- 단풍대의 모습3 행. 4행- 석벽의 글씨 후서(後序)
지은이가 옥호정에 가서 들은 이야기 서술. <간접 경험>
아호. 정자명. 글씨의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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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이해】
이 시의 저자는 광산 김 씨로 조선 시대 명문이었던
광성부원군 金萬基<1633(인조 11)∼1687(숙종 13)>. 의 후예로 高宗의 많은 사랑을 받았고, 고종 시대 주로 활동을 하셨던 분으로 어느 날 옥호정을 찾아가 정자 안을 둘러보면서 지난 시간을 회고한 서정을 담았다. 사람은 갔어도 남아 있는 흔적들을 보면서 쓸쓸한 심정도 가졌으리라. 세도를 누리던 때에는 화려했던 별천지 같은 선경이었으리라. 그러나 지금은 울창했던 나무들도 많이 사라지고 벽에 쓰인 글씨들만이 보이고 있다. 1 행과 2 행은 과거를 회상하며, 3 행과 4 행은 옥호정을 찾았을 때에 보이는 남은 흔적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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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에서 깊이 관심을 두어야 할 점은 지은이가 시 말미에 쓴 후서의 내용이다. 고종 시대 지은이가 찾아가 실제로 본 것은 석벽에 써 있는 글씨뿐이었고, 나머지는 옆에서 안내해주던 사람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시화한 것 같다. 풍고라는 아호를 쓴 것은 단풍나무 천 여 그루를 심었다는 것에서 연유되었고, 소죽정을 세웠고, 이름을 옥호동이라 하였다는 이야기는 전부 들은 이야기다. 남긴 터만 있고,
돌에 서각한 글씨 한 구절만이 현재 있을 뿐이라는 것도 들은 이야기로 실제로 본 것은 乙亥壁 山光如邃古 石氣 下長年, 그리고 玉壺洞天이라는 글자뿐인 것 같다.
3 행에 쓰인 只有先生留壁字-- 이 구절로 보아 지은이는 풍고 선 생이 쓰신 글자라고 본 것 같다. 아마 이야기를 해주던 사람으로부터 들었기에 이렇게 표현한 것 같다. 그렇다면 乙亥壁 山光如邃古 石氣下長年 이라는 글자도 풍고 조상님이 쓰신 글자가 아닐까 라고 생각해 본다.
東省校餘集< 1814 년 간행>에 기록된 <七古 二十韻> 이라는 풍고 시의 주석에 보면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唐 徐 浩喜用渴筆 余要 竹石 書刻 玉壺 洞天 四字 故云
<당나라의 서 호의 갈필을 즐겨 썼다. 내가 죽석에게 옥호동천의 4 자를 서각해 달라 고 부탁했다.>------- 혹시 이 말은 글씨는 풍고. 서각은 죽석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徐 浩徐浩(703-782)는 越州(지금의 浙江省 紹興) 사람으로 字를 季海라 하였다. 唐나라 玄宗, 肅宗, 代宗, 德宗 시대에 國子祭酒, 集賢殿學士, 工部侍郞 등을 거처 會稽縣公과 嶺南節度使 등의 관직에 올랐다. 여덟 가지 서체로 42폭의 병풍을 써 당시 사람들이 그를 八體에 가장 뛰어난 사람으로 칭송하였다고 한다.
渴筆먹의 사용을 억제하고 물기가 적은 붓으로 그리는 한국화 기법.
고필(枯筆) 또는 찰필(擦筆)이라고도 함. 마른붓질로 그리는 기법.
竹石 徐榮輔 <1759(영조 35)~1816(순조 16)>.
본관은 달성. 자는 경재(景在), 호는 죽석(竹石). 시호는 문헌(文憲).1804년(순조 4) 예조판서, 이듬해 홍문관제학·지중추부사 등을 지냈다. 1808년 호조판서로 문장과 글씨가 뛰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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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 이해】
茆檐 묘첨-띠 풀로 이은 처마. 茆 순채 묘. 띠 모(= 茅) 풀섶 모 갯버들 류
茆茨- 띠로 인 지붕. =茅茨 茆菹- 순채(蓴菜)의 일종.
薄采其茆。——《詩·鲁颂·泮水》
✱처마 밑은 누워서 쉴 만하고요 / 茆檐容偃息
✱처마 밑은 늘 쓸어 티끌 없이 깨끗한데 / 茆檐長掃淨無埃
茅檐
✱ 처마 밑 따스한 햇살에 고양이는 등 쪼이고 / 茅檐日暖猫炙背
✱ 바람 멎은 띠 집 처마에 제비가 남남거리네 / 風靜茅檐鷰語喃
띠 처마 밑에 서로 마주 앉았으니 / 相對茅檐坐
풍고집에 나오는 모첨의 단어- 모첨茅檐 초가지붕의 처마.
茅檐梅冷獨吟病 茅檐縶坐眞鳥籠 茅檐已見暮禽歸 茅檐倦就羲皇夢
주로 옥호정에 머무실 때의 정경을 그린 시에서 나온 단어로 띠풀로 엮은 집의 모습이다.
외손자가 되는 남병철(南秉哲)이 쓴 김조순 신도비에는 옥호정의 모습을 다음처럼 묘사한 것으로 보아 그 곳이 그렇게 화려한 별서는 아닌 듯하다.
중년에 옥호에 작게 집을 짓고 가끔 와서 쉬며 목욕하며 지내셨다. 집이 매우 좁고 꾸밈이 없었고, 한가히 거처하시는 방은 매우 더운 방이었다. 겨우 두간 넓이에 지나지 않아 손님이 오면 쉬어갈 수조차 없었다. 의복, 기명, 장식품 등은 애당초 마음에 두시지를 않았고 오직 좌우에는 서적만이 있었을 뿐이다
中年卜玉壺小築以時休沐屋
宇甚樸陋燕居之燠室 廑二架賔至不能容 服飾噐翫 初不經意 惟左右圖史泊如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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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棟 죽동-- 대로 만들어진 마룻대, 대로 만들어진 용마루. 대기둥
※ 죽동이라는 어휘의 쓰임을 다른 곳에서는 찾을 수가 없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확실히 알 수가 없다. 마룻대인지, 용마루인지 기둥을 말하는 것인지는 조경을 연구하는 분들의 판단에 맡긴다. 필자는 그냥 대 기둥으로만 이해를 하였다. 옥호정 그림을 보면은 여러 개의 竹亭= 草亭= 茅亭의 정자들이 나오는데 그 다음의 구절 단풍대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이 초정은 서쪽 별원 山光如邃古石氣下長年이란 붉은 글씨 앞에 다락처럼 세운 정면 2 칸 측면 1 칸의 정자인 것 같다. 그 앞에는 느티나무인 듯한 거목<은행나무로 보기도 함>이 있고, 그 앞에는 석상이 놓여 있다. < 石床이란 글씨가 보임> 6 개의 기둥으로 세워져 있다. 혹시 이 기둥이 대나무의 기둥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였다.石床을 바둑판으로 본 학자도 있다.< 정봉구, 한동수의 글에서> 그런데 뒤의 후서에 보면은 小竹亭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안채 후원 쪽에 있는 竹亭일수도 있다.< 竹亭>이라는 글씨가 보인다. 이 죽정은 한 칸이고 4 개의 대나무 기둥이고, 난간도 보인다.
한국의 전통조경을 연구하시는 많은 학자님들이 계신 것으로 보아 비록 그림만을 가지고도 확실한 연구를 하시리라 본다.
松棟 이란 단어의 쓰임은 보인다. = 華屋 (화려한 집)
棟 마룻대. 용마루. 대기둥
棟幹- 마룻대가 될 만한 재목. 뛰어난 재능 棟梁- 마룻대와 들보. 중임을 맡은 신하. 국가의 중신 棟梁之材- 마룻대와 대들보가 되는 재목, 중임을 맡을 만한 인재 棟宇- 용마루와 처마. 전하여 집 가옥.汗牛充棟-소에 실으면 소가 땀을 흘릴 정도요, 곳간에 넣으면 지붕에 찰 정도로 책이 굉장히 많다
✱ 명당엔 기둥과 대들보가 높고 / 明堂棟樑隆
✱ 봄 해가 띳집에 비치누나 / 春日照茅棟
✱ 북도 치고 지붕도 올라갔네 / 打鼓騎屋棟
✱ 재기가 시대의 기둥이었네 / 材氣鬱時棟
✱ 높은 기둥 깊은 추녀 한 청사가 넓으니 / 高棟深簷敞一廳
✱ 갠 구름 화려한 집에 임하고 / 晴雲臨畫棟
✱ 후일에 정자에다 들일 공력 적으리 / 芳棟他年少費工
✱ 기둥 들보 부러지니 / 樑棟之摧
✱ 나라엔 동량 없고 / 國無棟樑
✱ 산 무너지고 기둥 꺾이니 어디에 의지할꼬 / 山嶊棟折痛何依
✱ 기둥이 되기를 바랐으나 자신을 한탄하고 / 望絶棟樑嗟己矣
마룻대: 용마루 밑에 서까래가 걸리게 된 도리.= a ridge pole 지붕 서까래가 걸리는 지붕 맨 상단의 도리이며 한옥에서는 종도리라고 한다.
龍마루: 지붕 가운데 부분에 있는 가장 높은 수평 마루. 房脊. 屋脊. 屋上頭. 屋山巅. 瓦獸. 屋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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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壺天 일호천
하나의 호리병 속의 하늘이라는 뜻으로, 하나의 작은 천지(天地). 별세계(別世界)선경(仙境)를 이르는 말. 하나의 별천지. 중국 후한의 비장방(費長房)이, 약을 파는 노인과 함께 항아리 안에 들어가 별천지의 즐거움을 얻었다는 데서 유래한다.
그리고 한대(漢代)의 선인(仙人)인 호공(壺公)이 하나의 항아리를 집으로 삼고 술을 즐기며 세속을 잊었다는 고사에서 비롯된 말이라고도 한다.
호천(壺天),호중천(壺中天),(壺中天地) 일호지천(一壺之天), 일호천(一壺天), 호중지천(壺中之天), 호중천(壺中天), 호중천지(壺中天地)라고도 한다.
도연명(陶淵明)의 도화원기(桃花源記) 에 나오는 武陵桃源과도 같은 말로
도원(桃源), 도원경(桃源境), 도원향(桃源鄕), 도화원(桃花源), 별건곤(別乾坤), 별세계(別世界), 별유건곤(別有乾坤), 별유천지(別有天地), 별천계(別天界), 선경(仙境), 선계(仙界), 선향(仙鄕), 선환(仙寰), 이상향(理想鄕) 이라고 하기도 한다.
-----------------------------------------------------------------------------蔚然 나무가 무성하게 우거지다. 크게 성하다.
✱ 성대하게 큰 변화를 기대하는 참이었네 / 蔚然期豹變
✱ 우뚝하니 크나큰 덕 이루시었네 / 蔚然成德 ✱ 훌륭하신 전문지식으로 / 蔚然專門
✱ 훌륭한 명성과 업적을 / 蔚然聲績
✱ 고운 초목 봄이 되어 하나같이 무성하네 / 嘉木春來竝蔚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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只有 다만 있다. 오직 있다.
✱ 다만 사람 없는 텅 빈 산에 한 조각 달이 있어 / 只有空山一片月
✱ 다만 청산이 있어 눈을 머물러 둘 만하니 / 只有靑山堪駐眼
✱ 이제 그저 책장이나 다시 넘겨볼꺼나 / 只有靑編可卷舒
✱ 오직 일편단심은 변함없이 예전과 같네 / 只有丹心似舊時
✱ 외로운 신하는 한 조각 넋만이 돌아왔네 / 孤臣只有片魂還
✱ 슬하엔 오직 중랑의 여식(女息) 하나 / 只有中郞女
중랑의 여식(女息) : 아들을 보지 못하고 문재(文才)가 뛰어난 딸 하나만 남겼다는 말이다. 후한(後漢) 때 중랑장(中郞將)을 지낸 채옹(蔡邕)의 딸 문희(文姬)가 선친으로부터 4천여 권의 책을 물려받고 상란(喪亂)의 시대에 온갖 풍상을 겪으면서 서적을 모두 망실했으나 그래도 40여 편을 암송하여 다시 복구시켰다는 고사가 전해 온다. 《後漢書 列女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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邃古 아득한 옛날. 멀고 먼 옛적. 아주 먼 태곳적이란 뜻으로, 전하여 태곳적의 태평성대를 의미한다.
✱ 아득한 옛날엔 아주 질박해 / 邃古旣朴蒙
✱ 아득한 옛날 일을 곰곰이 생각하니 / 游心邃古吟大庭
✱ 마치 까마득한 태초 그 시절에 / 有如邃古初
✱ 아득한 옛날 일을 거슬러 오를 수 없으니 / 邃古非可遡
✱ 까마득한 상고(上古) 시대 / 邃古之邈
✱ 생각건대 옛날 태고(太古)적에는 / 念昔邃古初
✱ 깊은 이치 탐구하여 태고에 들고 / 探幽入邃古
✱ 멀리 관망할 땐 수고에 들어가고 / 遐觀入邃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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遺墟 오랜 세월(歲月)에 쓸쓸하게 남아 있는, 역사(歷史) 어린 곳
✱ 옛날 맥국(貊國)의 유허(遺墟) 찾아 보았지 / 相尋古貊墟
※ 맥국(貊國)의 유허(遺墟) : 춘천(春川)을 말한다.
《新增東國輿地勝覽 卷46 春川都護府 建置沿革》
✱ 상해라 남긴 터는 한 번 겁을 하였구나 / 桑海遺墟劫一番
※상해(桑海)는 상전벽해(桑田碧海)의 약어로 즉 뽕나무 밭이 변하여 바다가 될 정도로 세✱ 상일이 변천되었다는 뜻이다. 겁(劫)은 불가의 용어로 천지가 개벽하는 동안을 말한다
✱ 고산정 옛터를 찾아가서[過孤山亭遺墟]
✱ 남은 터엔 부로들 전설 전한다 / 遺墟父老談
✱ 실직의 옛터가 사해 가에 위치했으니 / 悉直遺墟沙海濱
✱ 맥국 옛터에 먼곳 손이 노니네 / 貊國遺墟客遠游
✱ 송경의 옛터 지나가니 / 歷松京之遺墟
✤ 예문의 인용은 필자의 학습을 위해 고전번역원 자료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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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玉壺亭圖라는 그림 이야기
1. 풍고 김조순의 별서라고 하는 옥호정이 있었다는 사실은 풍고집, 그리고 풍고의 두 아드님 김유근, 김좌근의 문집, 또 김흥근의 문집 등 그리고 규장각에서 함께 활동하였던 분들의 문집 속에 여러 가지 형태의 시문 속에 등장하고 있어 분명하게 있었던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그 완전한 실체를 알 수가 없고 작자 미상의 옥호정도 라는 그림을 통해서 그 실체를 알 수가 있을 뿐이다.
2. 남병철(南秉哲)이 쓴 김조순 신도비
외손자가 되는 남병철(南秉哲)이 쓴 김조순 신도비에는 옥호정의 모습을 다음처럼 묘사한 것으로 보아 그 곳이 그렇게 화려한 별서는 아닌 듯하다.
중년에 옥호에 작게 집을 짓고 가끔 와서 쉬며 목욕하며 지내셨다. 집이 매우 좁고 꾸밈이 없었고, 한가히 거처하시는 방은 매우 더운 방이었다. 겨우 두간 넓이에 지나지 않아 손님이 오면 쉬어갈 수조차 없었다. 의복, 기명, 장식품 등은 애당초 마음에 두시지를 않았고 오직 좌우에는 서적만이 있었을 뿐이다
中年卜玉壺小築以時休沐屋
宇甚樸陋燕居之燠室 廑二架賔至不能容 服飾噐翫 初不經意 惟左右圖史泊如也
3. 옥호정 그림을 소개하신 정재훈 선생님
이 옥호정도는 국사학자이신 故 李丙燾 선생님이 소장하신 그림이라고 처음으로
소개하셨다. 이병도 선생님께서 1960년 10월 韓國書誌學會가 발행한 서지에 소개
※1961 년이라고 표기한 책도 있었음. 이 책은 구할 수가 없었다.
옥호정도 길이 1m50cm 폭 2m80cm 채색그림 작자 미상.
이병도 선생님이 60 년도 현지를 조사했을 때는 惠生泉 乙亥壁 日觀石 각자는 남아 있었 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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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수 교수님의 홈페이지에 필자의 질문에 다음과 같은 답신이 있었다.
정확한 소장처는 찾지못했습니다. 자료실에 올린 '옥호정도' 사진은 1980년대에 정재훈선생님께서 이병도 박사님을 접견하시고 고 김대벽선생님께서 '옥호정도'를 촬영하신 것입니다. 저희가 구한 이미지파일은 한국전통문화학교의 이선 교수님께서 정재훈선생님 소장 사진을 스캔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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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교수님께서 <한국의 전통조경>(2005년 3 월 조경)이라는 책에 이 그림이 소개된 후 다른 여러 책에는 이 그림이 자주 인용되고 있어 옥호정도의 원본이라고 할 수 있다.
정옥자 교수님이 쓰신 <정조의 문예사상과 규장각>< 효형출판사>이라는 책227쪽에 고려대 박물관 소장이라고 기록이 되어 있어 또 하나의 다른 그림인가 하고 전화를 하여 확인하였으나 그 기록은 잘못인 것으로 확인을 받았다.
옥호정도의 그림은 정재훈 교수님께서 소개한 그림뿐이다. 어디에서 인용했다는 기록이 없이 마구 끌어다가 쓰는 것은 조금은 문제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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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정재훈 샨생님께서는 <한국의 전통조경>이라는 서책에
그림으로 본 옥호정< 278쪽-285쪽>이라고 하여 아주 상세하게 설명을 해 놓으셨다. 이 옥호정은 조선시대 사대부 민가의 높은 격조를 보여주는 구성과 기법을 가지고 있으며 조선시대 민가 조원의 대표적인 일례로 보아도 좋다고 하시면서 옥호정이 있었던 장소가 지금 경복궁 동북편 삼청동 계곡의 서편 산자락으로 지금의 지번으로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동 133-1, 133-2 133-7, 133-9. 1332 번지 및 산5-1 번지 지역이다 라고 상세한 위치를 설명해 놓으셨다.
5. 대통령경호실 발행 청와대와 주변 역사 문화유산 ( 2007년)< 비매품>
<옥호정도> 라고 하여 서울 역사박물관 발행 <바위 글씨전>(2004 년 29 쪽)에 나오는 그림을 전재하였는데 필자가 보기로는 혹시 이 그림도 정재훈 교수님 책 278쪽에 나온 그림을 싣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만일 그런 것이 아니라면 이 옥호정도를 또 다른 분이 촬영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필자가 확인을 하지 못하였다.
이 책 344쪽에서는 日觀石 각자를 찾아 실었고, 옥호정 대문 터로 추정되는 곳에 있는 초석을 발견하여 실었고, 이곳이 현재의 삼청동 133-11 번지< 인청길11-1>라고 아주 세밀히 밝혀 놓았다. 일관석 각자는 현재 삼청동133-5 번지라고 하였다.. 그리고 나머지 각자들은 훼손되었거나 개인 소유의 건물 안에 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그림에만 보여지는 실물을 확인하였다는 사실은 높이 평가할 만한 책이다. 후손으로서 그런 실물을 못 보았다는 깊은 안타까움이 이 책을 통해서 볼 수 있었음에 커다란 만족을 가졌다.
6. 옥호정을 연구한 책들
(1). 이 병도 소개-- 1960 년 10 월 韓國書藝學會 < 書誌> 玉壺亭圖 소개
(2). < 朝鮮後期 漢陽의 園林에 관한 연구> 정봉구. 한동수
大韓 建築學會 논문집 計劃系 제 23 권 제 10호( 통권 228호) 20007년 10 월
(3) <한국의 전통 조경> 동국대학교 출판부. 홍광표. 이상윤
(4) <그림으로 본 옥호정> <한국의 전통조경>2005년 정재훈 278-285쪽
정재훈 교수님 진주 사범학교 졸업. 한양대학교 환경과대학원 조경학과 졸업 한국 전통 문화학교 석좌교수
(5). <서울시 별서정원 유적에 관한 연구> 상명대학교 대학원 환경조경학과
차경선 2004년
벌통 그림이 있었다고 소개하였다. 그런데 다음과 같은 크게 잘못된 내용이 실 려 있어 깊은 한숨이 나올 뿐이다.
그는 천성이 어질고 지나치게 너그러운 탓으로 그의 소실인 야합에 의해 국사가 농락당하는 등 폐단이 심했고, 이때부터 국사에 외척의 세도가 발효하는 시초가 되었다. 46 쪽-- 풍고의 아드님이신 김좌근과 착각.
(6) <암시분석방법에 따른 조선조 원림정자의 원형이론 연구>
명지대학교 건축학과 정상호 93쪽
(7). <청와대와 주변역사 문화유산> 대통령경호실편 344 쪽
(8). 바위글씨전 서울 역사 박물관 29쪽 옥호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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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는 다음 사이트에서 옥호정도를 소개하고 있다. 옥호정이나 옥호정도를 치시면 그 내용을 알 수가 있다.
http://blog.paran.com/jjioijj/27402716 옥호정도 그림
purefresh.tistory.com 맑고맑게 옥호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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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호정 관련 그림--- 정재훈 교수님의 < 한국의 전통 조경> 책 인용.
옥호정 전체
석벽의 글씨--- 혹시 풍고 가 쓰신 글이 아닐까.
안채 후원에 있는 죽정
단풍대의 모습--- 풍고라는 아호를 쓰신 연유.
정재훈 교수님 모습-- 한국 전통문화학교 석좌 교수
윗시의 소재가 된 별원 속의 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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